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는 어디로 향할까? 트렌드세터 10인의 목적지에서 찾은 새로운 좌표들. 

엘 펜(El Fenn) 호텔 중정 돔 안쪽에 놓인 노란색 카우치.

핑크빛 아만예나 (Amanjena)에는 방마다 개별 테라스가 딸려 있다.

모로코 전통 가옥 리아드를 개조한 리조트의 모습.

이브 생 로랑의 별장이었던 마조렐 정원.

김가언 | 피피에스 코퍼레이션 대표이사

리빙 편집숍 챕터원(Chapter1)과 복합문화공간 DOQ를 운영한다. 해외에 나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기를 즐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모로코’라 답한다. 벌써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여자 셋이 떠난 여행의 시작은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였다. 자극이 필요하던 우리는 가본 적 없는 전 세계 온 나라의 이름을 흩뿌렸다. 인도, 아랍에미리트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건 아프리카와 유럽의 아름다움을 한데 품은 모로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날을 정하고 꽃이 피는 4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경유해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ch)에 도착했다.

한 도시에 사나흘 짧게 머무는 ‘찍먹’ 여행보다는 도시 하나라도 깊이 있고 진득하게 살피는 편인 나는 모로코에서도 그랬다. 그렇게 마라케시 집중 탐구에 돌입했다. 모로코인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전통 가옥 아드를 개조해 만든 첫 숙소에 짐을 두고 시장으로 향했다. 바가지를 쓰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 없이 온 여행이다. 길을 잃을 수 있으니 현지인에게 호텔의 위치를 꼭 물어보라는 호텔 직원의 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전통 의상을 입고 낙타와 말에 올라탄 사람들, 리어카로 분주히 짐을 옮기는 상인 사이에서 민소매와 원피스를 입은 우리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9세기 베르베르인의 수도답게 구글 맵도 먹통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같은 곳을 몇 바퀴씩 돌며 상인의 호객 행위를 듣다 혼이 나가 근처 카페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기절할 만큼 더운 열을 식히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가이드 사업을 하는 현지 친구를 소개받아 동행하기로 했다. 밤이 되자 뚝 떨어진 기온은 우리가 아프리카 여행 중이라는 걸 실감나게 했다. 강렬하고 아찔한 첫날의 기억은 그렇게 남았다.

 

마라케시 제마엘프나 광장 안쪽에 위치한 전통시장.

마라케시 제마엘프나 광장 안쪽에 위치한 전통시장.

마라케시 구시가 거리.

현지인의 추천은 남달랐다. 골목 깊이 자리한 상점에서 내어주는 특유의 문양과 쨍한 색감의 모로코 제품은 휴식을 취하러 간 나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원하는 대로 골라보세요. 원한다면 새로운 패턴을 짜줄 수도 있어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모로코 카펫 전문점을 운영하는 형제는 직접 우려낸 모로코 민트티를 내어주며 극진하게 대접했다. 물건을 사겠다 약속하고 재방문했을 때는 목욕재개하고 나를 맞이했다. 카펫, 은식기, 고가구, 전통 탈 등 한국에 없는 물건을 많이 들여왔고, 그때 들여온 물건들로 지금은 문을 닫은 성북동 챕터원 꼴렉트에서 모로코 기획전까지 열었다. 이브 생 로랑의 별장으로 유명한 마조렐 정원에 가서도 그곳의 색감에 빠져 파란색 페인트 몇 통을 사왔다. 두 번째 숙소인 아만예나(Amanjena)에서는 하루하루가 꿈 같았다. 카펫 형제의 목욕재개로 생긴 모로코 목욕탕에 대한 궁금증도 여기서 해결했다. 리무진 픽업 서비스부터 신화에서나 볼 법한 의상을 입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환대하는 사람들, 스파 직원의 깃털 같은 손놀림,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하고 넓은 리조트, 매일 아침 나를 향해 손 흔드는 정원 관리사와 방으로 서빙되는 음식까지. 2박 3일만큼은 공주가 된 것 같았다. 리조트 입구에서 펼쳐진 때 아닌 가방 검사도 마냥 즐거웠다.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마돈나가 환갑을 맞아 찾았다는 엘 펜(El Fenn)에서 보냈다. 유럽인이 많이 방문하는 이 호텔은 아기자기한 부티크 호텔 같은 느낌이었다. 모로코 타일과 모로코 가죽으로 완성한 인테리어가 돋보였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숍도 군데군데 있었다. 원색 타일로 꾸민 현대적 공간에 사로잡혀 지낸 날들이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어스름한 새벽, 혼자 커피 한 잔을 들고 호텔 중정에 있는 돔 안쪽 노란색 카우치에 앉았다. 우드 카빙으로 세밀하게 꾸민 돔 천장을 바라보다 눈물이 흘렀다. 아무 생각 없이 찾은 모로코 마라케시의 아름다운 호텔 한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본 친구들은 내 말을 듣고 웃음 지었다. 뜻하지 않았던 순간 접한 감동적 광경은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파운드로컬에는 여전히 ‘모로칸 밀크티’ 메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