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이
로맨스물 속 이상이는 오랜만인 것 같아요.
외로운 짝사랑만 하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쌍방향 사랑은 오랜만이에요(웃음). 행복했고 재미있었습니다.
본격 로맨스를 기다렸나요?
‘손해 보기 싫어서 결혼한다’는 설정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마이 데몬>을 촬영하던 중에 대본을 받았는데, 사회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점이 흥미로웠어요. 요즘은 결혼은 차치하고 연애조차 하지 않는다잖아요. 3포 세대나 5포 세대라는 유행어도 있고요. 모두가 말하지 않을 뿐 모든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손익을 따지기 마련인데, 이런 현실을 예쁘고 명랑하게 표현한 점이 좋았어요. 복규현이라는 인물의 변화와 성장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복규현은 사랑에 부정적인 비혼주의자죠. 배우에게는 어떤 점이 흥미로웠나요?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연애와 결혼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인데 지현 씨가 연기하는 남자연을 통해 변해요. 어느 날, 사고를 당한 것처럼 빡! 사랑에 빠지죠. 모든 재미는 사람이 변할 때부터 시작되잖아요. 규현에게 그 지점이 참 재미있었어요. <사냥개들>의 우진, <한강>의 기석과 다르게 멋진 슈트를 입고 추운 날 따뜻한 곳에서 촬영하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끌렸고요.(웃음)
어쩌면 제일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람이네요. 사랑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맞이하잖아요.
맞아요. 어찌 보면 그 부정적인 마음이 스스로의 방어기제 같기도 해요. 상처받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 부정하고 살아가는 거죠.
<손해 보기 싫어서>가 얘기하는 사랑은 뭘까요?
사랑의 본질을 고찰하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어린 시절 우리는 사랑은 아름다운 것, 좋은 거라 배우지만 나이가 들고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면 그것이 썩 아름답지 못할 때도 있다는 걸 깨닫잖아요. 연애와 결혼에서 멀어지는 것도 사랑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다치지 않으려는 선택일 수 있고요.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연애와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죠. 저희 작품에는 부부, 장기 연애 커플 등 다양한 사랑과 관계, 인물이 나와요. 어떤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느낄 거예요.
얘기를 듣다 보니 마냥 가볍게만 볼 수 있는 로맨스는 아닐 것 같아요.
배우들 모두 ‘솔직하다’는 표현을 자주 꺼냈어요. 작가님이 그만큼 적나라하게 쓰셨죠. 다행히 복규현은 예쁜 사랑을 조성해가는 쪽이라 촬영 내내 즐거웠어요.
한지현 배우와의 케미는 어땠어요?
과일을 의인화한다면 그게 바로 지현이지 않을까 싶어요. ‘상큼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현장의 모두가 입을 모아 지현이를 칭찬했어요. 장난이나 농담의 코드가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저와 지현이, 감독님 모두 잘 맞아서 유쾌하게 촬영했어요. 그 케미가 <손해 보기 싫어서>의 스핀오프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사장님의 식단표>라는 또다른 작품으로 펼쳐지다면서요?
여러 작품을 했지만, 스핀오프 형태로 차기작이 결정된 건 처음이에요. 복규현과 남자연의 연애가 기괴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풀려요. 원 없이 코믹 연기를 펼쳐 보였으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두 작품을 함께하며 파악한 지현 씨의 강점은 뭔가요?
지쳐도 파이팅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김정식 감독님이 ‘내 딸이 너처럼 크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엄청 아끼셨고요.
상이 씨에게는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알아서 하라고 믿어주신 것 같아요. 연기에도 흐름과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도 있거든요. 진부하고 촌스러울 수 있지만 작품에 필요한 요소를 잘 알려주셨고, 덕분에 지난 경험 속에서 끄집어냈어요. 경험했던 것, 알았던 것, 봐왔던 것을 적재적소에 꺼내놓을 수 있었죠. 감독님과 이런 호흡이 좋아서 신뢰를 받으며 촬영할 수 있었어요.
내심 자랑스러운 순간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그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갯마을 차차차> 이후 민아 누나와 다시 만났고, 김영대, 이유진 배우와의 톰과 제리 같은 연기도 유쾌했고요.
일이 한창 재미있어지는 시기인 듯 보여요. <사장님의 식단표> <굿보이> <사냥개들2>까지 차기작 소식도 끊임없이 들리고요.
정말 운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명쾌한 답이 없어요. 실력 좋고, 잘하고 매력 있는 사람은 많아요. 올해 운이 정말 좋았던 거죠.
그 운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일에 있어서 동력은 뭐예요?
도전이라는 점은 변치 않아요. 데뷔 초에는 그 방향에 다양한 역할, 캐릭터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잘할 수 있는 것에 구미가 당겨요. 지금까지 여러 기술과 역량을 모았으니 이것들을 결합해 최상의 기술력을 만들고 싶어요. 꾸준히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부단히 칼을 갈고 싶은 분야가 있어요?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경험이 쌓여 마인드맵처럼 뻗어가는데, 늘 선택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그 방향은 알 수 없죠. 그래서 더 흥미롭고요. <손해 보기 싫어서>와 <사장님의 식단표> 역시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보여준 로맨스, <동백꽃 필 무렵>에서의 코믹 연기가 이번 작품에 적용되었고, <사냥개들>과 <한강>에서 선보인 액션, 누아르를 통해 경험한 성장이 <굿보이> <사냥개들2>에 닿은 것 같아요. 커리어가 쌓인다는 게 재미있고 뿌듯함의 연속이에요.
이상이 개인의 삶에서 지금 가장 소중하게 지키려는 건 뭐예요?
혼자만의 시간요.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 충전돼요. 내면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밖에 나가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드라마 <굿보이>를 부산에서 촬영 중인데, 한 번 가면 3주씩 머물러야 해요. 그 틈에서 반나절이라도 시간이 나면 KTX를 타고 집에 다녀와요. 잠깐이라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집에 머물다 오는 게 너무 좋아요.
집 안에서 상이 씨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요?
식물요. 촬영하고 2~3주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새잎이 난 걸 보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요. 보통의 잎은 녹색, 진녹색인 반면 새잎은 밝은 연둣빛이에요. 5~6종을 키우는데 화분에 산 날짜를 기록해뒀어요. 1년 반 전에 산 히메몬스테라는 벽 하나를 덮을 정도로 엄청 자랐고, 스킨답서스도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면 뿌듯해요. 모든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고 생각해 곁에 자연을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상이 씨의 본질적인 외로움은 어떻게 다스리나요?
스스로 통제, 절제하는 것 같아요.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아가기 위해서요. 언젠가 유튜브 쇼츠에서 ‘밖에 나가고 싶은데 나가기 싫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만나고 싶다’는 내용을 봤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다 생각했어요. 저 역시 그렇고요. ‘이 나이에 뭘 해야 한다’와 같은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점점 멀어지고, 나이 들수록 외로움에도 무뎌지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면이 커지는 셈이고요. 그럴수록 저 자신이 좀 더 소중해지고 지키려는 것도 많아져요. 아마 그래서 이번 대본을 재밌게 읽은 것 같아요.
한 지 현
올해 초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 촬영이 끝났죠. 방영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때요?
정확히 3월 23일에 끝났어요. 사실 지난 한 해 열심히 일했는데도 공개된 작품이 없었어요. 인스타그램 댓글이나 DM으로 저를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오랜만에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어 감사한 동시에 좀 두려워요. 시청자에게 남자연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나의 최선과 노력이 시청자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지 걱정돼요. 다행히 첫 방송은 자연의 분량이 적어서 마음 편히 시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현 씨가 연기하는 캐릭터 남자연은 흔하지 않은 직업을 갖고 있죠. 19금 웹소설 작가라고요?
보기와 달리 순진한 친구예요.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이 어른이 되어버려요. 연애 쪽으로는 경험이 없는 모태 솔로인데, 그래서 더더욱 상상력을 발휘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역할이라는 점에 끌렸어요. 회를 거듭하면서 더 흥미로워지는 인물이에요. 복규현(이상이 분)과 요상한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손해영(신민아 분)과의 관계 속에서도 진한 여운을 남기거든요.
19금 웹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웹툰으로만 봤어요.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을 표현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북목과 마감에 쫓겨 찌든 모습이더라고요. 이 모습을 구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김정식 감독은 전작 <힘쎈여자 강남순> <술꾼도시여자들>에서도 알 수 있듯, 배우의 성향과 캐릭터를 맛깔 나게 매칭하는 감각이 탁월한 것 같아요. 미팅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줬나요?
감독님과 처음 미팅하던 날 캐릭터에 관한 궁금증을 한가득 적어 갔어요. 자연의 말과 행동에 자꾸 물음표가 생겼거든요. 미팅 자리에 오늘처럼 품이 넉넉한 티와 팬츠를 입고 가서 궁금증을 와르르 쏟아냈어요. 대본을 읽으며 자연이 궁금하기도 했고 꼭 하고 싶었거든요. 몇 번 얘기를 나누시고는 “자연의 색을 가졌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실제 싱크로율은 어때요? 연기를 하며 자연에게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나요?
소심함요. 자신의 부족한 면을 감추려는 게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내색하려 하지 않지만 실수하거나 틀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스타일이에요.
전작 <치얼업>의 명랑 발랄한 해이가 한지현 그 자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소심’은 한지현과 거리 있는 단어가 아니었나요?
맞아요. 해이는 20대 초반 한지현 그 자체였어요. 한없이 밝고 맑은 아이였죠.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한지현을 보여준 것 같았어요. 남자연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스며든 것 같아요. 극 초반에는 자연을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저 자신이 자연이가 된 것 같았어요. 자연이를 연기하며 걱정과 불안, 조심스러운 감정이 저를 지배했거든요.
힘든 과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얘기하는 걸 보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나 봐요.
연기를 하는 순간, 찰나의 재미가 저를 행복하게 해요. 불안하고 걱정되는 만큼 설레요. <펜트하우스> <치얼업> <손해 보기 싫어서>까지 캐릭터의 결이 각기 차이 나다 보니 달라지는 현장 분위기를 체감하는 것도 흥미로워요.
상대역인 상이 씨와는 큰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전설의 10학번과 15학번이죠. 학연의 덕을 좀 봤나요?
현장에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게 그렇게 든든한 일인지 몰랐어요. 학창 시절에는 복도에서 오가며 인사만 하는 선배였는데, 현장에서 만나니 듬직하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잘 떠는 편인데, ‘괜찮다’ ‘편하게 하라’는 말이 큰 힘이 됐어요. 소문대로 상이 선배가 ‘열정맨’이라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선배님에게 누를 끼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완성한 케미의 성과가 스핀오프 작품으로 이어졌나 봐요. 두 사람이 주연으로 참여한 <사장님의 식단표>는 어떤 작품인가요?
많은 걸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유쾌한 로맨스물이에요. 남자연이 쓴 소설 속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지는데 ‘와~ 이거 뭐지?’ 싶을 정도로 감탄하게 될 거예요.
실제로는 손해 보기 싫어서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편인가요?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지르는 타입인가요?
지르고 후회하는 타입요. 안 하고 후회할 바에는 질러놓고 수습하자는 쪽이에요. 실패든 성공이든 일단 경험하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최근 앞뒤 안 재고 도전해본 건 뭔가요?
헌혈요. 한두 달 전부터 헬스를 시작했는데 몸에 피가 잘 돌고 건강해진 것 같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헌혈해보고 싶어서 예약하고 바로 다음 날 헌혈하러 갔어요. 그게 지난주 토요일 일이에요. 전혈을 해서 8주 뒤에 또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고 보니 헌혈증을 많이 모으고 싶다는 작은 목표가 생겼어요.(웃음) 진득하지 못한 게 단점이지만, 한번 해봐야죠.
취미와 흥미가 ‘찍먹’ 스타일인가요?
맞아요! 운동을 좋아해서 등산, 클라이밍 같은 취미 생활도 하는데, 빨리 습득하고 다른 걸로 넘어가는 편이에요. 음식도 꽂히면 그 메뉴만 먹어요. 유튜브도 자주 시청하는데, 알고리즘을 보면 아주 다양해요. 게임 방송부터 다큐멘터리, 범죄 사건, 귀신 이야기 등등.
연기를 꿈꾸던 학생에서 직업인이 됐어요. 요즘은 어떤 고민을 해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기회를 잘 잡아서 ‘내가 될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극복할 수 있었죠. 요즘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나만의 연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답은 찾았나요?
여유를 갖는 거요. 주변에서 ‘발 좀 땅에 붙이고 있어’라고 할 정도로 성격이 급해요. 대사와 장면을 꼼꼼하게 음미하는 연습을 하려고 해요. 선배님을 보며 ‘인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고 있어요.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커리어를 이어가는 분들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의 태도와 인생의 가치관,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