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만의 즐거움
비밀스러운 겨울 왕국이 펼쳐지는 알래스카로 떠났다. 스키에 최적화된 폭신한 파우더 스노를 즐기고 빙붕을 탐방할 수 있는 알래스카만의 즐거움.
알래스카에 스키를 타러 온 건 지난해 여름 이뤄진 뜻밖의 만남 덕분이다. 크루즈 여행으로 알래스카에 처음 방문했을 때 어느 바에서 우연히 앵커리지 출신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하이킹하는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을 경험하며 알래스카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할지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덧붙였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오, 아니에요! 이곳의 겨울은 정말 최고예요!”라고 답했다. 그는 초현실적 지형에 인적이 드문 스키 리조트, 경비행기로만 접근 가능한 오두막집에서 보내는 주말에 대해 설명했다. 햇볕은 내리쬐지만 눈이 여전히 가득 쌓인 2월 이후가 최고라는 설명도 함께했다.
평소 나는 최종 목적지보다 진입점으로 여겨지는 앵커리지에 흥미를 느꼈기에 이 도시를 둘러보는 것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알래스카주 인구 73만 명의 절반가량이 거주하는 앵커리지는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로 매혹적인 역사와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앵커리지의 토착 문화는 개척자의 텐트 야영지로 자리 잡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유가 발견되기 4년 전인 1964년 발생한 지진은 이곳의 땅을 평평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작은 대도시를 탄생시킨 자본의 물꼬를 텄다. 앵커리지는 실용성에 중점을 둔 타워가 즐비한 시내와 옆으로 누워 있는 타워를 연상시키는 스트립 몰로 이루어져 새롭지만 어딘가 오래된 인상을 풍긴다. 앵커리지 주민은 누구나 앵커리지의 매력을 놓고 너스레를 떤다. “이곳이야말로 진짜 알래스카를 볼 수 있는 장소예요!”
“확실히 리모델링할 때가 됐어요.” 첫날 아침 식사를 했던 현지 인기 식당 ‘파이어 아일랜드 러스틱 베이크숍(Fire Island Rustic Bakeshop)을 운영하는 레이첼 페닝턴(Rachel Pennington)이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것도 재미의 일부죠. 이곳에는 숨겨진 것이 너무 많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해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James Beard Award) 후보에 오른 그의 베이커리가 대표적 예다. 한때 병원이었던 이 공간은 현재 수제 주류 판매점, 식재료 판매점, 다육식물 화분과 귀리 우유 라테를 맛보는 커피숍이 있다. 맛있는 수제 크루아상을 먹고 시내 여러 군데를 둘러보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수제 맥주 전문점 중 하나인 미드나잇 선 브루잉(Midnight Sun Brewing Co.)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지진의 흔적을 간직한 유서 깊은 바 클럽 파리(Club Paris)에서 마신 마티니는 도시에 대한 불안함을 호감으로 완벽하게 바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사륜구동 렌터카를 몰고 시내를 벗어났다. 수워드 하이웨이(Seward Highway)를 달리며 알래스카의 광활한 대자연과 마주했다. 여름이면 벨루가 고래 떼가 모여드는 좁다란 해수 입구인 터너게인 암(Turnagain Arm)을 껴안은 도로는 바다에서부터 하늘로 치솟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의 장엄함이 세포 속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이날 우리의 목적지는 앵커리지에서 45분 떨어진 과거 광산 식민지 거드우드(Girdwood)였다. 오늘날 이곳은 숲속에 위용 있게 솟은 알래스카주 최고의 스키 리조트 알리에스카(Alyeska)가 자리한다. 나는 앞으로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며 리조트 내 산악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다.
1년간 스키를 타지 않았던 나는 관심은 있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백컨트리산맥에서의 스키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알래스카 사람들이 종교처럼 열광하는 이 스키에 도전하기 전, 약 762m 수직 지형에서 활강 시간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부신 태양 아래 파랑새 같은 푸른 하늘의 날씨가 너무 완벽해서 이날 백컨트리산맥 탐방 기회를 놓치는 것이 큰 실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큰 긴장감을 안고 리조트 내 슬로프 대신 현지 독립 아웃도어 장비 업체인 선도그 스키 가이드(Sundog Ski Guides)의 운영자 마이크 웰치(Mike Welch)에게 강습을 받으러 나섰다. 1년 내내 고산지대의 햇살을 쬐어 눈가에 잔주름이 생긴 그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을 만큼 여유롭고 자신감이 넘쳤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스키를 타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건 이곳의 스키를 누군가에게 처음 소개하는 것이에요.” 그가 말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눈사태 구조용 신호기 비콘(Beacon)의 사용법을 들은 뒤 스키 위에 스킨을 씌우고 눈 덮인 슬로프로 둘러싸인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는 6.4km에 걸쳐 약 610m 고도에 도달했다. 웰치의 스키와 스틱이 새겨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그 고요함에 압도되어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시간과 공간이 꿈같이 다가왔고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틴컨 피크(Tincan Peak) 정상에 오르니 알래스카의 저명한 백컨트리산맥이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 C. Escher)의 목판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수목 한계선이 457m에서 끝나기에 로키산맥과 다르게 눈으로 덮인 고드름, 봉우리, 협곡이 시야를 압도했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파노라마를 만끽한 후 스키 스킨을 벗겨 작은 접시 모양의 계곡에서 수평을 이루는 가파른 구간을 내려왔다. 자연설에서 즐기는 파우더 스키는 가슴 깊이 파고드는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황홀함보다 거친 욕설이 쏟아졌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인생에서 스키를 타며 느낀 행복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스키를 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누비는 것처럼 느껴졌다. 1959년 지역 주민이 돈을 모아 산을 개발하기 위해 고안한 이 리조트는 로키산맥의 호화로운 리조트처럼 규모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지형인 데다 리프트를 타기 위한 긴 줄이나 맥주를 사려고 스키 장비로 덮인 인파를 비집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스키를 위한 최고의 시간을 보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나무가 많지 않아 정해진 코스를 따라 숲을 통과하는 것이 아닌 오픈 볼(Open Bowl)이라는 트레일 이름처럼 코스는 하나의 제안 사항일 뿐이다. 이로 인해 리프트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백컨트리 스키에 버금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터너게인 암 사이를 통과하는 출렁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초현실적인 하강 코스의 특전을 맛볼 수 있다.
숲이 울창한 작은 마을 거드우드의 정취는 산 위의 분위기와 상당히 닮았다. 꾸밈없고 소탈한 멋, 여느 스키 타운의 가공된 느낌을 배제했지만 스키를 위한 필수 요소는 모두 갖췄다. 어느 날 저녁에는 실외 화로, 회전형 푸드 트럭이 있는 거드우드 브루잉 컴퍼니(Girdwood Brewing Company)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휴식을 취했다. 또 다른 날에는 미시건주 출신 커플 프랜스(Frans)와 젠 웨이츠(Jen Weits)가 운영하는 잭 스프랫(Jack Sprat)에서 환상적인 비빔밥을 먹었다. 소박한 레스토랑 체어 5(Chair 5)에서는 눈 속에서 하루를 보낸 후 간절히 원하던 버거를 맛볼 수 있었는데, 알래스카 이외의 지역에서 온 사람을 마주치지 않아 신선했다. 유명 스키 스폿 베일(Vail)의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순식간에 주식 포트폴리오가 바뀌지만, 체어 5에서는 현지 스키어와 터너게인 암에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파도가 한 번에 밀려오는 현상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알리에스카는 곧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2018년 캐나다 기업 포메로이 로징(Pomeroy Lodging)이 알리에스카를 인수하면서 이곳을 미국 48개 주 주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무제한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아이콘 패스(Ikon Pass) 중 하나로 등록되었고, 호텔은 다양한 혁신을 꾀하는 중이다. 이 중, 2022년 문을 연 5만 평방피트 규모의 노르딕 스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메인 곤돌라 근처 숲에 자리한 이 공간은 전면 유리창과 원목 테이블로 이뤄진 레스토랑, 야외 온천탕과 사우나실, 피부 관리실, 삼나무로 만든 배럴 사우나가 숲속에 자리한다. 개척자들의 전설 속 알래스카 모습은 아니지만 휴대폰 금지 정책으로 내게는 더 큰 모험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한 소중한 휴식처였다.
알리에스카를 뒤로한 채 눈발 날리는 도로를 뚫고 앵커리지를 지나 북동쪽의 추가치(Chugach)산맥 기슭을 따라 더 깊은 내륙으로 달렸다. 도착한 곳은 알래스카의 수많은 외딴 오두막 중 하나인 십 마운틴 로지(Sheep Mountain Lodge). 산자락을 따라 펼쳐진 아늑한 1인용 통나무집을 제공하는 이곳은 차량 접근이 가능하고 약 43km의 고대 빙하 성지인 마타누스카(Matanuska) 빙하와도 가깝다. 도착하자마자 시설을 운영하는 마크 플리너(Mark Fleenor)를 만났다. 테네시주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NGO를 위해 수년간 비행사로 지낸 그는 모험에 대한 욕구를 채워줄 마땅한 곳이 없어 알래스카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가 빙하를 등반하는 사진과 빙하 속을 스쿠버다이빙하는 사진이 본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일 년의 절반을 척박하고 열악한 땅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굉장히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이어 진지한 듯 허풍 섞인 말투로 덧붙였다. “빙하와 친해질 준비가 됐나요?” 그러고는 스노모빌 투어를 운영하는 그의 친구 라이언 코트(Ryan Cote)를 소개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니 얼어붙은 개울을 따라 빙하의 기저부를 향해 스노모빌을 운전하는 나를 발견했다. 30분 정도 지나 얼음벽 앞에 멈춰 섰다. 벽은 마치 그을음이 얼룩진 것처럼 보여 정체를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집중해서 관찰하자 놀랍게도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 표면과 그 안에 매달린 돌에 의해 투영된 검은색이 보였다. 그것은 수만 년 전 지각 변동을 포착한 스냅사진과 같았다. “이것을 기저 얼음이라고 하죠. 빙하가 이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바닥 면을 따라 움직이는 부분으로, 근본적으로는 빙하의 기저부에 해당합니다.” 코트가 설명했다. 기온이 따뜻해지고 몇 주가 지나면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물이 되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물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나 숙소 위의 파우더 언덕을 스노모빌로 다시 한번 탐험했다. 저녁에는 현지에서 잡은 연어로 만든 근사한 식사와 플리너가 준비한 고급 버번위스키를 마셨다. 이후 플리너는 에스프레소를 내리며 새로운 명당에서 빙하를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 분 후 우리는 그의 빨간 헬리콥터를 타고 빙하 위를 날았다. 척추뼈처럼 생긴 부분도, 파도가 서로 부딪치는 것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볼수록 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플리너는 헬리콥터를 빙하 꼭대기에 착륙시키고 내 부츠 위에 신을 아이스 클리트를 건네주었다.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됐나요?” 그가 물었다. 매년 여름, 그는 빙하의 균열로 녹은 물이 이동하면서 만들어진 벌레 모양 동굴을 찾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빙하 위를 비행한다. 그리고 얼음이 녹지 않는 늦가을이 되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는 장소를 탐험한다.
“유타주에 있는 슬롯 캐니언(Slot Canyons)을 아시죠?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에요. 만들어지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대신 매년 몇 달 동안만 존재하는 새로운 장소가 생깁니다. 정말 멋지죠?” 그를 따라 좁은 통로로 내려가자 숭고하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선명한 아콰마린과 코발트빛으로 태양을 반사하는 곡선의 얼음벽은 완벽하게 고요함과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동굴은 점점 어두워졌고 비단같이 섬세한 얼음 결정이 점점 가늘어져 마치 매달려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맨해튼 두 배 크기의 빙하 안 274m의 단단한 얼음 위에 발을 딛고 있는 건 우리뿐이었다. 문득 바에서 우연히 만나 몇 마디 말로 나를 알래스카로 이끈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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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정현
- 포토그래퍼
- JULIEN CAPMEIL
- 글
- DAVID AMSD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