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DANNY / 대니 구
세상에 없던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말한다. “클래식과 대중을 가까이 연결하고 싶어요. 그게 제 역할이거든요.”
지난 4월 10일, 디지털 EP <Moonlight>가 발매됐어요. 바이올린 연주곡에 보컬도 함께했더라고요. 어떤 의도를 담았어요?
앨범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어요. 바이올리니스트로 클래식 음악을 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하다고 느꼈거든요. 누군가 찾지 않거나 듣지 않으면 음악의 존재는 무의미하니까요.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앨범의 존재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이유인가요?
맞아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며 ‘이 계절에 사람들은 어떤 음악이 듣고 싶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으니까요. 클래식 앨범은 대부분 쓰여진 곡을 연주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앨범을 채우고 싶었어요. 머릿속에 맴돌던 것들이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을 만나 속도를 낼 수 있었죠.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려는 건가요?
대중과 클래식을 가깝게 연결하고 싶어요. 이 꿈을 위해서는 먼저 음악이 소통하기 쉬워야 하고요. K-팝 신을 보면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그의 음악을 찾아보게 되는 구조가 많잖아요. 클래식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제 연주를 찾아보고, 시향과 협연 공연을 예매하겠죠. 지금은 더 쉽게 다가가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 출연도 그 일의 연장선인가요?
그렇죠. 사실 처음에는 좀 두려웠어요. 클래식 음악의 신비로움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고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요?
최종 출연 결정을 앞두고 조수미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어요. 40분 정도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다 들으시곤 “대니는 자기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해? 연예인이라고 생각해?”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쌤, 저는 아티스트죠!”라고 답했더니 “아니야. 너랑 나랑 우리는 엔터테이너야. 그게 우리의 시대이고, 너랑 나랑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됐어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장르, 대중이 사랑하는 클래식 뮤지션으로 존경받는 선생님께서 제 활동을 본인과 같은 결로 바라봐주신다는 데에 오는 감동도 컸어요.
용기를 낸 덕분에 대니 구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오히려 무대에 오르기까지 아티스트의 노력을 생생히 볼 수 있어서 새로웠어요.
저 역시 그 점에서 제작진에게 감사해요. 첫 번째, 두 번째 에피소드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제 삶에 집중해주셨거든요. 제작진 역시 출연자로 클래식 연주자는 처음이라 어떤 면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준 것 역시 고마워요.
공연 레퍼토리를 짤 때도 대중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고민하나요?
독주회 레퍼토리나 세트 리스트를 짤 때 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아빠가 와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공연을 하자! 엄마는 제가 뭘 해도 좋아하시지만, 아빠는 클래식이 지루하대요. 주무실 때도 있어요.(웃음) 긴 소나타 이후에는 소품곡을 넣기도 하고 일부 공연에서는 멘트를 첨가할 때도 있어요.
클래식을 알리려고 어린이 채널 핑크퐁과 협업한 ‘핑크퐁 클래식 나라’ 공연을 하고, <슈퍼밴드> <나 혼자 산다> 같은 다양한 영역에 얼굴을 비추죠. 굳이 이런 행보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 오고, 팬데믹을 겪은 게 일종의 전환점이 됐어요. 음악을 하면서 늘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최고가 아닌 유일한 삶을 찾아야겠다고 방향이 바뀌었거든요. 딱 그 시점에 다양한 활동에 도전했는데 그 선택이 가져다준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전과 다른 기쁨, 성취를 맛보게 해줬죠. 그 과정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파이팅도 솟았고요. 누군가 제게 돈, 명예, 힘 중 뭘 원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고민 없이 ‘힘’이라고 할 거예요. 이 힘이라는 건 제가 원하는 무대를 마음껏 꾸릴 수 있는 걸 의미해요. 아티스트로서 실력은 기본이고 클래식 음악이 더 사랑받고 알려져야 가능한 일이겠죠. 아직은 멀었지만 그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면 누군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의 실력을 의심할 수도 있는데, 두렵지는 않아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노래하는 대니 구, MC, 방송, 핑크퐁 등 매번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중심은 당연히 바이올리니스트예요. 이 활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걸 알아요. 실력에 엄격한 기준과 인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활동의 70%는 클래식 음악에 쏟고, 30%는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잡아 새로운 활동을 하려고 해요. 운동과 스케줄을 제외한 시간은 전부 연습에 쏟고 있고요.
요즘도 연습할 때 바흐 음악으로 시작하나요?
맞아요. 그의 곡 중 일부 마디를 문신으로 새겼을 만큼 좋아하는 아티스트거든요. 스케일이 손을 푸는 작업이라면, 바흐는 심장을 푸는 느낌이죠. 스케일 다음 바흐 곡을 20분 연주하는 게 루틴이에요.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져요. 테크닉적으로 까다로운 건 당연한데, 규칙적이기도 하고 연주자와 밀당하는 듯한 곡이예요. 아름답고, 재미있고, 어렵고 너무 매력적이죠.
바흐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와 지금 다르게 다가오는 지점도 있어요?
점점 더 어려워져요. 저 역시 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존경스러워져요. 더 많은 걸 표현하고 싶고요.
인생 곡 역시 여전히 샤콘(Chaconne)인가요?
한동안 변치 않을 것 같아요. 다른 악기와 달리 바이올린은 솔로 멜로디 악기예요. 멜로디 악기로 하모니를 채우면서 16분간 혼자 연주한다는 게 어릴 때부터 멋져 보였어요. 홀로 연주하는 그 시간이 무척 외로운데, 결국 그게 바이올리니스트의 길과 닮았고요. 연습할 때 매일, 매 순간이 외롭고 때로는 우울하거든요. 이 곡이 어찌 보면 제 인생의 테마곡 같아요. 인간이 겪는 수많은 감정을 하나의 곡에 담은 아주 신비로운 작품이죠. 바이올린이라는 작은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거대한 세계가 담겨 있어요.
이토록 열정적으로 달리는 데는 음악을 향한 애정도 한몫하겠죠?
음악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걸 음악으로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달에 우주선을 보낼 때 음악을 넣었고, 언어가 달라도 음악으로는 소통할 수 있잖아요. 자부심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아요.
여러 활동 속에서 요즘 영감을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은 누구예요?
방송인 하하 형요.
의외의 인맥이네요!
예능인인 동시에 방송인, 사업가, 좋은 아빠예요. 어떤 역할로든 열심히 사는 게 좋아 보여요. 인생 선배로서 의견을 구할 때도 있고 좋은 에너지를 받아요. 또 다른 한 명은 조수미 선생님요. 일단 커리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컬래버레이션부터 자기 관리, 실력 모든 게 레전드죠. 그리고 그 커리어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말도 안 돼’라는 길을 가는 사람들은 최초가 되죠.
케빈 하트,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 마이크 타이슨, 무하마드 알리 등 성공한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어요. 스스로 그걸 분석하는 걸 즐기기도 하고요. 컴퓨터에 ‘None’이라는 이름의 노트가 있는데, 이곳에 틈틈이 기록을 남겨요. 내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왜 왔을까?’ 이유를 찾아 쓰고, 주변 사람의 커리어를 보고 느끼는 점도 기록해요. 사람은 본인의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원하는 걸 입 밖으로 꺼내야 해요. ‘대니가 그걸 어떻게 해?’라는 말이 저를 자극하기도 하고요.
요즘 주변에 제일 많이 하고 다니는 말은 뭐예요?
이왕 이 길로 들어선 거 한국에서 대니 구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자. 아침에 샤워하고 거울 보면서 멘탈 트레이닝을 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MBC 예능 신인상 타자는 거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인정받자 싶어요. 다른 하나는 재작년부터 품고 있었는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명동성당에서 독주회를 여는 거예요.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지는 않아요?
요즘 너무 느껴요.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클래식 무대에서도 부끄러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오늘은 ‘None’에 어떤 기록을 남길 것 같아요?
요즘의 나,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그렸어요. 행복하고 특별한 하루!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날이었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고 틀을 깨는 작업이었으니까요. 대니 구라는 아티스트에 집중해서 포즈, 스타일링 등 모든 게 뻔한 규칙에서 벗어났거든요. 제가 촬영 때마다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매니저는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