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탄소발자국을 잡아라!

패션 탄소 발자국 계산기를 두드리면 알게 되는 옷장 속 환경 지수.

옷장 속을 빼곡히 채운 옷 중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입지 않을 것 같은 티셔츠 하나에 작별을 고하려 할 때. 문득 ‘너도 참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나에게 왔을 텐데, 빛 한번 못 보고 헤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티셔츠 라벨에는 ’메이드 인 캄보디아’라 찍혀 있다. 면화를 재배하지도, 방적하거나 인공섬유를 제조하지도 않는 캄보디아는 세계 최대 면화 재배국 중국으로부터 수입했을 것이다. 여기서 이미 엄청난 양의 탄소를 내뿜는 운송 수단을 타고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한 셈. 일반적으로 티셔츠 한 장당 욕조 30개를 채울 물 2700L가 필요하고, 주원료인 목화 재배 시 농약과 살충제, 목화를 원단으로 만들 때는 엄청난 양의 전기와 표백제를 사용하며 생산 및 판매 과정에서만 탄소 6.75kg을 배출한다. 티셔츠 라벨링에 숨겨진 기나긴 여정을 생각해보니 버리려던 손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 이상을 차지하는 패션 산업은 해마다 섬유 폐기물을 약 9200만 톤 배출하는데, 이 중 87%는 소각, 매립된다. 그럼에도 유행에 맞는 새 옷을 구입(에디터 포함)하는 소비자를 위해 해마다 의류 800억~1500억 벌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선구적 패션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의류 소비에 관한 탄소 발자국을 도출하고, 의류를 소비하는 이들과 만들고 판매하는 이들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다음에 소개할 기업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복잡한 계산식을 통해 완성한 탄소 발자국 계산 프로세서를 무료로 공개한다. 그 까닭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보다 지구를 도울 수 있는 협력이 모두에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세일 쇼핑몰 쓰레드업(Thread Up)은 독립 리서치 회사 그린스토리와 협업해 퀴즈를 통한 옷장 속 탄소 발자국 계산 사이트를 운영한다. 구입하는 의류 중 몇 퍼센트를 반품하는지, 한 달에 몇 번이나 세탁하는지 등에 관한 퀴즈 11개를 모두 풀면 전 세계 및 미국 소비자 행동 연구 조사에 따른 데이터베이스에 입각해 개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은 고객이 매장까지 직접 운전하고 가서 쇼핑하는 것보다 탄소 영향이 60% 적고, 표준 배송이 특급 배송보다 탄소를 50% 줄인다는 MIT 석사 논문에 따라 소비 행태를 수치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옷을 구매하는 행위뿐 아니라 환불, 세탁, 폐기까지 생활 면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다루는 것. 쓰레드업의 탄소 발자국 계산기는 일반 소비자의 탄소 발생 평균 수치와 비교할 수 있는 그래프, 자신의 탄소 발자국에 따른 국가 간 비행 거리, 패션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안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친구와 공유할 수 있는 링크도 받을 수 있다.

해외 직구 사이트 파페치(Farfech)에 방문하면 리넨 티셔츠, 비스코스 드레스, 가죽 가방 등 소재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 물 소비량을 검토할 수 있다. 패션 환경 발자국 평가와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 아이오에프.얼쓰와 협력하고 에코인벤트 자료를 활용한다. 파페치 서비스의 경우 각각의 소재별로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선택지와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쇼핑 리스트도 함께 제안한다. 일반적으로 한 벌당 평균 45.8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17.4m³의 물을 소비하며 만들어지는 실크 블라우스를 예로 들어보자. 일반 실크 대신 목화 솜털 폐기물로 만드는 인공 셀룰로오스 섬유와 물과 화학물질을 재활용하는 폐쇄 순환 공정으로 생산하는 비건 실크인 큐프로 소재로 대체한다면? 9.7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79% 절약)하고, 0.2m³의 물을 소비(99% 절약)하며 3.6그루의 나무가 일 년 동안 흡수한 이산화탄소와 한 사람이 5358일 동안 마실 물의 양을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소재로 대체한 제품은 파페치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포지티블리 컨셔스’ 셀렉션으로 분류된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길 바라는 현명한 소비자는 파페치의 착한 라벨을 따라가며 쇼핑하면 되는 것.

모든 제품에 탄소 발자국 라벨을 붙인 최초의 패션 브랜드 올버즈(Allbirds)는 탄소 발자국 계산 키트를 패션 업계에 공개했다. 다른 기업이나 브랜드에서 따라 할 수 있도록 면밀히 체계화한 것이다. 올버즈가 글로벌 인증 기구 SCS사와 제휴해 몇 년간 공들여 개발한 혁신적 전 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측정 툴은 산출한 공급망 데이터를 입력하기만 하면 되는 스프레드시트와 소재, 제조, 운송, 세탁, 폐기 과정에서 일어나는 배출량의 적용 방법에 대한 팁을 정리한 PDF 안내서, 새로운 버전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올버즈 라벨 샘플로 구성돼 있다. 이 모든 것은 클릭 몇 번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올버즈의 지속가능성 책임자 하나 카지무라는 이 오픈 소싱 비전에 대해 “패션 분야의 탄소 라벨링이 식품 산업의 영양 라벨링만큼 보편적으로 사용되기를 희망합니다. 소비자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브랜드 역시 탄소 배출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한다. 올버즈의 목표는 2025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50%, 2030년까지는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것. 

국내에도 이런 기후위기, 해외 패션 업계 동향에 발맞춰 기업에서 탄소 데이터를 쉽게 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돕는 곳이 있다. 에너지를 사용하고 원자재 제조에서 폐기까지 평생 배출하는 탄소를 분석하는 LCA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며 기반을 다진 탄소중립연구원(CNRI)이다. ‘모든 탄소의 데이터화’를 목표로 섬유 소재별 데이터와 국내 섬유 산업 실제 데이터를 활용한 의류 탄소 계산기인 패션 LCA도 공개했다. 탄소중립연구원 사이트에서 누구나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옷의 종류와 무게, 제품을 구성하는 소재 정보를 기입하는 단순한 프로세서다. 자체 개발한 디지털 암호 케어 라벨을 통해 재판매 보증 서비스를 지원하는 순환 패션 플랫폼 민트컬렉션은 지난해 11월 탄소중립연구원 패션 LCA를 이용해 MZ 패션 피플의 지속가능한 쇼핑을 돕는 특별한 이벤트를 펼쳤다. Y2K 감성으로 주목받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오호스의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며 패션 탄소 발자국 계산기를 시연한 것이다. 노힘찬 민트컬렉션 대표는 “구입하는 제품의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고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인지한 소비자가 옷의 가치를 체험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새 옷이 아닌 새로운 옷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패션이 단순 소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돌고 돌며 순환하는 문화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모두가 건강한 패션을 즐기기 위해 고민하고 근본적 대안을 만들어가는 이상적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노력 중입니다”라고 전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의류가 만들어지고 판매되기까지 기후에 미친 영향을 투명하게 기록한 디지털 형식 라벨 부착(Climate-impact Label)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원자재는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되었는가?‘ ’염색하기 위해 무엇을 사용했는가?‘ ’운송을 위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공장 전력은 태양에너지인가, 석탄인가?’ 등을 꼼꼼하게 기입하는 것이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은 현재 실제 의류 품목 500가지를 사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후 영향 라벨이 소비자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여기서 탄소 배출량 계산기는 에디터의 티셔츠에 붙어 있던 라벨 속 ‘메이드 인 캄보디아’ 같은 달랑 한 줄 요약을 대체하며 기후에 끼친 영향을 정확하게 인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소재를 찾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착한 패션 브랜드가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투명한 사실 제공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적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제대로 갖출 때다.

에디터
최정윤
디자이너
오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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