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나다운 놀이법을 찾았다

모두를 위한 놀이터가 준비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나다운 놀이법을 찾았다. 

터널 톱스에서 마주하게 되는 금문교의 웅장한 모습.

샌프란시스코 도시 곳곳에 자리한 공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버닝맨’을 위해 제작되었던 파라다이스 리지 와이너리의 예술품.

설명하기 애매하고 오묘한 어떤 기운이 쏟아지는 햇살만큼 온몸을 강렬하게 감쌌다. 뒤바뀐 시차로 몽롱한 정신은 트램에 올라 샌프란시스코 도심으로 들어가는 순간 생기를 되찾았다. 새빨간 트램을 타고 샌프란시스코 골목 곳곳을 누볐다. 달리는 트램의 꼬리 칸에 서니 대중교통에 내연기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 이 도시의 청명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도시의 맑은 기운은 시민의 오랜 염원 끝에 비로소 올해 완공한 스카이스타 휠(Skystar Wheel)에 타니 더 선명했다. 약 45m 상공에 오른 관람차 너머로 엽서에 등장할 법한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피어 39(Pier 39)에서 출발해 금문교로 항해하는 보트 위 사람들의 여유로움부터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바다사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오라클 파크(Oracle Park), 러시안 힐(Russian Hill), 금문교(Golden Gate)와 베이 브리지(Bay Bridge)를 넘어 앨커트래즈섬(Alcatraz Island)까지. 샌프란시스코의 대대적 명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시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 곳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샌프란시스코에는 공원이 정말 많아요. 주말이면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서 친구나 가족과 공원으로 향하죠. 공원마다 분위기가 다 달라 찾는 재미도 쏠쏠하죠.”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로컬 식당과 명소를 소개하는 딜런 인페이머스 시티(Dylan’s Infamous City)의 가이드 애런 프리드먼(Aron Fridman)은 이 도시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줬다. 거대한 차이나타운과 이탈리아 거리, 49개 주를 통틀어 3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재팬 타운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미식에 꽤 진심이다. 적절하게 현지화한 메뉴부터 맛을 계승하기 위해 본토에서 식재료를 공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식당이 즐비하다. 프랜차이즈가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레스토랑은 미식가의 혀를 춤추게 한다.

주말 오후, 애런 프리드먼의 말대로 도심에서 마주한 공원에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사람이 가득했다. 어떤 공원은 독서를 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다소 차분한 분위기가 흘렀고, 고등학교 앞에 위치한 다른 공원은 반려견과 공놀이를 하고 아이와 놀아주며 왁자지껄한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내 취향의 공원을 찾아 호핑(Hopping)하듯 탐험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공원을 즐기는 이들은 여행자와 현지인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즐거움과 행복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수많은 공원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랑할 만한 규모는 단연 터널 톱스(Tunnel Tops)다. 뉴욕 하이라인을 건설한 제임스 코너(James Corner)가 디자인했다. 축구장 7개 정도를 합친 규모로 프레시디오(Presidio)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다. 고속도로 터널 위에 조성한 이 공원은 지역단체, 환경단체, 시민 활동가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놀이터와 피크닉 공간을 조성했다. 식물 180종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워지는 분위기가 압권이다. 공원의 조경과 규모에 한참을 감탄하며 걷다 맛난 냄새에 이끌려 푸드 트럭 존에서 발길을 멈췄다. 멕시코 푸드 트럭 엘 푸에고(El Fuego)에서 비리아(Birria)와 타코를 사서 통나무 벤치에 앉았다. 솔솔 부는 바람이 느껴지고 눈에는 맑은 하늘과 금문교가 담겼다. 맥스(Max)라는 골든 리트리버를 훈육하는 다정한 부부의 웃음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들리는 순간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가상현실 같았다. 

플라밍고 리조트의 사운드 볼 프로그램.

알찬 웰니스 프로그램을 갖춘 소노마 플라밍고 리조트의 풀장.

모던한 분위기로 새로워진 샌프란시스코의 더 제이(The Jay) 호텔.

오클랜드 로컬 식재료가 가득한 마켓홀(Market Hall)의 위층에 위치한 에이커(Acre) 레스토랑.

WELLNESS LIFE, SONOMA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소노마 카운티는 너그럽고 화창한 와인의 고장이다. 이곳에 자리한 와이너리 420여 개 중 90%는 각자의 방법으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에너지, 토양, 물 등의 관리에 엄격한 검증을 거치고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과정이 고단하고 수고로울지라도 즐거움과 행복을 잃지 않는다. “와인을 향한 애정과 예술, 커뮤니티가 우리의 연료예요.” 파라다이스 리지 와이너리(Paradise Ridge Winery)의 3대 오너가 월터(Walter) 가문의 가치관을 설명한다. 이들은 2017년 캘리포니아를 뒤덮은 대화재 이후 생물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땅을 복원하기 위해 애썼다. 와이너리를 걷다 보면 이끼 낀 바위와 풀숲, 광활한 포도밭 사이에 놓인 예술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예술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집한 작품은 이제 거대한 규모를 이뤄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맛있는 와인이 무르익는 도시는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웰니스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이다. 민트색 간판이 인상적인 플라밍고 리조트(Flamingo Resort)에서는 몸과 마음의 회복에 집중한 프로그램이 가득했다. 휴가를 즐기기 위해 장기간 머무는 사람부터 충전을 위해 자발적 고립을 택한 이들로 가득한 호텔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이곳에서는 짐을 풀고 침대에 드러눕는 대신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경험해야 한다는 매니저의 말에 평소 궁금하던 사운드 볼(Sound Bowl) 수업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매트를 깔고 자리에 눕자 하얀 털모자를 쓰고 수상한 장신구를 걸친 영험한 기운의 여자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사운드 볼을 이용해 신비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몸을 순환하는 에너지에 집중해 차크라 7개를 좇았다. 때로는 신비로운 자연의 소리가 들렸고 어떤 순간에는 몸속 어딘가에서 발생하는 파동과도 같은 소리에 흠뻑 빠졌다. 수업이 끝나고 눈을 뜨니 현실과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잠시 다녀온 듯한 감동이 몰려왔다. 함께 수업을 들은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는 이 감성적 경험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요가 수업과 명상 수업 중 고민을 하며 충만해진 마음을 안고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가늠할 수 없을 오랜 시간을 보낸 울창한 삼나무 숲 레드우드(Redwoods)를 걸으며 하이킹하고, 1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신선한 해산물과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바닷가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의 순간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짐을 느꼈다. 

FOODIE’S UTOPIA, OAKLAND 

좀 더 동쪽으로 들어가 도착한 오클랜드는 소노마의 평화와 달리 활기찼다. 꾸밈없고 소탈한 멋, 도시 곳곳의 그라피티와 재즈 바 간판이 새로운 바이브를 채웠다. 오클랜드 도시를 가로질러 도착한 키셀 업타운 오클랜드(Kissel Uptown Oakland) 호텔 로비에는 개성 강한 셰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문화 도시에서 피어난 다이닝 문화는 레스토랑, 팝업, 푸드 트럭, 로컬 마켓으로 가지를 뻗었다.

향신료 수만 가지를 구입할 수 있는 오크타운 스파이스(Oaktown Spice)부터 팜투테이블의 꿈을 구현하게 돕는 마켓 락리지(Rockridge) 등을 여행하며 이곳 셰프의 삶을 엿보았다. “음식을 매개로 한 다양한 축제가 열려요. 셰프로 살아가기에 이렇게 재미있는 도시는 없을 거예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맨해튼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경험을 쌓은 셰프 넬슨 저먼(Nelson German)이 말했다.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에서 영감을 받아 요리로 풀어내는 오클랜드 스타일(Oakland Style)이 열리고, 3월이면 여러 레스토랑이 함께 오클랜드 레스토랑 위크(Oakland Restaurant Week)를 개최한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자연, 문화, 예술이 한데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거리를 찾게 했다. 캘리포니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일주일 동안 한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놀면 놀수록 에너지는 소모되기 무섭게 채워졌다. 

샌프란시스코 공항(SFO)에 도착해 배낭을 뒤져 텀블러를 찾았다. 이 공항은 플라스틱 음식 용기, 물병 등의 판매를 금지하고 공항 내 비치된 쓰레기통은 매립용, 퇴비용, 재활용으로 나눠 운영된다.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환경을 위한 그들의 실천을 보고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코웃음 치며 편의점을 찾기 위해 인상을 찌푸리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몸과 마음이 모처럼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차니 뭐든 해보고 싶은 욕구가 끓어올랐다.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일도 왠지 거뜬히 해낼 것 같은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에디터
김정현
포토그래퍼
MAX WHITT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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