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 곽동연

‘고도’라는 이름의 열정과 희망을 안고, 곽동연은 다시 무대로 향한다.

재킷과 셔츠, 팬츠, 슈즈, 네크리스는 모두 디올(Dior). 링은 티파니(Tiffany & Co).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손에 든 오브제는 연극의 소품.

재킷은 마틴로즈 바이 아데쿠베(Martine Rose by Adekuver). 이너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모자는 연극의 소품.

니트와 팬츠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A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눈물의 여왕> 이후 바로 연극을 선택했네요. 그만큼 무대가 그리웠나요?
처음 얘기하는 건데, 결정할 당시에 <눈물의 여왕>과 다른 작품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회사 분들과 눈을 감고 투표까지 해서 결정했는데, 잘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었어요. 저는 계속 연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영감을 쟁여놨다가 그걸 작품에 쓸 수 있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운동선수처럼 매일 연습해야 하는 거죠. 또 마침 좋은 작품이 있었어요.

A 연극도, 뮤지컬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뮤지컬은 지금 개인적으로는 은퇴했는데…. 데뷔와 동시에 은퇴.(웃음)

A 반면, 연극은 첫 공연 이후 꾸준히 이어오고 있죠. 첫 연극이 <엘리펀트 송>이었는데, 어떻게 시작했어요?
스물한 살 때였어요.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몸으로 자연스럽게 체득하면서 일하던 중이었죠, 당시 나인스토리 대표님이 <엘리펀트 송>의 새 얼굴을 찾고 계셨어요.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다가 대본을 받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머리를 다 잘랐는데도 계속 앉아서 읽었어요.

A 마니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재미있는 작품이죠. 그래도 첫 연극에 도전할 때는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연극 활동을 오래 하신 선배님들이 매체에 갑자기 ‘빡’ 나타나서 뭔가를 ‘빡’ 보여주시는 사례가 많았어요. 너무 궁금했죠. 거기 가면 뭐가 있는 걸까? 거기서 수련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 호기심이 제일 커서 해보기로 했어요. 사실 뭣 모르니까 할 수 있었던 거죠. 지금이라면 못했을 것 같아요.

A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잡은 거네요.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에 시작한 <엘리펀트 송> 무대에 세 번 올랐죠.
이제 안 할 겁니다.(웃음)

A 하하, 이번엔 <엘리펀트 송> 은퇴 선언인가요?
이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본 것 같아요. 첫 공연은 아쉬움이 많았죠. 두 번째에는 바로 다음 시즌을 하고 싶었는데 다른 작품 때문에 못했던 한이 남았어요. 그리고 지난 시즌에 세 번째 공연을 했고, 후련했어요. <엘리펀트 송>의 마이클이 극 중에서 스물세 살이에요. 마이클을 스물한 살, 스물세 살, 그리고 작년 스물일곱에 한 거죠. 공연 프로필 사진 세 개를 두고 보면 이제 마이클 안 같더라고요. 나이를 먹은 거예요.

A 그때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제 생각에 마이클은 여리여리하고 좀 소년 같은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저한테서는 그런 느낌이 안 나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대학로에 있는 형들이, 서른 중반에도 학생 역할하는데 네가 그런 말 해도 되느냐고 하시는데….(웃음)

A 연극을 경험한 다음 스스로 달라진 걸 느꼈어요? 궁금했던 것처럼 뭔가가 달라지던가요?
몇 달을 연기 연습에만 집중한다는 게 우선 너무 좋았죠. 그 당시에는 드라마 현장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었거든요. 사실 바로 뭔가가 적용됐다고 보기는 어렵죠. 오히려 매체와 무대를 오갈 때, 두 방법을 모두 알게 되면서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그 힘이 되게 좋고, 그리고 연극으로 연기에만 집중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크죠. 연극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오늘 뭐가 좀 아쉽거나 실수를 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드라마를 찍으면 방송이 나가면 끝이잖아요. 아쉬움과 실수도 영원히 남죠. 하지만 연극은 계속 거듭할 수 있어요. 과감하게 해볼 수도 있고, 뭘 추가했다가 뭘 덜어냈다가 할 수 있는 게 좋아요.

A 9월 7일 무대에 오르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살짝 비튼, 원작과 같은 주제를 전달하면서도 다른 작품입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언더스터디’ 배우인 에스터와 벨을 등장시켜 원작을 오마주한 작품이죠.
맞습니다. 원작을 너무 좋아한 미국의 데이브 핸슨이라는 극작가가 쓴 작품인데, 이 분이 배우이기도 해요. 본배우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해, 같은 배역을 연습하며 대기하는 배우를 언더스터디 배우라고 하는데, 이 두 배우가 극장의 가장 구석진 분장실에서 대기하며 무대에 올라갈 기회를 기다려요. 원작인 <고도를 기다리며>가 얘기하려는 철학이나 관념 같은 것을 좀 더 쉽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작품이죠. 저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되는데, 한국 초연이고 저도 본격적으로 연습한 지 이틀째라.(웃음)

재킷은 아미(Ami). 네크리스는 크롬하츠(Chrome Hearts). 브레이슬릿과 검지 링은 피아제(Piaget). 약지 링과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톱은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검지와 약지 링은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네크리스는 톰 우드(Tom Wood).

A 오늘 화보에도 실제 연극 소품을 사용했어요. 저녁 공연 전에 반드시 돌려드려야만 하는!
사실 이 작품은 원작자가 사무엘 베케트 재단의 저작권을 영리하게 피해간 작품 중 하나인데요, 재미있는 건 한국에서는 두 작품이 같은 제작사거든요. 그래서 이 모자와 신발, 소품은 지금 선생님들도 쓰고 계시죠.(웃음) 저희도 이어서 사용할 거고요.

A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표 작품이자, 현재도 배우 신구, 박근형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왜 배우도 관객도 이 작품에 매료될까요?
저도 선생님들 거 두 번 봤어요. 저렇게까지 진짜 같은 연기를,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약속된 상태에서 할 수 있구나. 그리고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이 대단하시죠. 관계자들 말로는, 공연하실 때 컨디션이 더 좋으시대요.

A 특히 보는 사람마다 감흥, 해석이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죠.
그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고도를 기다리며>가 맨 처음 공연됐을 때 관객과 비평가 모두한테 외면받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은 열광했다고 하죠. 그들에게는 ‘고도’가 자유의 의미로 확 와닿았던 것 같아요.

A 배우 곽동연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다가왔어요?
극 중에서 두 인물은 “가자” “안 돼, 더 기다리자”를 두고 계속 갈등하거든요. 저희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삶에서 바라는 그 무언가가, 고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순응하고 기다릴 것이냐, 혹은 찾아 떠날 것인가. 그런 이야기로 느껴졌어요. 저도 항상 그걸 고민하거든요. 배우는 숙명적으로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기다리기만 해서 될까? 이게 항상 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에요.

A 질문이 같더라도 그 답은 매번 달라지겠죠. 지금의 답은 뭐예요?
어떡할 거야, 이미 태어났고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이미 살아가게 되어버렸는데.(웃음) 그러니까 일단 해보자. 저는 항상 좀 그런 주의죠. 제 삶을 관통하는 어떤 생각과 이번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게 같았어요.

A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이순재 선생님과 더블 캐스팅이죠.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맞아요. 같은 배역을 하는 거고 이순재 선생님 팀과 저희 팀, 두 개가 있어요. 저는 박정복 형과 함께해요. 형과는 <엘리펀트 송>도 같이한 터라, 저희끼리는 한 달 전부터 계속 만나고 새벽에도 이야기 나누면서 준비했어요. 아주 제대로 준비해보자고. 좀 색깔이 다른 두 버전이 될 것 같아요. 선생님과 이번 주 첫 연습을 함께했는데 다행히 뭐 크게 혼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웃음) “공연할 때 우리 배우들은, 관객이 누가 됐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다 전달해야만 한다. 그것이 공연의 첫 번째 목표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A 큰 줄기를 말씀하셨군요.
저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일하면서 다양한 선배를 만나잖아요. 모두 다 다른 가치관과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갖고 있으니까 엿보고 귀동냥하면서 좀 생각하다 보면 제 것도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기존의 제가 가진 가치관이 붕괴되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는, 저도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A 가장 빠른 시대에 가장 느린 방식을 사랑하는 일은 어떤가요?
저는 뉴미디어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타입인데, 어느 순간 OTT 드라마를 보다가 10초 뒤로 넘기기를 하는 저 자신에게 소름이 돋아서…. 그래서 연극 보러 오시는 분들에게 꼭 오시길 잘했다는 마음을 남겨드리고 싶어요.

A ‘고도’의 다른 이름은 ‘희망’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안 오더라도 언젠가는 올 수 있죠. 언젠가 만나고 싶은 고도가 있어요?
있습니다. ‘순도 높은 평화’를 갈망해요. 언젠가 만나겠죠.

A 이번 작품의 대사 하나로 인터뷰를 마무리해볼까요?
“하지만 전 지금보다 나아지면 좋겠어요. 더 이상 기다리기 싫다고요.”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KWAK KI GON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헤어
김태현
메이크업
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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