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어디로 향할까? 트렌드세터 10인의 목적지에서 찾은 새로운 좌표들. 

감탄을 멈출 수 없었던 마추픽추의 전경.

박혜라 | 주얼리 디자이너

셀럽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주얼리 브랜드 H.R을 운영한다. 탁월한 감각을 기반으로 여행과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늘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벌써 4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친구들은 나의 남미 여행을 궁금해한다. “그래서, 어땠어?”라고 묻는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볼 때마다 멀고 험한 여정 끝에 만난 마추픽추의 감동이 깨어나는 듯하다. 수없이 설명하면서도 매번 말에 속도가 붙고 목소리가 커지는 건 오랜 시간 버킷 리스트로 품어온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간 여행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다녔지만, 남미로 향하는 기회는 닿을 듯 말 듯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처럼 기회가 찾아온 건 성수동에 터를 잡고 처음으로 사귄 동네 친구들 덕이다. 세계 여행을 계획 중인 부부의 여정에 남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를 자처했다. 이제 갓 제대한 조카와 동네 친구 한 명이 더 모여 남미 원정대가 꾸려졌다.

남미는 멀고 또 멀다. 서울을 떠난 지 3일 만에 비로소 첫 여행지 페루 파라카스(Paracas)에 도착했다. 사막인 듯 육지인 듯 바다를 품은 아름다운 해변을 눈에 담은 뒤 첫 번째 버킷 리스트를 지우러 나스카(Nazca)로 향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400km 떨어진 나스카에는 기원전 300년경 그려진 그림이 존재한다. 고래, 거미, 새 같은 그림부터 기하학적 무늬를 보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가장 큰 그림은 길이만 300m에 육박했다. 당시 기술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관측해야만 볼 수 있는 그림의 형태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려 넣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외계인이 우주선 착륙을 위한 표식이라는 해석에 마음이 끌렸다.

페루의 진주라 불리는 오아시스 마을 우아카치나(Huacachina)에는 아름다운 일몰과 다이내믹한 액티비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심드렁했던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로 액티비티를 신나게 즐겼다. 그 후 버스로 13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레키파(Arequipa)에는 잉카제국 최고의 부를 누린 도시답게 여러 형태와 색을 입은 건물이 멋들어지게 서 있었다. 영화 <코코>에 나올 법한 할머니들의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버스로 12~13시간씩 페루를 여행하다 보면 풀이라고는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에 감탄하게 됐다. 화성인지 페루인지 모를 곳에서 시간을 잊은 듯 달리다 보니 어느새 마추픽추(Machu Picchu)에 도달했다.

눈앞에 펼쳐진 마추픽추의 파노라마는 숨이 멎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해발 2437m, 벼랑 위에 우뚝 선 도시를 정신없이 관찰하다 보니 어느덧 4시간이 훌쩍 지났다. 작열하는 햇살에 코와 등이 벌겋게 익은 것도 나중에 알았다. 눈으로 보고 나니 잉카문명의 요새라는 사실 외에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 도시를 향한 물음표가 꺼지지 않았다. 그 어떤 절경보다 인간의 위대함과 이야기의 힘은 닿을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묵직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고백하자면,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zco), 럭셔리 기차를 타고 떠난 푸노(Puno)를 거쳐 볼리비아에 입국하기까지 마추픽추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고도 4000m가 넘는 볼리비아에서는 고산병으로 고생하며 우유니 사막을 눈에 담았을 때도 마추픽추만큼은 아니었다. 또다시 1박 2일간 700km를 달려 칠레에서 우리의 여정은 끝났다. 도시, 오지, 휴양지 등 다양한 여행을 사랑하지만 마추픽추는 더 큰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종종 실제로 본 적 없지만 UFO가 있다는 상상을 하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돌이 두 개로 쪼개지며 마징가 제트가 등장할 거라는 상상도 한다.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자극하고 펼칠 수 있는 경험을 이 여행을 통해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