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HEART / 안은진
단단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안은진의 지금.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죠?
이토록 찬란한 여름을 보낸 적이 있나 싶어요. 드라마 <연인>을 촬영하며 지금껏 가보지 못한 전국 팔도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갔어요. 경남 함안과 하동, 대관령, 경북 문경 등 전국 방방곡곡 쏘다녔어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경남 합천에 위치한 황매산요. 탁 트인 경관이 압도적이에요. 막상 방영된 장면을 보면서는 아름답다는 감상과 함께 현장 비하인드가 떠올라요. 야외 촬영이다 보니 다사다난한 일이 많았어요.
첫 방송은 누구와 함께 봤어요?
제작 발표회가 끝나고 스태프 모두 남궁민 선배의 사무실에 모였어요. 지방 촬영이 잦아서 회식을 거의 못했는데, 모처럼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회식 느낌으로 신나게 시청했죠.
감독님은 당신이 지닌 다양성에서 길채를 보았다고 했죠. 동의해요?
칭찬을 워낙 많이 해주셨어요. 여러 이야기를 하셨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체력도 많이 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체력이 좋아야만 했나요?
누군가를 업고, 이고 지고 도망 다니고 죽을 둥 살 둥 뛰어다니거든요. 악을 쓰면서 뛰니까 에너지를 엄청나게 쓰는데 과호흡이 올 때도 있어요. 한 번 찍으면 포도당 먹고 뛰고 또 뛰었어요. 생사가 걸린 상황으로 설정되다 보니 생생하지 않으면 와닿지 않겠더라고요. 더 치열하게 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능군리 상여우’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인데요?
그래서 길채의 성장에 주목하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성숙해진다기보다는 본래 가지고 있는 성향이 주변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발현되는지 비교하는 묘미가 있을 거예요. 고난과 역경 앞에서 엄청난 결단, 리더십 등이 발휘되거든요.
성장의 폭이 상당한가 봐요.
그래서 촬영 초반 감독님이 더 날카롭게 연기할 것을 주문하셨어요. 까탈스럽고 얌체 같은 모습을 더 살리면 좋겠다고 하셨죠. 연기하는 입장에서 캐릭터가 비호감으로 보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감독님께서는 앞으로 펼쳐질 일을 보면 시청자가 잘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대비를 위한 감독님의 큰 그림이었나 봐요. 길채가 내리는 선택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것들이 있어 어떻게 보실지 기대돼요. 감내하거나 지고지순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거든요. 선택을 통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과정을 시청자가 어떻게 보실까 궁금해요.
길채를 비롯해 <나쁜 엄마>의 미주, <한 사람만>의 인숙,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추민하 모두 삶의 방식이 거침없어요. 실제와 닮은 구석이 있어요?
돌아보면 모두 능동적인 면이 강한 캐릭터였네요. 그들의 기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저도 힘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 깎이고 꺾이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는 “여러분!”을 자주 외친 것 같아요(웃음). 이의 제기의 주축에 서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 친구들이 영웅으로 통하잖아요. 여고라면 더더욱.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이제 막 부임한 분이셨는데, 다른 반과 달리 피자를 못 시켜 먹게 한 적이 있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반대하셨는데, 대쪽 같으셔서 어떤 이유로도 설득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반 애들끼리 피자 쿠폰을 모아서 먹겠다고 했어요.
그 중심에는 은진 씨가 있었고요?
네. 그런데 리더가 밝혀지면 안 되니까 사발통문으로 입장문을 썼어요. ‘우리는 피자가 먹고 싶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우정과 추억이 증진된다’ 하는 내용으로 강력하게 어필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결국 먹었어요?
무산됐어요.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입장이 이해돼요.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 결기가 눈에 박혀 있나 봐요. 연기할 때 에너지가 불끈불끈 솟기도 할 것 같아요. 어때요?
캐릭터에서 얻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민하가 양석형에게 고백하며 했던 자존감 높은 말들, <나쁜 엄마> 속 미주의 용서와 감내하는 넓은 마음은 안은진이라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거든요. 캐릭터를 통해 삶이 더 강해지고 건강해져요.
길채에게서는 무엇을 얻었어요?
삶에 대한 의지요. 우리는 존재의 이유를 모른 채 세상에 태어나잖아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기꺼이 생존을 택하는 의지가 뭉클해요. 길채가 종종이에게 하는 말 중 “난 그때 살아서 좋았어. 그러니까 우리 이번에도 살자”라는 내용의 대사가 있는데,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그 의지와 강인함이 제게도 용기를 줘요. 길채의 대사 중 휴대폰에 적어놓은 말이 많아요.
사랑에 있어서는 어때요? 길채와 장현의 절절한 사랑이 포스터에서부터 느껴지거든요.
두 사람의 사랑은 어마어마한 고난 앞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상대를 위해서라면 나는 어찌 되든 상관없거든요. 세기의 사랑이라 생각해요.
그런 사랑을 믿지 않나 봐요?
너무 어려운데요. 음, 개인적으로는 현실에 맞춰 살자 주의예요. 서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일상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최고다 싶죠. 평생 같이 놀 친구 같은 존재요. 30대가 되니 더더욱 그래요. 별일 없이 살자 주의예요.
요즘은 추구하는 평온함에 얼마나 가까워요?
지금만 같아라 싶어요. 행복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고, 든든한 친구 있고, 여러 사람의 지지를 받으며 일하고 있잖아요. 가끔 문제가 생길 때도 있지만, 늘 해온 대로 해결하면 그만이고요.
30대에 이르러 생긴 변화인가요? 20대에는 어땠어요?
비슷한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때는 슬픔을 더 잘 느끼기도 했고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컸어요. 경험치가 부족하니 해결 방법도 잘 몰랐고요. 연습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고 슬픔의 빈도도 줄었어요.
나이가 들며 더 바라는 모습이 생겼어요?
갈수록 더 괜찮아지는 순간도 잦고 무뎌지겠지만 힘든 일이 닥치면 당연히 힘들겠죠. 그때 빠르게 털고 일어서는 연습을 하려고 해요. 마음 근력을 키우면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계발서를 읽거나 <세바시> 같은 프로그램을 즐긴다고요. 요즘도 봐요?
너무 좋아해요. 요즘 키워드는 마음 근력, 회복 탄력성이에요. 김주환 교수님 영상 많이 봐요.
저도 한때 뇌과학에 빠진 적이 있어요.
정말 재미있죠! 책도 주문하고 유튜브 영상도 자주 봐요. 감정과 기분에 ‘왜’를 찾을 수 있어서 명쾌해요.
큰 도움이 된 콘텐츠는 뭐예요?
20대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라이징 스트롱>. 20대 초반에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친구들을 상대로 연습도 해보고는 했어요. 공연으로 데뷔한 이후 눈치도 보고 그랬는데, 정말 존경하는 이상우 선생님의 <야생 연극>도 도움이 됐어요.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탐구 과정을 거쳤네요. 재미있나요?
나를 알고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과거에는 심리학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과학적으로 접근하죠.
커리어도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해왔네요. ‘성실함도 재능’이라는 말 알아요?
연기하는 분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너무너무 간절하거든요.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좋아하려 노력하니까 그만큼 캐릭터를 애정해주면 사랑이 통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꿈꾸던 사랑이 이뤄진 기분요. 그게 닿으면 성공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배우의 몸은 늘 투명하게 유지해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배우로서 이쯤이면 만족스럽겠다는 목표도 있어요?
저 역시 이 질문의 답이 궁금해서 선배님들한테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모든 선배님들의 대답이 똑같았어요. “완전히 만족하고 괜찮을 때는 절대 없어. 더 힘들어.” 보이는 게 많아지는 만큼 불만족스럽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불안하다고 덧붙이셨죠. 이 사랑과 구애만큼은 끝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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