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의 아카데미 4
현대적 대량 생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은 귀중한 ‘레어템’과도 같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패션 하우스는 자신들의 철학과 기술을 미래 세대에 전승하고자 자체 아카데미를 만들어 젊은 인재를 육성하는 중이다.
Hermes School Of Skill
에르메스는 가죽공예 가치와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해마다 장인 200여 명을 모집한다. 하지만 지원자 열에 아홉은 가죽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는 초보자라는 현실을 마주했다. 꿈을 가진 인재라면 모두 수용하고자 하는 메종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꼈고, 2021년 9월 프랑스 교육부의 인증을 받은 견습 교육 센터(Ecole Hermes des Savoir-faire)를 설립했다. 이곳은 가죽공예 국가 학위에서 인가한 교육과정을 따르며, 프랑스 가죽 제품 연맹으로부터 인증받은 재단 및 바느질 분야의 전문 자격을 제공한다. 프랑스 전역의 지역 허브에 위치한 매뉴팩처 19개에서 운영하는 센터는 현장에서 일하는 장인이 직접 교육하며, 장인들이 견습생에게 보다 좋은 컨디션에서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계승할 수 있도록 기업 차원에서 적극 지원한다. 교육 과정 중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인턴은 도구와 기술을 배울 때 오감을 총동원해 관찰하고 실험해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펄링이라는 세팅 기술을 배울 때는 눈을 감고 기술이 행해지는 음악적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통해 도구에 가해지는 힘의 규칙성을 스스로 온전히 깨닫는 식이다. 결국 물건을 성공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 장인의 꿈과 열정이 담기길 원하는 메종의 철학을 따랐다. 장인이 되기를 열망하고 수작업 기술을 개발하기를 꿈꾸는 각계각층의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웹사이트(ecole.hermes.com)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Prada Group Academy
“차세대 전문 공예가가 될 젊은 인재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프라다가 오는 연말까지 산업 부문에서 400명 이상의 인재를 추가 고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듯 프라다 그룹에 새롭게 합류할 이들은 2000년대 초반에 설립한 프라다 그룹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밟은 학생 위주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프라다 그룹 사이트(pradagroup.com)를 통해 지원하는 프라다 그룹 아카데미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모든 패션 인재를 대상으로 3개 코스를 운영한다. 첫 번째 인더스트리얼 아카데미에서는 18~25세의 장인에게 신발, 가죽 제품 및 의류 제조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원료와 제조 공정 및 기술에 대한 이론 수업부터 공급 업체 차원에서 주관하는 실습 시간을 포함한다. 두 번째 학습과 개발 아카데미는 전통적인 이론 교육을 바탕으로 한 온디맨드 디지털 강의 플랫폼이다. 모든 직원에게 상시 열려 있는 이 아카데미는 스스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를 멀티미디어 라이브러리, 자습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스토어 아카데미는 부티크 직원을 위한 프로그램. 제품과 관련한 풍부한 지식 습득뿐 아니라 고객 응대 방식, 디지털 도구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매장 내 제품 관리 등을 교육한다. 더 나아가 피렌체 인근의 스칸디치 가죽 공장에 새로운 아카데미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힌 프라다 그룹. 이곳에서 학생 30여 명이 첫 번째 프로그램에 참여해 하우스의 미래를 밝히게 될 테다.
Valentino Careers
깃털 수만 개가 구조적인 실루엣을 따라 흩날리는 발렌티노 쿠튀르 드레스를 보고 있으면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할 경이로움에 빠지게 된다. 이는 장시간의 인내와 노력, 정밀한 기교, 뿌리 깊은 장인정신, 광범위한 지식,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을 고루 갖춘 장인의 손끝에서 한땀 한땀 완성되는 결과물. 메종은 이를 미래 세대에 전수하고자 ‘라 보테가 델 아르테’와 ‘라 보테가 데이 메스티에리’란 내부 교육기관을 운영 중이다. 두 학교는 새로운 인적 자원의 역량을 키워 메종의 DNA이자 헤리티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프레타포르테와 오트 쿠튀르 장인으로 양성한다. 먼저 ‘라 보테가 델 아르테’는 10개월간의 장인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오트 쿠튀르 패션쇼 기간이 되면 학생들은 메종의 본사 팔라초 미냐넬리 아틀리에에 투입돼 2개월 동안 전문 디자이너와 호흡을 맞춰 쇼를 준비하고 메종의 인재로서 거듭나게 된다. 한편 2개월 기술 교육 프로그램 ‘라 보테가 데이 메스티에리’는 발렌티노 재봉사가 직접 재단과 테일러링, 모델링 기술을 교육한다. 제품 개발과 관리에 대한 지식까지 배우고 나면 인턴십 기회를 얻는다. 더 나아가 지난해 10월부터는 커리어 전용 웹사이트(jobs.valentino.com)를 통해 브랜드의 본고장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인재를 모집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중. 한국어를 포함해 영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로 제공하고 있으며, 인력보다 더 소중한 자원은 없다는 뚜렷한 인식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일원을 모집한다. 이후 발렌티노의 일원이 되면 아카데미아 발렌티노의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 ‘발렌티노 저니’를 제공하며 고객 중심적 사고와 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얼마 전 2024 봄/여름 ‘발렌티노 더 내러티브’ 남성 컬렉션이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교의 활기찬 캠퍼스 내에서 열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베뉴 선정에 대해 “학생, 메종의 커뮤니티 그리고 도시와 함께 대화의 장을 열 것입니다. 이는 비전을 품은 미래 세대와 그들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에 대한 경의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미래 세대를 지원하려고 장학금을 기부하고 교육과정과 지역 커뮤니티에 꾸준히 투자하는 발렌티노의 세심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Loro Piana Accademia
로로피아나는 40여 개 사업부를 보유 중인데, 분야마다 뛰어난 기술력과 장인정신, 전문성이 녹아 있다. 2015년 설립한 전문가 아카데미(Accademia dei Mestieri)는 바로 이런 귀중한 브랜드 유산을 지식 코딩, 지식 성장, 지식 공유라는 핵심 키워드 3가지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인 프로세스로 제공한다. 전체 생산 공정을 다루는 인쇄물과 디지털 형식의 교육 매뉴얼을 제작하고, 고도의 기계화 작업은 증강현실 기술에 힘입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희귀하고 다루기 어려운 최고급 소재만 사용하는 메종은 수많은 공정 중에서도 수공예 기술 강화에 특별히 힘을 쏟는 중. 이에 해당하는 시설로는 복잡한 니트웨어 제작 단계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실라벤고 시설의 ME LVMH 니트웨어 공예 학교(6개월 과정), 직물 기술자가 신기술을 개발하도록 후원하는 직물 아카데미, 초급자부터 연장자까지 모두 아우르며 실무 경험을 쌓도록 돕는 임프루네타 공장의 ME LVMH 가죽공예 프로그램 등이 있다. 로로피아나의 전문가 아카데미 활동은 지역사회의 젊은 인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탈리아 교육부 미우르(MIUR)와 협업해 지역에 위치한 직업 학교를 파악하고, 학생을 위해 공예 및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경연 대회와 교육 워크숍을 여는 식이다. 이를 통해 재학 중인 학생은 공예의 사회적 가치와 아름다움, 직업에 대한 열정을 키우고, 졸업을 앞둔 학생은 직물 공정에 대한 전방위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원하는 회사에서 성공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한편 젊은 세대에게 직물에 대한 열정을 고취하기 위한 ‘마이 질랜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는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질랜더 울을 소재로 미니 패브릭 컬렉션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3년에 걸친 이 프로젝트는 원재료부터 브랜드의 기초가 되는 생산 공정과 기술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에 걸쳐 학생들의 교육에 이바지한다. 그야말로 학생과 하우스 모두에게 ‘윈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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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최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