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 인간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은 나날이 정교해지는 중이다. 외모부터 능력까지, 모든 걸 갖춘 ‘육각형 인간’이 추앙받는 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요즘 20~30대에게 ‘갓생’은 기본이다. 시간을 쪼개어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삶은 흔한 것이 되었다. 유튜브에 ‘회사원 브이로그’를 검색할 때 나오는 결과만 봐도 그렇다. 출근 전후, 시간을 쪼개어 독서 모임을 하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데 열심이면서 주 3회 운동에 식단 조절도 게을리하지 않는 갓생러의 삶이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이제 학력과 직업처럼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요소는 기본. 여기에 넉넉한 집안 환경, 자기 관리의 척도로 여겨지는 외모, 훌륭한 성품까지 갖춰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배우자의 연봉보다 그 집안의 재력을 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친구와 외모도 능력이라는 동료의 말은 어쩌면 현실이다. 외모와 집안을 논하는 걸 속물처럼 여기던 시대는 한참 지났다. 

완벽을 꿈꾸다

올해로 16년째. 대한민국의 소비 트렌드를 한발 앞서 내다보는 책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집필한 연구진 10여 명은 이런 분위기가 한동안 유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뜻하는 ‘육각형 인간’은 2024년의 새로운 화두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꼭짓점 6개로 이뤄진 육각형 그래프에서 모든 중심축이 그래프의 끝까지 뻗은 정육각형에 가까울 때, 이를 육각형 인간이라고 칭한다.

핵심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즉 외모나 집안처럼 타고난 조건에 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남들이 선망하는 걸 갖고 있다는 이유로 더 쿨하고 멋있게 보인다. 요즘 4세대 아이돌은 육각형 인간의 표본이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건 기본. 작사, 작곡, 프로듀싱 능력에 외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알고 보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거기에 연기며 예능이며 어떤 장르도 소화 가능한 데다 호감형 이미지까지 겸비한 캐릭터가 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비주얼 멤버’가 한두 명에 불과하던 과거 아이돌 그룹과 달리 이제는 멤버 각자가 개성과 능력치를 고루 갖춘 팀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인공지능(AI) 기반의 빅데이터 전문 기업 코난테크놀로지에서 아이돌을 키워드로 뉴스와 트위터, 커뮤니티, 카페 등 소셜 미디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외모, 성격, 집안에 대한 언급량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방송과 광고계를 종횡무진하는 현역 아이돌 중 고진감래형 스토리를 어필하는 인물은 떠오르지 않는다. 엘리트 집안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 과정을 마침과 동시에 본업인 노래와 춤에서도 월등한 능력치를 뽐내는 아이돌이 ‘완성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더 우상화되고 있을 뿐.

육각형 인간임을 증명하려는 욕심은 모든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줄 세우는 사회 기조를 형성했다. ‘블릿’이나 ‘틴더’처럼 유행하는 데이팅 앱은 어떤가. 만남을 결정하기에 앞서 수치로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기본이다. <하트시그널>과 <솔로지옥> 등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출연자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너무나도 쉽게 평가의 도마에 오른다. 출신 지역, 학창 시절 평판, 현재 자산 수준 등을 토대로 등급을 매기며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이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처럼 자리 잡았다. 일부 아이돌 팬덤은 ‘내 가수’가 어떤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되었는지에 따라 능력치와 인기를 가늠하고 급을 나누려 들기도 한다.

자기만의 육각형

현실에서 완벽한 정육각형을 이루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게임에서도 모든 능력치가 만렙인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약점이 그 캐릭터의 색을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게임을 다채롭고 재미있게 하는 법이니까. 대체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왜 이렇게까지 완벽에 가까운 기준을 들이미는 걸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전미영 교수는 “노력의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진 사회의 구조는 노력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육각형 인간처럼 터무니없어 보이는 높은 목표치는 결국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 통계청이 ‘계층 이동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력한다면 내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0년 전 대비 11.4%나 감소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현실을 희화화하는 건 일종의 놀이로 자리 잡은 듯하다. 요즘 인스타툰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는 어딘가 조금씩 ‘맑은 눈의 광인’을 닮았다. 회사 생활의 고단함, 돈이 없어 겪는 서러움, 짜증과 분노가 솟구치는, 완벽하지 못한 일상의 장면을 그리지만 말풍선 안에는 ‘가보자고!’ ‘내가 최고야’ 같은 무한 긍정 태도의 말뿐이다.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파이팅은 각박한 현실을 자조 섞인 웃음으로 버무리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일 테다. 대책 없는 긍정이나 이번 생은 글렀다는 푸념 대신 자기만의 육각형을 무기 삼아 보는 건 어떨까. 비뚤어진 육각형이 더 뾰족한 쓸모와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에디터
고영진
일러스트레이터
GORAN FACTORY
참고 서적
<트렌드 코리아 2024>(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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