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어디로 향할까? 트렌드세터 10인의 목적지에서 찾은 새로운 좌표들. 

17세기 성을 개조한 마세리아 살라미나(Masseria Salamina) 호텔의 식당.

여행 파트너로서 늘 함께하는 두 딸 아라와 아시아.

요트 주변에서 카약을 타는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모습.

하수민 | 페르테 대표

고요하고 심플하지만 대담한 존재감의 주얼리 브랜드 페르테를 전개한다. 이탈리아와 서울 생활자로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동시에 여행을 통해 또 한 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최근 남편과 나눈 대화에서 여행의 의미를 복기했다. 죽음을 앞둔 한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는 그는 내게 ‘과거를 회상하지 말라. 좋았던 순간이든 나빴던 때든 과거 대신 오늘을 살아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들려줬다. 다양한 여행을 경험했지만 나의 인생 여행지는 이탈리아의 땅끝마을 풀리아(Puglia)다. 지금 이 순간,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기운이 샘솟고 입가에 웃음 짓게 하는 곳.

다년간의 데이터를 종합해봤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행지의 필요충분조건은 자연과 문화다. 몸과 마음이 한껏 고립될 수 있는 자연, 그들만의 이야기와 문화가 있을 때 여행에 깊이 빠져든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곳이 풀리아로, 이탈리아 지도를 펼쳐놓고 보았을 때 흔히 말하는 ‘장화 굽’에 위치한다. 무려 16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지역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놀랍다. 500년은 족히 넘은 올리브 나무가 즐비하고 이탈리아의 22개 주에서는 볼 수 없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다. 도시의 시간은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세포로 스며든다. 도시 안 이동 거리도 짧아 부담이 덜하다. 트롤리 건축양식이 있는 오스투니(Ostuni), 동화 같은 풍경의 마테라(Matera), 브린디시(Brindisi), 레체(Lecce), 살렌토(Salento), 이탈리아의 몰디브라 불리는 갈리폴리(Gallipoli)까지. 아드리아해와 에게해가 만나는 바닷가, 싱싱한 자연이 선사한 해산물과 채소로 만든 음식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레키에테(Orecchiette)라는 귀 모양의 파스타와 무청을 넣어 심플하게 볶은 파스타는 지금도 흠뻑 빠져 있는 요리다.

여행지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요트 위의 시간을 사랑한다. ‘요트 여행’ 하면 초호화 럭셔리를 생각하지만, 실상은 바다 위에서 하는 캠핑에 가깝다. 원하는 스폿에 정박해 수영과 식사를 즐기고, 저녁노을을 관람하는 식이다. 밤이 되면 불어오는 캐시미어같은 바람을 맞으며 별을 감상하는 시간은 심신의 평안을 선사한다. 다양한 액티비티와 풍경, 그리고 중요한 건 함께 여행하는 파트너다. 가족을 중심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때가 많은데, 여행지에서 목격하는 그들의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보며 나의 세계가 확장됨을 느낀다.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식당 주인, 호텔 지배인 등 순간순간 배움을 선사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 역시 큰 기쁨이다.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여행을 통해 더 깊어진다.

인생에서 여행은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뇌를 비워야 다시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요”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여행은 내게 일과 사람, 삶을 연결하는 강력한 매개체이자 이곳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응집한다. 나아가 좋은 여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