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파민 단식기

소리 없이 도파민 파티를 부추기는 디지털 세계, 더 자극적이고 더 짧은 콘텐츠를 갈구하는 ‘도파민 중독’으로부터 고통받은 뇌를 청소할 시간이 필요하다.

도파민 중독자의 방구석

퇴근 후 집에 가면 작은 방을 가득 채운 침대에 온몸을 맡긴다. 그리고 침대 옆에 위태롭게 뻗은 태블릿 PC 거치대를 매만지며 안락한 각도로 세팅한 다음, 몇 시간이고 영상을 본다. OTT 플랫폼 4군데를 쉴 새 없이 옮겨 다니면서 볼거리를 찾고, 질릴 때쯤 유튜브를 켰다가 섭섭하지 않게 인스타그램에도 들러준다. 감기는 눈을 꾸역꾸역 부여잡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영상 재생 속도를 1.75배로 맞추고,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을 동시에 돌리는 듀얼 시스템까지 가동했다. 완벽한 OTT 룸에 만족해하며 영상을 즐기던 어느 날, 슬쩍 방문을 연 엄마가 한마디를 내뱉고 사라졌다. “너 진짜 산만하다.”

그제야 방에서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내 OTT 룸을 멀리서 바라본 거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휘황찬란하게 뒤바뀌는 자극적인 화면, 끊임없이 겹쳐 웅얼대는 오디오 소리, 여기저기 비집고 나오는 눈부신 블루 라이트까지. 내가 저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던가? 한눈에 봐도 멀쩡한 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든, 영락없는 쾌락 중독자의 방구석이다. 그간 배속 없는 영상을 답답해하며 5분이 넘는 게시물은 건너뛰고, 스크롤을 숨 쉬듯 내린 건 그저 잠들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보기 위한 발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도파민의 노예가 된 결과였다. 집중력과 자제력을 잃고 엉망이 된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다.

쾌락에는 대가가 따른다

처참한 나의 자기 고발에 공감대를 느낀 이들이 많을 거다. 우리 모두 디지털 기기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기기 속 OTT, SNS 세계에서는 흥미롭고 강력한 자극을 짧은 시간 안에 느낄 수 있다. 뇌에서 극도의 쾌감을 맛볼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의 분비가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얻는 도파민 분비가 증가하면 집중력과 주의력이 저하해 ADHD, 우울증 같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떠먹여주는 도파민에 의존하면서 뇌가 수동적으로 변하고 결국은 도파민 내성이 생겨 더욱 단시간에, 더욱 강한 자극과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재미있고 강력한 자극을 무한대로 제공합니다. 여기에 계속 빠져들면 일상 속 소소한 자극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점점 더 극한의 자극만 찾게 되죠.”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의 설명이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보다 유튜브 영상을 10분 보는 것이 더 흥미롭고, 그보다 임팩트 있는 3분짜리 숏폼을 시청한다면 도파민에 중독됐다는 뜻. 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지속적으로 맵고 짠 음식을 찾거나, 피곤할 때 커피를 두세 잔씩 들이켜는 것 역시 도파민 과잉 분비의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음식을 섭취하면 도파민 분비가 급상승하면서 스트레스가 빠르게 해소되고 집중력과 기력이 솟는다. 뇌가 이런 짜릿한 기분에 중독되어 계속 자극적인 음식에 반응하는 것이다. 

간헐적 도파민 단식기

직접 도파민 단식을 하려니 도전하는 날을 정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24시간 디지털 기기 차단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날은 봐야 할 영상이 있고, 이날은 연락 올 데가 있어서 등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스마트폰 전원을 과감하게 껐다. 다른 생각이 들기 전에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에 나섰고, 돌아와서는 방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심심한 손을 뒤로한 채 연습장에 가서 쉴 틈 없이 골프채를 휘둘렀다. 오랜만에 천천히 공들인 목욕을 즐기고, 어수선한 물건을 정리하며 먼지 쌓인 책을 읽었다. 다이어리를 꺼내 잡다한 생각도 적어보니 우려하던 만큼 하루가 길지는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없이 보내면서 문득문득 불안하고, 헛헛한 마음도 들었지만 나름 개운했다. 아무 생각 없는 여유로움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그간 해야 했지만 할 생각을 하지 않은 소박한 일이 눈에 들어오고, 오로지 나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스마트폰, 멍하게 시청하던 OTT 영상이 오히려 이런 순간을 빼앗았던 건 아닐까. 콘텐츠에 대한 욕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단 하루의 체험이었지만 그날 이후 한 가지는 여전히 실천 중이다. 몇몇 앱의 알림을 꺼버린 것. 바로 확인할 필요 없는 알림은 나를 인위적인 도파민 지옥으로 끌고가는 듯하다. 내 뇌를 어떤 도파민으로 가득 채울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는데 말이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

• 모닝커피 끊기
• 하루 10~20분 멍때리기
• 6개월간 사용하지 않은 스마트폰 앱 삭제하기
•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지 않는 ‘노 테크존’ 만들기
• SNS와 모바일 메신저 알림 끄기

에디터
황혜진
디자이너
오신혜
참고 서적
<도파민네이션>(흐름출판), <클린 브레인>(지식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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