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OBJECTIVE / 홍경
배우 홍경은 항상 도달할 수 없는 꿈을 꾼다고 말했지만, 그건 영원한 자유로움인 것만 같았다.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홍경이기에.
어느덧 세 번째 만남이고, 겨우 2년 사이 눈부시게 성장했네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잘 모르겠어요. 늘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니까요.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죠. 특히 배우에게는 더.
맞아요. 하지만 제게는 아주 중요하고 그걸 갖고 살려고 해요. 어떤 게 부족하고 어떤 걸 보강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이 일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걸 위해 계속 노력할 것 같아요. 홍경은 그런 믿음이 가는 사람이죠.
제가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 대해 지나친 애정을 너무 가지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몰아세우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엄청 고통 속에서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엄청 진공 속에서 살기도 싫거든요.(웃음) 거품과 진공 딱 중간, 먼지가 좀 있는 그런 상태면 좋겠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제 거를 잘 못 봤는데 이제는 봐요. 주로 못한 점이 보이고 제 몸이 반응하는 부분이, 그게 대부분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냉정히 보려고 해요.
최근에는 스스로를 냉정히 바라보면서 뭘 느꼈어요?
더 과감히 해보자. 좀 더 해봐도 되겠다.
더 극적인 것에 끌리는 요즘인가요?
맞아요. 저는 영화는 결국 이미지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영화는 주로 이미지로 압도하는 영화예요. 그런 이미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댓글부대> 역시 이야기지만, 이미지적으로도 관객을 매혹시킬 수 있을 듯이요.
그럼에도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자아도취 또한 필요한 게 아닌지.
그 자아도취를 못해요. 저는 그게 잘 안 돼요.
칭찬도 찬사도 많이 받는데, 그런 말들은 안 믿어요?
잘 안 믿는 것 같아요. 내가 정한 기준에 미치느냐 못 미치느냐가 저한텐 중요하고, 내 필모에 남기고 싶은지 아닌지가 최우선이에요. 내가 내 20대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다면 20대를 아주 성실하게 살고 있네요.
다 가버렸어요. 이제 다 가고….(웃음) 발버둥치는 사이 20대가 끝나버렸어요.
뭘 향해서, 뭘 위해서 발버둥친 것 같아요?
새로운 것. 저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에 대한…, 그 시기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있어요. 그 시기를 통과한 선배 배우들은 작품 안에서 계속 너무나도 좋은 초상들을 남기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댓글부대>와 <청설>이라는 작품은 제게 유난히 뜻깊어요. 예전 기자님과의 인터뷰에서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는데, 저는 20대는 오히려 멀리 돌아가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해왔어요?
“나는 내 길을 갈 따름이고, 그 길에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할 따름이다”라는 차이밍량 감독의 말이 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20대에 좀 다른 걸 그리고 싶었고, 도전적인 거에 끌렸어요.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을 하자. 그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청설>도 그런 두려움을 준 작품인가요?
<청설>은 2000년대 영화 같은 그런 순수성 하나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렸어요. 그 작품을 빨리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사실 오리지널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참여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요. 그래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스스로 세운 기준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거의 도달하고 있나요?
절대 못 도달하죠.
한 번도 도달한 적 없어요?
한 번도 없어요. 매번 도달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맨날 고통스러워하고. 친한 형에게 늘 힘들다고 신세 한탄을 하면서 괴로워하죠. 그 형이 신랄하게 제 문제점을 꼬집어주거든요.
그런 사람이 필요하죠. 유명해질수록 대부분 좋은 점만 말해줄 테니까요.
맞아요. 그게 바로 객관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너를 위해 내가 느낀 점을 얘기해준다’는 애정과 솔직함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엔 연예인 친구들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 동료 배우들이 많이 늘었죠?
많아졌죠. <약한 영웅> <악귀>에 <댓글부대>와 <청설>에서도요. 다들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그래도 고민 있거나 할 때 믿고 의지할 동료가 많이 생겼어요. 이전에 얼마나 사람이 없었던 거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웃음)
왜 이미지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죠. 사실 매거진도 화보에서 매 순간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요.
좋은 다이얼로그가 중심이 된 영화를 보면 너무 좋죠.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도 그렇고, 그런데 많지 않아요. 결국 좋은 이미지가 저를 감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에 압도된다는 것 있잖아요? 저한테 그건 결국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좋은 예술은 인간이 갖고 있는 방어막을 뚫고 내면까지 도달할 수 있죠.
정말 그렇죠. 이번에 무대 인사를 하면서도 영화관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간은 언제나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어느 한 공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한 작품을 본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고, 그 안에서 연대감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금만큼 영화관이 필요할 때가 있을까요? 대립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게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티켓값이 비싸더라도 영화관에 올 만큼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뭐라고.(웃음)
유튜브에 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30분 정도로 압축해놓은 콘텐츠가 몇백만 조회수를 달리죠. 하지만 영화관의 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거든요.
너무 바쁜 시대라 그렇겠죠. 저는 그런 클립은 보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언제나 그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거든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노력하고요. 한 번에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피아노를 배우는 홍경 씨와도 어울리네요. 아직도 피아노 쳐요?
치고 있어요. 피아노를 치면서 다른 걸 많이 배워요. 절대 돌아서는 갈 수 없구나. 그런 의미에서 연기랑도 맞닿은 지점이 있어요. 우리의 대부 알 파치노가“반복이 나를 더 이렇게 진하게 만든다(Repetition keeps me green)”라고 했듯이. 아무튼 반복, 반복, 반복이 돼야 어느 순간 되게 진해지고 선명해진다. 어느 순간 되지 않던 것이 딱 되는 순간이 있어요. 피아노를 치면서 많이 느껴요.
20대가 다 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어요. 뭘 해보고 싶어요?
20대만 해볼 수 있는, 20대를 관통하는 연기. 30대가 10대, 20대 연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30대에 가서는 30대의 초상을 그리고 싶어요.
세 번째 만남이지만, 처음부터 이 사람은 배우가 천직이 아닐까 싶었던 신인 배우는 오랜만이었어요. 앞으로 30년은 더 지켜보고 싶은 배우죠.
제가 그때까지 할 수 있을는지! 마음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호기심에 가슴 뛰고, 뭔가 두려워하는 순간이 올 때 제가 건강하게 느껴지거든요. 고민을 많이 해요. 뭔가를 결정할 때도 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
작품을 결정할 때마다 오래 걸려요?
이번 <댓글부대>도 그렇고, <D.P.>나 <약한 영웅>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마음의 불이 꺼지지 않는 것도 저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건강한지, 잘 사는지가 저한테 중요해졌어요. 내 삶이라는 게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소중한 사람이 아프거나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내 삶이 곧바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옆 사람 얘기를 더 들으려고 하고,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이라도 더 표현하려고 해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bluecages인데, 음악가 존 케이지에서 따왔나요?
처음 말하는 건데 제가 이브 클라인을 좋아해요. 파란색을 보고 그냥 뭔가 압도당했어요. 파리 퐁피두 센터나 런던 테이트 모던에 가도 항상 먼저 찾거든요. 정식이 확 깨는데요. 그 파란색과 어쩌면 지구본 역시 거대한 새장이 아닐까, 그런 세상을 떠올리면서 지은 건데… 쑥스럽네요.(웃음)
<댓글부대>가 한창 관객을 만나고 있고, <청설>과 <콘크리트 마켓>을 비롯해 공개될 작품이 세 작품이나 있죠. 올해는 또 어떤 계획이 있어요?
휴! 재미난 프로젝트를 하나 해볼 거예요. 그게 뭔지는 아직 밝힐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볼 거야’라고 힌트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청설>을 마무리해서 세상에 잘 내보이고 싶어요. 우리 세대가 우리 세대의 것을 그려내는 데에 일조하고 싶고, 그거에 당분간 집중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홍경이 세운 높은 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 거예요, 무조건.
그나저나 지금 입고 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티셔츠는 어디서 샀어요?
이거요? 뉴욕 여행 갔을 때 구겐하임에서요. 보는 순간 이거 내 건데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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