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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삶 / 박성훈

연극 <빵야>에서 박성훈은 소총이 되어 아홉 명의 인생을 산다. 

코트, 팬츠, 이너 셔츠와 셔츠는 모두 질 샌더 (Jil Sander).

레더 코트는 구찌(Gucci).

재킷과 팬츠는 디올(Dior).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팽글 블라우스와 이너 톱, 팬츠는 모두 아미(Ami).

셔츠와 타이, 팬츠는 모두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연극 <빵야>에 등장하는 소총과 비슷한 총을 계속 찾았는데, 직접 소장하고 있었군요? ‘빵야’가 바로 ‘99식 소총’이니,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이죠. 문학에서 말하는 ‘의인화’의 표본 같은 작품이에요.
연습도 하고, 기념으로도 갖고 싶어서 제일 비슷한 걸 샀죠. 빵야는 황기 2599년(1939년)에 제작된 총이죠. 사실 같은 건 줄 알고 샀는데 아니었어요.(웃음)

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죠. 왜 이 작품인가요?
지금 이 시기면 시간이 날 것 같았어요. 김태형 연출에게 연락했더니 마침 <빵야>를 하는데 잘 맞을 것 같다며 대본을 줬어요. 3시간 분량 공연인데 1시간 만에 다 읽었어요. 사물을 의인화한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고, 뼈아픈 한국의 근현대사를 훑어주는 것, 소시민의 애환을 다루는 것도 너무 좋았죠. 되게 영리한 대본이에요. 제가 시켜달라고 졸랐습니다.(웃음)

연출자, 작가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은데요?
김태형 연출은 11년 전에 <히스토리 보이즈>를 같이했고, <모범생들> <두결한장>이라는 공연도 함께한, 저랑은 오래되고 막역한 사이예요. 김은성 작가님과는 처음이지만, <달나라 연속극> <목란언니>를 좋아했거든요. <빵야>도 저희가 재연인데, 초연 당시 좋은 상도 많이 받았어요. 제 팬 분이 ‘갓극’이 나왔다고 한 작품입니다.

계속 동향을 살피고 있었군요? 어느 부분이 잘 맞는다고 했나요?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관심이 가죠. 일단 장총 같잖아요 제가. 삐쩍 마르고 길고.(웃음)

“누구야! 너 나 알아?” 이게 빵야의 첫 대사죠.
빵야는 77세인데 총이 낡지만 늙지는 않으니까. 빵야로서는 ‘그 수많은 세월 동안 고난과 고통을 겪고 이제 조금 쉬려는데, 네가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라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참다 참다 뱉는 첫마디입니다.

그리고 77년 동안 주인이 아홉 번이나 바뀌는 삶을 보여줍니다.
어쩔 수 없이 전쟁통 속에서 살육을 하는 고통스러운 빵야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주인마다 어디까지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한정된 시간 동안 아홉 명을 연기하는 셈인데, 어땠나요?
그래서 전환도 많고 속도감도 빨라요. 울다가도 바로 털고 또 “다음 주인은!” 하죠. 순간순간에 충실하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매 순간 긴장을 놓으면 안 되고 그 순간 집중력이 필요하죠. 또, 다른 연극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큐가 많아요. 음향 300개, 조명 700개, 약 1000개의 큐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거의 노래 없는 뮤지컬? 조명도, 음향 효과도 많은 데다 군가와 안무도 들어가죠. 수많은 연출의 역량이 집중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연출의 힘이 있는 작품이군요. 배우에게는 의지가 되기도 하나요?
극을 효과스럽게 전달할 수 있죠. 반면 그 수많은 큐를 다 맞추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있습니다. 여러 배우들, 또 음향과 조명을 책임진 오퍼레이터 분과 세밀하게 다 맞아야 하기 때문에 관객 분들은 알아차릴 수 없는 작은 실수도 종종 있고요.

한동안 매체 연기에 집중했죠. 연극 무대가 그리웠나요?
그동안 항상 접촉도 하고 이 작품 해볼까 고민도 하고 논의도 했어요. 시기가 안 맞은 것도 있고, 방송과 영화 등 매체 연기에 집중할 때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이번엔 작품과 시기가 딱 맞았죠.

7년 만에 돌아와보니 어떤가요?
내가 너무 매체 연기에 익숙해져 있었구나.(웃음) 그래서 부족한 것 같고 성이 안 차요, 아직까지는. 공연은 시작되었지만, 연습을 거듭하면서 저 자신이 좀 더 만족스러울 만큼, 어떤 수준에 오르게끔 노력하는 중인 것 같아요. 거의 매회를 ‘첫공’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너무 좋고요.

‘첫공하는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이에요?
공연 많이 할 때도 매회 첫공은 항상 떨렸어요. 사실 첫공은 추천하지 않는 편이에요. 중간이나 후반부에 오는 거를 좀 추천하는 편인 것 같아요. 지금 오시면 됩니다.

인생 첫 공연의 기억은 뭐였나요? 여전히 생생한가요?
대학로에서 제일 처음 올린 공연은 <밍크고래는 소화불량이다>예요. 그런데 학교 워크숍으로 1학년 1학기 무대에 섰던 게 첫 경험입니다. 그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장진 감독님이 쓰시고 연출한 작품 <택시드리벌>을 저희끼리 해본 거였죠.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서울연극제>에서 최민식 선배님이 주연을 하신 그 역할을 제가 맡은 거죠. 워낙 끼가 넘치는 동기들이 많은데, 제가 주인공을 한다는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부담스러웠어요. 첫 대사할 때는 웃음소리도 들리는 듯했죠. 그런데 극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점점 집중되고 마지막 커튼콜 때 감탄하면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줄 때. 그성취감과 희열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도 무대에 오르는 것 같아요.

그게 공연 예술이 말하는 관객과의 호흡이고 매체 연기로는 만날 수 없는 지점 같습니다.
맞아요. ‘지금 관객들이 집중해서 보고 있구나’라는 게 기운으로 느껴져요. 기원전부터 시작된 연극이 지금 OTT의 시대에도 활발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알게 되고 그 공연을 보려고 마음먹고 티켓을 구하고 시간을 내서 극장에 온다는 건 사실 굉장한 노력과 엄청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객석을 채워준 모든 분께 진짜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빵야>의 공연장 대신 바로 옆 소극장을 빌려 화보를 촬영했는데요. 연극의 요람 같은 곳이죠. 극 중에도 혜화역 로터리가 등장합니다. 추억이 많죠?
로터리 옆에 있는 양평해장국도 등장했는데, 아쉽게도 그곳은 얼마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대학로에는 추억이 정말 많죠. 골목마다 술집마다 밥집마다 극장마다, 많은 추억이 서려 있죠. 여기서 술 마셨는데, 저 집 칼국수 되게 좋아했는데.

역시 미식가다운 면모를. 말이 나온 김에 단골집을 추천한다면?
사람들이 너는 음식 얘기할 때 정말 신나 보인다고. 저 로터리 조금 지나서 명륜손칼국수 추천합니다. 11시에서 1시까지만 하니 좀 일찍 움직여야 먹을 수 있어요.

연극이 주는 가장 큰 희열과 즐거움은 뭔 것 같아요?
지금 이 공연은 이 시간에만 존재하고 이 자리의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공연을 같은 사람이 반복해도 매일 다른 게 연극인데, 또 배역도 바뀌고 매회마다 진짜로 다른 재미가 생기거든요. 그 생동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요.

<빵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느낀 점도 있나요?
7년 동안 달라진 공연 문화가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당연했던 프레스콜은 이제 잘 안 한다고 하고, 처음 들어보는 ‘그래이공’, 공연 끝나고 한 신을 보여주는 스페셜 커튼콜처럼 제가 모르는 것들이 생겼어요. 그 사이 활발히 활동하는 후배도 있고요. 물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배님들이 계시지만 저는 뭔가 대학로가 이제 한 세대가 넘어갔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공연의 템포도 좀 더 빨라진 것 같아요.

유튜브와 숏폼의 영향일까요?
그런 영향도 받지 않을까요? 저희 공연도 템포가 빠르거든요. 또 그런 것들을 체감하고 있죠.

그 연극 문화에서 또 큰 족적을 남겼잖아요. ‘락우드석’ 또는 ‘박성훈석’이라고. 그건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모범생들> 할 때 배우들이 티케팅에 참여해서 관객 분들께 선물하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티케팅이 얼마나 치열한지 배우들이 체감도 하고, 선물도 드리자는 거였는데, 자리를 선택하면 항상 ‘이선좌(이미 선택한 좌석)’가 뜨는 거죠. 제일 뒤에 끝자리를 선택해서 “예매 성공했다!” 했더니 이게 무슨 선물이냐고 벌칙이지….(웃음) 실제로 선물받은 분이 후기도 남겨주셨죠. 그러면서 그 자리가 박성훈석으로 불리게 된 건데, 벌써 10년이 넘었거든요. 지금까지 쓰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이렇게 공연계에 큰 족적 하나를 남깁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도 “선배님, 박성훈석이 도대체 뭐예요?” 합니다. 뿌듯하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대학로에 제 이름 석 자를 남겼으니까. 부디 77세가 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할 텐데….

77세의 배우 박성훈을 상상해본 적 있어요?
신구, 이순재 선생님처럼 기라성 같은 대선배님들을 보면 매체 활동도 꾸준히 하시면서 항상 무대를 놓지 않으세요. 너무 대단하죠. 저도 벌써부터 체력의 부침을 느끼는데 그걸 끝까지 놓고 가져가시는 모습을 존경해요. 항상 저분들처럼 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죠. 저 역시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고, 그런 모습을 상상합니다.

다음엔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요?
연말에는 <오징어 게임2>가 선보이게 될 거고, 영화 <열대야>는 아마 내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동안은 무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일도 공연이 있어요.

포토그래퍼
최문혁
스타일리스트
김기만
헤어
박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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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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