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빛나게 한 것은? 2023 얼루어 리포트 / 패션편 (1)
팬데믹으로 우울한 장막이 걷힌 패션계는 지난 3년간 응축해온 모든 열정과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지속가능성을 되새기고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나날이 축제 분위기로 한 해를 달군 패션 업계 이슈를 모았다.
IN SEOUL
패션 도시 하면 대부분 패션위크를 성대히 치르는 4대 도시 파리, 밀란, 런던, 뉴욕부터 떠오르겠지만, 2023년만큼은 ‘서울’이 글로벌 패션 피플이 주목한 제일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빅 브랜드는 앞다퉈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를 독점하며 창의적인 문화 교류의 장으로 탈바꿈했으니까. 루이 비통은 한강 잠수교에서, 구찌는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선보여 서울의 밤을 환희로 물들였고, 인사동에서 열린 열 번째 ‘프라다 모드’, 성수동 일대를 보랏빛 장미로 물들인 ‘버버리 로즈’ 팝업, 오감을 자극하며 에르메스 백 스토리를 소개한 ‘플리즈 체크인’, 더현대 서울에서 선보인 프레드의 ‘주얼러 크리에이터 SINCE 1936’ 전시까지! 그동안 해외에서만 만날 수 있던 프로젝트와 크고 작은 패션 행사가 집결했다. 이 기세를 몰아 무려 18m에 달하는 불가리 ‘세르펜티 라이트’ 조형물이 석촌호수에 등장했으니, 올해의 서울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세르펜티 루미나리에를 감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길 바란다.
NEW GENERATIO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전격 교체한 하우스 브랜드. 2024년을 이끌어갈 뉴 페이스를 소개한다.
49.4% RED ERA
팬톤이 지정한 올해의 컬러는 비바 마젠타. 그들의 전망대로 레드의 인기는 과열 그 자체였다. 보테가 베네타의 불타오르는 듯한 비비드 드레스부터 에르메스의 농익은 브릭 레드 룩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레드 팔레트가 런웨이를 장악한 것. 시선을 사로잡는 레드의 매력에 모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일까. 네이버 데이터 랩에 따르면, 올해 ‘레드’ 키워드 검색량은 전년 대비 약 49.4% 증가했다고. 12월의 홀리데이 파티에서는 특별히 더 풍성해진 레드 스타일링을 마음껏 즐겨보기를.
NEVER STOP Y2K
지난해 뉴진스의 데뷔 이후 대한민국은 Y2K 패션이 휩쓸었다. 쉽게 수그러들 것 같던 세기말 패션은 올해 들어 MZ세대뿐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인기를 끌었고, ‘그때 그 시절’ 헌정 패션은 오히려 대담해졌다. 그칠 줄 모르는 이 유행은 최근 이효리의 컴백으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타이틀곡 제목도 ‘후디에 반바지’. 무대에 오른 이효리는 핏한 트레이닝복과 로라이즈 팬츠, 원색의 크롭트 톱 등의 스타일링으로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을 2023년 버전으로 완벽하게 재현했다.
FOREVER ICONIC
프렌치 시크의 원조, 에르메스 버킨 백의 주인공이자 배우와 가수, 모델을 겸했던 제인 버킨과 1960년대 미니 스커트 유행을 이끈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세상을 떠났다. 시대를 초월해 멋의 방점을 찍은 패션 아이콘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K-POP POWER
K-팝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수많은 아티스트가 브랜드의 대표 얼굴로 발탁됐다. 올해 선정된 앰배서더의 특징은 아이돌 스타로 집중됐다는 점. 전보다 낮아진 명품 소비 연령층에 어필할 전략으로 브랜드 또한 아이돌 시장에 깊숙이 뿌리내린 것이다. NCT 도영은 돌체앤가바나의 한일 앰배서더 발탁 5개월 만에 글로벌 앰배서더로 기용되어 1년 사이 강한 파급력을 입증했다. 그뿐 아니라 뉴진스 다니엘은 버버리, NCT 태용은 로에베, 제노는 페라가모, 정우는 토즈, 르세라핌은 루이 비통, (여자)아이들 미연은 지미추 앰배서더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 한편 트와이스 채영은 일본 에트로의 첫 앰배서더로 선정되었다.
HEALTHY PLEASURE
야외 활동이 점점 늘어나며 다양한 스포츠가 각광받았지만, 특히 돋보인 건 테니스. 더불어 여성 사이에서는 테니스 코트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는 테니스 룩이 큰 주목을 받았다. 움직임에 따라 경쾌하게 살랑이는 테니스 스커트는 스쿨 룩 트렌드와 맞물리며 S/S 시즌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등극했고, 여세를 몰아 휠라, 헤드, 윌슨, 라코스테 등 패션 브랜드에서는 테니스와 라이프 스타일을 결합한 이색 테마로 대규모 팝업 행사를 개최해 MZ세대를 공략했다.
GLORY LVMH FAMILY
글로벌 쇼핑 침체기에도 프랑스의 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LVMH)는 지난해에 비해 14%의 유기적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비록 지난 3분기 매출은 예상보다 낮았지만, 그룹을 구성하는 각 브랜드의 행보를 살펴보면 어느 때보다 알차다. 먼저 지난 6월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 새 디렉터로 임명된 퍼렐 윌리엄스의 첫 데뷔쇼는 브랜드 자체 플랫폼과 다양한 언론 계정을 통해 합산 10억 뷰를 달성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디올은 여름 내내 세계 각지에서 ‘디올 리비에라’ 팝업을 소개했고, 로에베는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의 창의적인 디자인이 꾸준히 상승세를 탔으며, 로로피아나는 재활용 캐시미어로 만든 첫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 밖에 티파니는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를 재개장, 프레드는 메종 최초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인 ‘어데이셔스 블루’ 공개, 쇼메는 방돔 12번지의 유서 깊은 살롱에서 <골든 에이지 : 1965~1985> 회고전을 선보이며 모두 강력한 성장을 기록했다.
FOR THE EARTH
지난 6월 유럽연합(EU)이 “2028년까지 의류 폐기물 규제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패션 브랜드와 기업에서는 올 한 해 새로운 개정안에 대비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프라다, 끌로에, 멀버리, 스텔라 매카트니, 가니, 룰루레몬, 파타고니아, 아르켓 등 하이엔드 브랜드부터 SPA 브랜드까지 친환경 소재나 데드스톡을 활용한 컬렉션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지속가능한 신소재 연구 개발 투자에 나섰다. 이 밖에 캐나다구스는 자체 중고 보상 프로그램을 선보였으며, 케링 아이웨어는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지속가능성의 날’을 개최해 미래의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를 검토하고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HAPPY BIRTHDAY
올해 열 살 생일을 맞은 막스마라 테디 코트부터 불가리 세르펜티 컬렉션 75주년,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70주년, 피아제 라임라이트 50주년, 태그호이어 까레라 60주년, 라코스테 90주년까지. 2023년을 특별하게 맞이한 패션 아이콘들! 한편 디즈니는 100주년 경매 행사를 위해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한 신데렐라 크리스털 유리 구두를 공개했다. 판매 수익금은 모두 기부할 예정. “모두 축하해.”
극과 극
키치하고 러블리한 바비코어 룩과 차분한 분위기의 올드 머니 룩. 대척점에 있는 두 트렌드가 변덕 심한 패션 피플의 눈길을 동시에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슈즈 전성시대
봄에는 로맨틱한 발레리나 슈즈가 대인기를 끌었고, 여름엔 역대급 장마 괴담에 레인 부츠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리고 가을엔 수 많은 브랜드에서 신상 러너 스니커즈를 마구 쏟아냈으며, 예년보다 빠른 추위에 털 부츠 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 패션 플랫폼 리스트의 3분기 인기 제품 60%도 바로 신발! 동시대 패션 피플에게 잘 고른 슈즈 하나가 급변하는 트렌드를 캐치하는 수단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UPGRADE DIGITAL WORLD
암호 화폐 커뮤니티 댑 갬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래의 자산이라 일컬어진 NFT의 95%가 제로 이더리움, 즉 빈껍데기로 전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패션계는 악성 높은 셀러를 차단하고 브랜드 제품을 진정한 팬에게 공급하는 일종의 디지털 패스포트로 새 가치를 찾았다. 루이 비통은 거래 불가능한 실물 연계 ‘비아 트레저 트렁크’ NFT 컬렉션을 론칭했고, 디올은 디지털 정품 인증서와 향후 출시되는 컬렉션을 다이렉트로 받아 볼 수 있는 NFC 칩 장착 ‘B33’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한편 소프트웨어 개발사 어도비는 생성 AI를 활용해 눈 깜짝할 사이 옷의 패턴이 바뀌는 패스트 드레스를 공개했다. 마치 공상 과학 영화 속 인물처럼 한계 없이 무한한 스타일을 자랑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