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사마리안레시피의 선순환

건강하고 아름다운 식탁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 굿사마리안레시피의 지속가능 동력은 다정한 사랑이다. 

굿사마리안레시피

아픈 아들을 위해 작은 테이블 위에 펼쳐낸 음식은 굿사마리안레시피의 시작이다. 건강한 식재료로 완성한 이국적인 음식과 플레이팅은 한국에 없던 새로운 음식 문화를 창조했다. <박쥐> <아가씨> <더 글로리> 등 굵직한 작품의 포스터를 제작해온 그래픽 디자이너 김혜진은 F&B 영역을 전담하고, 내로라할 셀럽의 스타일링과 브랜드의 비주얼을 책임진 서은영은 건강한 나눔을 위한 크리에이티브를 이끈다.

건강한 맛집으로 소문난 굿사마리안레시피에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줄 몰랐다.
서은영
우리가 책을 쓴 이유도 바로 그거다. 김혜진 대표의 아들이 버킷림프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렸고, 아들을 살리려고 직접 건강한 식탁을 차린 경험이 굿사마리안레시피의 출발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그런데 사업이 확장되며 일대일로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공간의 이야기가 흐지부지되더라.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예능 프로그램 <캐나다 체크인>을 보게 됐다. 생명의 소중함, 유기견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현상을 목격하며 우리의 이야기 역시 구전이 아닌 자료를 만들고 공식화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책을 보니 그 ‘기록’의 시작은 아들을 간병 중인 김혜진 대표에게 ‘도시락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서은영 대표의 제안부터였더라.
김혜진 돌아보니 그렇다. 우리의 시작도 기록이었다.
서은영 참 감사한 게 김 대표는 내 제안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상황에서도 걱정은 할지언정 거절하지 않았다. 레스토랑을 제안했을 때도 “재미있겠네요”라며 발전적 방향을 제안해줬다. 사람들은 기 센 여자 둘이 안 싸우고 일하는 게 놀랍다고들 하지만 내가 열을 내면 김 대표는 들어주고, 무모한 아이디어를 던지면 훌륭하게 완성해준다.

당장의 아픔 속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도시락을 기록하자는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있었나?
김혜진 서 대표가 “뭔가 쓰일 일이 있지 않겠어요?”라고 했는데,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레스토랑 운영을 결정하고, 전국 방방곡곡의 진귀한 재료를 고집했다. 당시에는 웰니스라는 개념도 생소했다. 소신과 철학을 지킨다는 게 쉬운 여정은 아니었을 듯한데.
김혜진 당시에는 오가닉 정도의 개념뿐이었다. 우리는 그걸 넘어 재료를 잘 씻고, 스테이크나 밀가루 같은 익숙한 맛으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음식을 지향했는데, 이건 함께하는 스태프조차 낯설어했다.
서은영 어떻게 했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건 기본이고 어떤 이야기와 진심이 담겼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한 생명의 기적을 보았고, 김 대표의 이야기에서 시작했으니 우리의 가치를 소중히 지키고자 했다.

전부터 두 사람의 삶에는 늘 음식이 최고의 가치로 존재했나?
김혜진 아들의 투병 생활을 함께하며 음식의 힘을 경험했다. 음식으로 인해 암이 커졌다 작아지는 걸 목격했고, 면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잘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걸 체험한 셈이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좋은 음식을 같이 먹을 때 얻는 행복도 크다. 서로에 대한 이해, 대화가 쌓이는 ‘식사’는 삶에 참 중요한 행위다.
서은영 음식을 진심으로 즐기는 집안이었다. 일요일 저녁 6시에는 꼭 로스구이를 먹었고, 고기를 구울 때 아버지는 식구 수대로 고기 5점을 불판에 올리셨다. 본인의 철학에 따라 뒤집어 익히며 맛있게 먹었다. 차려 먹는 행복의 중요성을 어릴 적부터 체득했다. 지금도 대충 때우는 걸 지독히 싫어한다.

음식에 진심인 두 사람의 ‘식사 궁합’도 엄청날 것 같다.
서은영 맞다. 우리는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보통 촬영장에서는 대충 넘어갈 때가 많다. 김 대표와 처음 만난 게 촬영장이었는데, 함께했을 때 아웃풋도 좋았고 음식 궁합까지 잘 맞았다.
김혜진 어릴 때는 음식에 까다로운 아이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을 5개 이상 준비하고, 아무리 맛있는 반찬도 한 번 먹은 건 입에도 대지 않았다더라.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것 같다.

반드시 지키는 식사 루틴이 있나?
서은영 아침은 반드시 챙겨 먹는다. 사과 한 알도 식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다.
김혜진 아무리 바빠도 점심 시간은 쟁취한다. 밥심으로 일하는 스타일이라 12시에서 1시간이라도 늦으면 손이 벌벌 떨린다.(웃음)

‘어떤 걸 먹느냐가 곧 나를 대변한다’는 말에 공감하나?
서은영 TV를 켜면 음식이라는 이유로 생명을 잔인하고 끔찍하게 묘사하는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 미식가를 자처하며 “소를 먹으면 그 소의 MBTI까지 맞힐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 산낙지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낙지가 고추장을 비빈다”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린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내뱉는 그런 말이 대중의 세포에 알게 모르게 쌓인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소, 낙지는 생명이 아닌 SNS와 유튜브를 위한 콘텐츠일 뿐이다. 식습관이 결국 성격,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김혜진 모스가든 대표끼리 금요일에는 육식을 하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무심코 먹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의식하게 되더라. 생각하고 먹는 계기가 됐다.

모스가든의 7년을 되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풍경이 있나?
서은영
매 순간 모든 시간이 선명하다. 재료를 사러 농장에 갔다가 한밤중 논두렁에 차가 빠진 일, 농장 대표와 장인을 설득한 노력, 김 대표의 아들이 병을 극복하고 학교에 돌아간 날, 직원들의 퇴사와 입사, 크로아티아에서 소금을 사고 마약으로 오해받아 곤욕스러웠던 일 모두 잊을 수 없다.

이쯤 되니 각자의 영역에서 그야말로 ‘톱’을 찍은 분들이 왜 이런 일을 할까 궁금해진다.
서은영 절박함이나 사명감, 우리가 워커홀릭이라서도 아니다. 그저 삶에서 얻은 감사함을 나누고 싶었다. 이건 굿사마리안레시피를 비롯한 우리의 모든 브랜드를 관통하는 가치다.
김혜진 개인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서 대표님 역시 일로서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한 분이다. 누군가 꿈꾸는 삶을 경험한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익을 내서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는데, ‘왜 이 일을 할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단순한 기부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후원과 봉사, 나눔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구축하고 싶어졌다.

앞으로 이 정원에서 어떤 꽃이 피어날까?
서은영 우리의 수익이 다양한 방법으로 돌고 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원대하기보다는 작은 실천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이어가고 싶을 뿐이다.
김혜진 재능이 있지만 기회가 없는 사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교육할 수 있는 터가 되고 싶다. 우리 회사에는 다운증후군이나 자폐 9급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있고, 직접적인 증상이 있는 분도 있다. 그들이 반짝이는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펼칠 기회가 없는 게 아쉬웠다.

각자의 영역에서 비주얼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일을 할 때와 모스가든의 대표가 된 후 달라진 점이 있나?
서은영 너무 많다. 클라이언트에게 화낸 걸 스태프와 셰프, 고객에게 돌려받는구나 싶다.(웃음)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하며 보낸 치열한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를 줬을 수 있다는 걸 모스가든에서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목표가 없었다. 일이 즐거웠고 어떻게 하다 보니 스타일리스트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다. 40대 후반 모스가든을 시작하면서 인생에서 처음 목표라는 게 생겼다. 일자리와 교육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어 선순환을 이끌고 싶어 열심히 달린다.
김혜진 과거에는 일이 삶의 목적이었다. 왜 그렇게 좋아했나 모르겠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그저 잘해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때는 왜 열심히 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의 이유가 분명하다.

에디터
김정현
포토그래퍼
OH EUN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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