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어디로 향할까? 트렌드세터 10인의 목적지에서 찾은 새로운 좌표들. 

스트리트 아티스트의 벽화로 다시 태어난 라바피에스.

마드리드의 장점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훌륭한 근교 여행지가 많다는 것. 스페인의 옛 수도였던 톨레도도 그중 하나다.

가볍게, 그러나 맛있게. 와인과 타파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지천이다.

이현수 | 작가

<뉴욕 쇼핑 프로젝트> <마시는 사이>의 저자이자 ‘미디어 2.0’ 편집장인 이현수는 해마다 스페인을 여행하다 못해 마드리드에 머물며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왜 하필 마드리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몇 개월 살아보겠다고 했을 때 누구랄 것 없이 가장 먼저 물은 말이다. 10년 넘게 산 뉴욕도, 모두가 꿈꾸는 파리도, ‘엔저’라는 엄청난 특장점이 있는 도쿄도 아니고, 왜 마드리드냐고. 하다못해 바르셀로나도 아니고, 그저 기착지 삼아 하루 이틀 억지로 머물다 가차없이 버리고 떠나는 그 마드리드냐고. 

처음엔 나도 그랬다. 이미 스페인을 다녀온 친구들의 조언은 ‘마드리드에서는 프라도 뮤지엄 정도만 보고 다른 곳으로 빠져라’였다. 2박이면 뒤집어쓴다, 빠듯하게 짜면 1박으로도 족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정말 뮤지엄만 몇 군데 돌고(사실 우리는 성격 급한 한국인이니까 뮤지엄 세 군데 정도는 하루에 다 해치울 수 있다), 바로 안달루시아로 내려갔다. 스페인에 두 번째 갔을 때는 마드리드 일정을 하루 더 잡았다. 그때 가지 못한 식당과 작은 뮤지엄이 자꾸 발목을 잡아서였다. 셋, 넷, 다섯, 여섯 번. 뭐에 홀린 사람처럼 스페인만 줄곧 팔 때마다 나를 잡아끄는 건 역시 마드리드였다.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코르도바, 카디스, 바르셀로나, 빌바오, 산세바스티안, 다 좋지만(사실 바르셀로나는 내게 ‘여권 강탈과 카드 해킹’이라는 굴욕을 안겼으므로 제외) 역시 다시 제자리, 나는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아니 이렇게까지 충성을 다하는데 차라리 가서 좀 살아보지 그래?’ 이게 시작이었다. 엄마 때문에 긴 뉴욕 생활을 접고 한국에 허겁지겁 들어왔는데, 엄마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나는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자가 필요 없는 한도까지 꽉꽉 채워서 한 석 달 정도 마드리드에서 살아볼까. 지금까지 산 세월에 비하면 그까짓 석 달, 앞으로의 내 인생에 코딱지만 한 점밖에 안 될 텐데 뭐 좀 버리면 어때. 

생전 배워본 적 없는 스페인어 학원을 끊었다. 그것도 대충, 얻어둔 집 근처에 있는 학원 아무 데나 등록해 악착같이 스페인어 한마디라도 더 배워야겠다는 일말의 의지도 없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학원에 갔다. 수많은 규칙과 불규칙이 난무하는 동사 변화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그중 기억나는 건 답하고 기억나지 않는 건 ‘아 뭐 다음엔 기억하겠지’ 식으로 넘겼다. 일주일마다 반이 새롭게 개편되는 학원에는 매주 많은 수강생이 들고났다. 아들딸뻘이 대부분인 수강생들 속에서 짧은 휴가, 긴 여행 온 김에 취미 삼아 스페인어나 배울까 하고 학원에 온 내 또래의 관광객을 간간이 발견하고 신기해하면서 조금 가까워질라 치면 그들은 일정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떠났다. 반이 바뀔 때마다 선생이 물었다. “스페인어는 왜 배우는 거니?” 반복되는 질문에 나는 거짓말에도 능숙해졌다. “내년에 남미 가려고.” 당연히 거짓말이다. 

수업이 끝나면 익스트림 ‘J’답지 않게, 가지 않았던 아무 길이나 걷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 밥을 먹으면서 술을 한 잔씩 마셨다. 배가 부르고 취기가 적당히 오르면 공원에 가서 책을 읽거나 아주 작은 뮤지엄을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방문하거나 가보지 않은 동네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저 며칠 스쳐 지나갈 때는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문학의 중심점인 오래된 동네 ‘라스 레트라스(Las Letras)’가 맘에 드는 바람에 스페인 희곡의 대부인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의 기념관까지 찾았고, 거기서 도슨트를 하는 알바(이름이 알바임)를 만나 서로 스페인어-한국어를 교환하는 사이가 됐다(알바는 얼마 전 한국에도 다녀갔다). LGBTQ의 핵심 지역인 추에카(Chueca)로 집을 옮긴 뒤에는 개성 넘치는 가게와 거리를 더 많이 발견했고, 반도전쟁 때 민중 봉기, 스페인 내전 당시 민주화운동의 발상지인 말라사냐(Malasana)의 매력에 빠져 얼결에 마드리드의 역사까지 공부했다. 벨라스케스나 피카소보다는 고야가 더 마음에 사무쳐 결국 사라고사, 친촌, 고야의 무덤 등 고야를 기리는 짧고 긴 여정을 떠났다.

기차나 버스로 한두 시간이면 닿는 톨레도, 세고비아, 아빌라, 살라망카 같은 작은 도시는 모두 내게 마드리드의 일부였다. 그래서 스페인어는 얼마나 늘었느냐고? 식당이나 택시에서 그들이 내게 뭐라뭐라 할 때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정도? 마드리드에 대해선 얼마나 아느냐고? 스페인 일정이 끝날 때쯤 한국에서 나를 만나러 온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던 곳을 보여주고, 왜 하필 마드리드였는지를 정확히 납득시킬 수 있는 정도? 그리고 목적 없는 긴 혼자의 시간 속에서, 나이 듦에 대해 조금은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장착하게 된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