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켰어 / 안재홍
TV를 튼다. 어디에나 안재홍이 나온다.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길을 가보는 사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금 서울에 폭설이 내리고 있어요. 어쩐지 스튜디오에 함께 고립된 것 같기도 하네요.
눈을 되게 좋아해요. 겨울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눈 오는 공기, 특히 오늘처럼 눈 내릴 때 포근해지는 공기를 되게 좋아해요. 오늘이 딱 그렇네요. 이런 눈은 또 느리게 내려요. 그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상반기에만 <LTNS> <닭강정> 등 작품이 계속 공개될 예정입니다. 다시 말해 쉬지 않고 찍었다는 얘기죠.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깊이 있게 해보고 싶었던 것 같고. 그 작품들 공개를 차근차근 준비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요. 너무 설레요.
‘설렌다’는 표현이 좋네요. 모두가 설렘을 바라지만 특히 본업에서 설렘을 느끼는 게 쉽지 않잖아요.
너무 설레고 새해가 됐다는 게 조금 실감 나요. 무엇보다 작품이 1월에 공개되는 게 설레죠. 새해 계획을 딱히 세워놓지는 않았는데, 큰 그림이라면 작품을 최대한 잘 전달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담았던 의미와 재미를 잘 전달하고 싶어요.
증량을 경험한 배우들이 다 공감하는 명언의 주인공이기도 해요. “찌우는 건 어렵지 않다. 멈추는 게 힘들었을 뿐.”
그 말에 다들 공감하시던가요? 하하. 정말 멈추는 게 빼는 것만큼 어려워요.
작품 때문이라지만 증량과 감량을 반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피자를 진짜 많이 먹었어요. 갈릭 디핑 소스를 곁들여서. 한번은 소스가 안 와서 마요네즈에 다진 마늘, 레몬즙, 설탕을 넣어 만들어봤어요.
우연히 오늘도 소품으로 피자를 준비했습니다. 그나저나 맛을 재연할 정도라면 요리를 즐기는군요?
해보니 얼추 비슷한 맛이 나요. 재밌죠 요리. 요즘은 일본식 오믈렛을 연습하고 있거든요. 아시죠? 반 가르면 이렇게 촉촉하게 흘러내리는.
그거 달걀 많이 들어가는데, 안재홍표 오믈렛 가격이 만만치 않겠어요. <해치지 않아> 배우잖아요. 방사 유정란 먹을 것 같아요.
하하! 동물복지 달걀 먹어야죠. 얼마 전에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작품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오믈렛을 연습할 만큼 여유가 느껴지네요. ‘LTNS(롱 타임 노 섹스)’라는 제목처럼 ‘19금’이라 19일 금요일에 공개되는 건가요?
정말이지 기막힌 우연으로. 사실 맞추기도 쉽지 않죠. 19일이 금요일인 때가 잘 없을 텐데. 사실 저도 아직 완성본을 못 봐서 기다리고 있어요.
1, 2회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죠?
맞아요, 저도 그때 봤는데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임대형, 전고운 감독님의 전작을 많이들 애정하셨고, 두 분의 합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하신 것 같아요. <소공녀>와 <윤희에게>의 정서보다 훨씬 더 매콤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에 반가워하고, 놀라기도 하는 것 같았어요. 연기자로서 그 순간 되게 감사했죠. 저도 뒷얘기를 더 보고 싶었고요. 6시간 보려면 힘들었으려나?(웃음) 전고운 감독님께 물어봤는데, 영화제 때 공개된 버전보다 완성도를 더 높였다고 하셔서 정말 궁금해요.
영화제에서 드라마와 시리즈 공개를 할 만큼 드라마의 위상이 달라졌어요.
저도 시리즈물로 영화제 찾은 건 처음이라서 새롭더라고요. 전고운 감독님이랑 임대형 감독님이 같이 각본을 쓰셨고요. <소공녀>가 집값과 취향이라는 모두가 느끼고 생각하는 걸 다르게 다뤘듯이, <LTNS>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에요.
공동 연출은 처음 경험한 거죠?
어떻게 감독님이 둘이야? 홀짝홀짝 나오시나요?(웃음) 다들 이렇게 물어보세요.
하하, A팀, B팀처럼 말이죠.
실제로 99% 함께 연출하셨거든요. 두 감독님의 정서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진짜 시너지가 있었어요. 이 작품 전에는 서로 아예 몰랐던 사이셨다는데, 뇌가 이어진 것처럼 생각이 잘 맞아요. 현장에서는 한 번도 의견이 불일치한 적이 없거든요. 마치 동기화가 된 것처럼. 임대형 감독님이 “각본을 같이 쓰면서 바라보는 곳이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생활 연기’가 더 어렵다고 하듯이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연기자 입장에서는 미묘한 걸 짚어내는 게 더 어렵고 공들여야 하고 세심히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묘한 순간이 나올 때 오는 감흥이 있잖아요. 그런 걸 찾기 위해서 현미경처럼 연기해야 하는 순간을 자주 만났어요. 정말 밀도 높은 작업이었어요. 말 한마디의 뉘앙스가 다를 때 다가오는 긴장감 있잖아요. 그런 걸 감독님들과 함께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가장 기다리는 시청자 중 한 명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 볼 생각이에요?
감독님들이 인터뷰할 때 술안주에 많이 비유하시더라고요. 그것만큼 맛있고 재밌고 위안이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은 회가 좋을 것 같은데, 뜨거워서 빨리 먹어야 되는 거 말고 두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안주요.
OTT로 모든 걸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TV는 여전히 굳건하죠. 어릴 적에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네’라는 동요가 있을 정도였는데요.
그런 생각조차 안 해봤어요. 하지만 워낙 TV 보는 걸 좋아했고, 비디오테이프 빌려 보는 것도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TV 드라마 상영 순간을 기다리던 세대였잖아요. 그때 안 보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저 역시 습관처럼 TV를 켜요. 일상처럼 보는 것 같아요.
특히 작년에는 배우로서 쾌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 <마스크걸> 주오남은 배우가 의도한 대로 대중이 반응을 해주지 않았나요?
<마스크걸> 공개가 8월 18일이었거든요. 그 날짜가 선명할 정도로 그날 밤에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너무 감사하죠. 한 작품과 인물을 디자인하고 그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매 작품,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 반응을 느낀다는 건 제일 행복하고 신나는 일이에요.
하하,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을 법한데요.
제가 꼭 하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주오남이라는 역할에 너무 뜨겁게 반응하시고, 큰 용기 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실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뭔가 해보고 싶고 가보고 싶었어요 저기를.
가봐야 느껴진다? 가보니 어때요?
여행 같은 거죠.(웃음) 못 가본 데 가봤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풍경을 본 느낌이다. 이국적인 곳을 여행한 느낌.
발길 닿는 데까지 가볼 작정인가요?
한번 가본 곳을 또다시 가보더라도, 못 봤던 것을 볼 수 있고 더 깊이 있게 볼 수도 있다 생각해요. 반면 안 가본 곳은 주춤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갔다 오면 분명 눈은 달라질 테니까요.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아요. 선을 긋지 않고 다양하게 많이 가보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까, 저도 궁금하고 가장 바라는 일 중 하나예요. 어떤 작품을 만날지. 또 어떤 캐릭터를 그릴지.
차기작인 <닭강정>은 또 어떤 여정이었을지.
많이 다릅니다. 굉장히 신선할 거예요. 선배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작품이라는 거, 캐릭터라는 건 인연이고 연이 닿아야 하는 거다. 너무 공감이 가요.
온라인 기사 제목 중 이런 게 있더라고요. “’닭강정’ 싱크로율? 날 보고 그렸나” 기대가 되면서 또 두렵기도 합니다.
다른 의미의 만찢남이죠.(웃음) 짧게 말씀드리면 제가 웹툰 안으로 걸어 들어간 느낌이 들었어요.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닭강정>도 신나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모험극 같은 성향도 띠거든요. 웹툰도 아주 재밌는데 그걸 이병헌 감독님이 재창조하신 거죠.
재미있는 어록과 도전이 많지만, 실제로 배우 안재홍을 만난 사람들은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라고 말해요. 그 간극은 어디서 오나요?
진솔함을 좋아해요. 너무 진솔로만 가득하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유머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단독 인터뷰 기회도 너무 귀하죠. 깊은 얘기를 하게 되니까요.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제 생각과 마음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싶거든요. 오늘은 진지해야지, 하고 집 밖을 나서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배우가 아닌 연출자 안재홍도 또 만나게 될까요?
기회가 되면은. 기회가 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긴다면 해보고 싶어요. 이것저것 써본다든지, 시도는 계속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닭강정> 얘기는 별로 못했네요.
그것도 아주 할 얘기가 많아요. 내내 할 수도 있어요. 분명히 지금껏 본 적 없는 뭔가가 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