로컬 식재료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멕시코의 전통 농작물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로컬 농부와의 신뢰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톱 셰프가 있다.

1 푸홀에서 맛볼 수 있는 히카마(Jicama)와 망고 소르베.
2 양배추를 곁들인 소프트 셸 크랩 타코.
3 에어룸 옥수숫대에서 알맹이를 잘라내고 있는 오악사카의 농부.
4 바예 데 브라보(Valle de Bravo)에서 자라는 유기농 쇠비름.
5 셰프들이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는 오악사카의 토종 옥수수.

“줄기에서 갓 딴 딸기를 맛보기 전까지는 진짜 딸기의 맛을 안다고 할 수 없죠.” 멕시코의 유명 셰프 엔리케 올베라(Enrique Olvera)가 지저분한 넝쿨에서 500원 동전 크기만 한 딸기를 직접 따서 건네며 말한다. 그 어느 식품점의 시판 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달콤함이 입 안에서 터졌다.
“건강한 토양 없이는 맛있는 음식도 없어요. 하나의 사이클인 거죠”라고 그가 덧붙인다.

지금 우리는 멕시코시티에서 90분 거리에 자리한 바예 데 브라보(Valle de Bravo)의 삼림지대에 둘러싸인 야트막한 언덕에 서 있다. 이 앞으로는 아보카도나무, 구스베리, 야생 고수, 그리고 줄 맞춰 나란히 심은 아티초크가 펼쳐져 있다. 청바지와 널따란 가죽 모자 차림의 농장주 오를란도 레예스(Orlando Reyes)는 내게 작은 복숭아나무를 보여주었다. 해는 빛나고 꿀벌은 윙윙거린다. 이곳은 작물을 수확 중인 농장이라기보다는 마법의 정원 같다.

카사마타(Casamata)를 모회사로 둔, 멕시코시티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 푸홀(Pujol)을 포함해 레스토랑을 무려 13개나 운영하며 국제적으로 유명한 톱 셰프 엔리케 올베라가 자신의 요리에 쓰는 식재료 재배를 믿고 맡기는 소수의 농부 중 하나가 바로 레예스다. 푸홀의 식당을 찾는 식도락가가 맛보는 메뉴의 90%는 농부가 직접 재배하는 제철 식재료에서 비롯한다. 지금은 야생 고수가 풍부한 계절로, 푸홀에서는 노란 옥수수 반죽과 체리 토마토 살사에 이 허브를 곁들인다. 한창 맛이 오른 망고는 소르베로 만들어져 식탁에 오른다. 테이스팅 메뉴는 136달러에서 시작하지만, 모든 식재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푸홀에서의 다이닝 경험이 그저 값비싼 가격표가 달린 버킷 리스트 체험 이상임을 알게 된다. 멕시코 농부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농업 생산자는 오늘날 자원의 제약, 기후변화의 위협, 생물 다양성 저하와 토양 파괴를 야기하는 연작 농장과의 경쟁 등 수많은 요소와 싸워야 한다. 또 수십여 년 사이에 멕시코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공업국의 뒤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재생 가능한 방식 대신 공장식 농업을 택하고, 가공식품이 토종 농산품을 대체하는 시대. 음식만 보고는 계절을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요즘은 마켓에 가면 1년 내내 사과를 볼 수 있어요.” 올베라가 말한다.

멕시코의 많은 레스토랑과 노점은 가격과 수급 안정성 때문에 저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올베라는 작은 농장과 협업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이 계획은 실현 가능해졌다. “테트리스 게임과 비슷한 구조예요. 농부는 특정 농산물을 일정량 재배해요. 나는 그중 얼마를 소비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다른 농부의 수확 농산물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죠.” 올베라가 설명한다. 그는 농부 15명으로 구성된 ‘가이아(Gaia)’라는 네트워크와 함께 일한다. 농작물은 농장에서 수거해 중심부가 되는 장소로 이동하고, 분류 작업을 거쳐 올베라의 레스토랑에 각기 분배된다.

뿌리에 가까운 식재료 공급처를 찾는 고급 레스토랑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재생 농법을 실천하는 농부로 구성된 또 하나의 네트워크인 ‘아르카 티에라(Arca Tierra)’는 멕시코시티 남쪽에 자리한 전통적 농업 지역 소치밀코(Xochimilco)의 농작물을 콘트라마르(Contramar)의 유명 셰프 가브리엘라 카마라(Gabriela Cmara)를 포함한 여러 셰프에게 납품하고 있다. “요즘 멕시코시티에서 개인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나처럼 시작한 셰프 대부분은 비슷한 꿈을 가졌을 거예요. 파인 다이닝에 그치는 것이 아닌 캐주얼하고 친밀한 레스토랑으로의 확장 말이에요.” 올베라가 말한다.

농부 레예스의 가족이 준비한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아 치즈 케사디야와 살사, 그리고 나무에서 갓 딴 완숙 상태의 아보카도를 맛보는 순간, 맛의 차이는 확연했다. 초록색 과육은 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 풍미가 가득했다. 그 자체로 완벽해 소금과 후추는 섬세한 부드러움을 망칠 게 분명할 정도였다. 부드러운 음성과 젠틀한 미소를 짓는 레예스는 아보카도 교역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말했다. 아보카도나무는 물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데다, 이미 심은 나무의 한정적인 양이 급증하는 마켓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레예스는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농장에 관개조직을 설치하고, 한발 더 나아가 인근의 농부에게 같은 기반 시설 도입을 설득했다. 올베라는 이들에게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오악사카(Oaxaca)에서는 올베라의 오랜 협력자인 아마도 라미레스(Amado Ramirez)가 에어룸 옥수수를 재배한다. “토종 농산물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키워 먹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보존이죠.” 라미레스가 말한다. 매년 미국에서 수입 옥수수 1천6백만 톤이 쏟아져 들어오는 오늘날, 멕시코의 토종 옥수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올베라의 레스토랑은 농부와 소비자 사이 도관 역할을 담당한다. 토종 농산품을 가장 동시대적 방법으로 식탁으로 들여와 소비자의 삶에 유의미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멕시코의 전통주 메스칼(Mezcal)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 세계적으로 메스칼 시장이 성장하면서 대기업이 가족 소유의 작은 농장을 밀어내며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에 자리한 카사마타 소유의 메스칼 바인 티쿠치 (Ticuchi)의 파트너 곤살로 고우트(Gonzalo Got)는 라벨이 붙지 않은 유리병에서 메스칼을 따랐다. 그라시엘라 앙헬레스 카레뇨(Graciela Angeles Carreo)는 고우트의 오랜 파트너로, 2009년부터 푸홀과 함께해왔다. 카레뇨는 오악사카 시티(Oaxaca City) 인근 언덕에 위치한 가족 소유의 레알 미네로(Real Minero)를 운영 중이다. 카레뇨의 가족은 거대 주류 회사와 경쟁하면서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증류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들의 메스칼을 소비자한테 권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중요한 일이잖아요.” 고우트가 말한다. 어느 날 밤 티쿠치에서 매니저 카리나 아레야노(Karina Arellano)가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메스칼 두 병을 가져와 코피타 글라스에 따라줬다. 둘 중 하나는 레알 미네로의 마르테뇨(Marteo)다. 메스칼의 맛과 질감을 설명하는 그의 열정이 너무 강렬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 병에 담긴 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수작업으로 정성 들여 만든 고통의 산물이다. 소비자는 이런 제품을 보존하는 데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무엇을 구매하는지 단순한 선택의 행위로 충분히 동참 가능하다.

    에디터
    MARY HOLLAND
    포토그래퍼
    ARACELI P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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