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어디로 향할까? 트렌드세터 10인의 목적지에서 찾은 새로운 좌표들. 

라다크 레(Leh)에 위치한 티베탄 게스트 하우스(All View Guest House)에서 내다본 풍경.

조드푸르 시장 전경.

바라나시 갠지스강 전경.

인도와 중국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판공초 메락(Merak) 마을.

우다이푸르 피콜라 호숫가에서 석양을 기다리는 사람들.

라다크 옛 왕국의 수도인 레(Leh)의 전경.

문여원 | 아르켓 카페 총괄 매니저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전개하는 브랜드 아르켓(Arket) 코리아 카페팀을 책임지고 있다. 여가 시간에는 독서와 여행을 즐기며 삶의 균형을 찾는다.

여행자라면 한 번쯤 꿈꿨을 인도행 티켓을 끊은 건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고 나서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 모인 남녀 5명이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종교와 사랑을 넘나들며 인생을 깨닫는 이야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한순간, 어떤 질문이 나를 가로막았을 때 나도 이들처럼 바라나시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도 최북단에 위치한 ‘라다크’를 시작으로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우다이푸르’, 영화 <김동욱 찾기>의 배경이 된 블루 시티 ‘조드푸르’를 거쳐 환생의 염원을 담은 ‘바라나시’까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인도로 향했다.

기온이 45℃까지 오르는 6월의 인도는 여행 비수기다. 하지만 라다크를 방문하려면 어쩔 수 없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내리며 해발3000m에 위치한 라다크로 향하는 육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큰 탓에 경량 패딩부터 반소매까지 사계절 옷을 30L 배낭에 꽉 채워넣었다. 이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히말라야산맥을 넘나들어야 하기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크루를 결성해 운전사가 딸린 차를 빌렸다. 직접 짠 코스를 따라 하루 5~6시간씩 이동하며 만난 라다크는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눈이 녹아 생긴 옥빛 강물, 변화무쌍한 기후에도 피어난 야생화, 소박하고 숭고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까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에 머물며 쓴 <오래된 미래>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이곳은 독특한 정취를 지니고 있었다. 라다크는 힌두교를 국교로 삼은 인도에서 유일하게 불교를 믿고 티베트 문화를 받아들인 터라 사람들의 생김새나 건물 양식이 타 도시와 매우 달랐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맞이하다 보니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였다면 이 생소한 도시를 속속들이 살필 수 있었을까? 이들과 함께한 라다크에서의 시간은 잠시나마 나의 삶을 온전하다고 느끼게 했다.

함께하는 기쁨과 혼자라는 두려움, 양가적 감정으로 두 번째 목적지인 우다이푸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다이푸르는 고요하고 숭고했던 라다크와 달리 이국적이고 화려했다. 영화 <007 옥토퍼시>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옅은 상아색을 띠는 대리석 건물이 많아 화이트 시티라고도 한다.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피콜라 호수는 햇빛을 머금어 도시를 더욱 밝게 비춘다. 하지만 인도 여행에 대한 갖은 소문 탓에 도시 감상은커녕 긴장감만 높아졌다. 도와준다는 상인들의 말을 무시한 채, 열심히 숙소를 찾았다. “우다이푸르에서 도움은 무료입니다(Help is free in Udaipur).” 뒤에서 들려온 한마디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편견에만 사로잡혀 이들을 판단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세상 보는 눈이 어둡지도 않은데, 일단 부딪쳐보자! 진짜 인도를 여행한 건 사실 이때부터인지도 모른다. ‘ENFP’의 나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이들이 유쾌하고 재기 발랄했다. 나의 호기심에 기뻐하며 기꺼이 환대해준 그들에게 되레 황송하기까지 했다. 우다이푸르에서 조드푸르, 바라나시로 이동하는 내내 나는 인도인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도시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종착지인 바라나시는 소문대로 독특했다. 갠지스강 외에는 특별할 것 없지만, 모두가 그 강 하나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인도인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든 생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니 그토록 유쾌한 인도인에게 갠지스강은 대체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이 궁금증은 갠지스강 보트 투어를 운영하는 선재(Sunjae)와의 대화로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와 보트에 앉아 인도의 역사와 문화, 종교, 민족성, 정치,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지만, 특히 힌두교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의 생각에는 힌두교의 범신론적인 사상이 불교를 포용하기 때문에 불교가 발상지인 인도에서 성행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흘러가요. 어떤 생각을 가졌든 결국 같은 곳을 향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소설 속 남녀 5명처럼 내가 무언가 깨닫길 바랐다. 이 대화를 마치고 나니 왠지 각양각색의 사람을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갠지스강처럼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여행은 내게 나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알려줬다. 바라나시를 떠나며 인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두 여신, 칼리와 차문다 스티커를 샀다. 자비와 흉포함이 공존하는 칼리, 나병과 굶주림으로 늙고 병든 차문다. 부드러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지닐 만큼 포용력이 대단한 게 마음에 들었다. 넓어진 마음의 그릇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설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