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클럽의 도시가 어느덧 따스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베를린에 첫발을 디딘 건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어수선한 1990년대 후반이었다. 나는 이곳의 향락적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베를린에서의 첫날 밤,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칼 마르크스 알레에 위치한 스탈린풍 맨션 지하에서 열린 테크노 파티를 즐기며 아침을 맞았다. 그날 이후 베를린을 몇 번이나 다시 찾았다. 끝없이 변화하고 재탄생하는 이 도시는 깊은 역사와 매력적인 하위문화가 뒤섞인 동시에 뉴욕처럼 현실과 문화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었다. 티어가르텐의 승리 기둥 아래서 자전거를 타다가 빔 벤더스가 연출한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속 천사 브루노 간츠를 마주치는 일은 흔했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며 노이쾰른(Neukolln)과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의 어두운 거리와 ‘베르크하인’ ‘트레조어’ 등 몇 시간을 기다려도 입장이 어려운 테크노 클럽은 베를린의 상징이 됐다.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신은 강세지만, 사람들은 변했어요. 단순히 클럽만 찾지 않죠. 클럽 문화와 뜻깊은 예술 프로그램을 접목한 장소가 등장하고 있어요.” 올 초, 호세 쿠에바스와 함께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에 갤러리를 오픈한 로렌스 하젠의 말이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된 클라우스 비젠바흐는 생 로랑 쇼를 개최하고 주목받지 못하던 튀르키예 예술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등 미술관의 지평을 넓히는 중이다. 서베를린이 상업주의로 물드는 동안, 베를린 곳곳은 조용한 부흥을 누리고 있었다. 물가가 비싼 부촌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 역시 그랬다. 나무가 즐비한 이곳은 아르데코 베를린 지역으로, 최근 호텔 ‘빌미나’와 ‘더 혹스턴’이 이곳에 문을 열었다. 샤를로텐부르크의 아담한 수아레즈 거리를 자전거로 누비며 골동품점과 1920년대 지은 알트바우 건물을 감상했다. 이 도시는 끊임없이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포토그라피스카 베를린’이 자리한 오라니엔부르크 거리도 마찬가지다. 본래 유대인 소유의 백화점이던 이 건물(쿤스트하우스 타헬레스)은 나치에 의해 감옥으로 이용되다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방치됐다고. 그러다 예술단체 ‘타헬레스’가 점유하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그라피티가 벽과 문에 남아 있다. 현재 건축가 헤르초크와 드 뫼롱이 최상층을 증축한 이곳에는 갤러리를 재해석한 바와 레스토랑,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도시의 변화에는 호텔의 독창성이 한몫했다. 미테(Mitte)에 자리한 호텔 ‘샤토 로얄’의 객실은 데이미언 허스트, 얀 보, 사이먼 후지와라 같은 저명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1920년대 서베를린 아파트의 차분한 색감에서 영감 받은 회화, 사진, 조각, 설치를 선보였다.
레스토랑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다. 샤를로텐부르크 중심가인 칸트 거리에 위치한 트렌디한 호텔 ‘빌미나’는 늦여름에 진가를 발휘한다. 울창한 비밀 정원에서 흩날리는 나뭇잎과 흰 꽃은 목가적인 여름 풍경을 펼쳐낸다. 지난봄, 런던에서 샤를로텐부르크로 건너온 호텔 미테 오라니엔부르크 거리에 위치한 색다른 분위기의 네오 바로크 양식 호텔 ‘텔레그라펜암트(Telegraphenamt)’는 옛 전신국이자 산업 왕국을 개조해 만들었다. 오래된 홀에 서면 바이마르 시대의 유령이 전보를 보내는 소리가 지하실 공압관에서 들려올 것 같다. 마키와 소프트 셸 크랩 튀김을 먹으며 DJ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더 혹스턴’은 1970년대 건물을 업사이클링하며 이곳의 20세기 초 모습을 되살려 냈다. 분홍빛 조개 장식의 헤드보드와 부클레 원단을 두른 의자가 놓인 침실이 눈에 띄지만, 벽난로가 비치된 바와 윈터 가든에 곧 마음을 뺏기고 말 거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느낄 곳도 많다. 쿠르퓌르스텐 거리에 새로 생긴 갤러리 ‘하이디’에서 열리는 멀티미디어 쇼를 감상할 것. 포츠다머 거리 근처 갤러리 ‘몰리터’는 페니 고링 등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국제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크로이츠베르크 란트베어 운하 근처 갤러리 ‘카빈’에서는 신화적 추상을 선보이는 볼프강 귄터의 작품을, 사진 전문 갤러리 ‘포토그라피스카 베를린 분관’에서는 캔디스 브라이츠의 풍자적 화이트페이스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이 공개한 올해의 라인업도 주목해보자. 바이마르 시대 스타 조세핀 베이커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 올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5주년 되는 해지만, 가장 큰 행사는 기념일 이후 공개될 약 50m 높이의 자유와 단결 기념비 조성이 될 것이다.
파리 스타일의 서민적 레스토랑은 여성 주류 식당으로 변모하고 있다. 북서쪽에 위치한 노동 계층 지역 베딩(Wedding)을 거닐다가 ‘율리우스’에 들어가 안초비 요리를 주문했다. “예술가가 많이 옵니다.” 율리우스의 공동 오너 잉가 크리거는 “그뿐 아니라 이곳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도 우리가 가지를 어떤 식으로 조리하는지 궁금해한다”고 했다. 팬데믹에도 문을 연 이곳은 맞은편 미쉐린 레스토랑 ‘에른스트’와 같은 계열사로, 포츠담 인근 시장과 주변 농가에서 공수한 재료를 요리로 탄생시킨다. 눈앞에서 신선한 라비올리 반죽 위에 페타 치즈와 가지로 속을 채우는 동안 스피커에서는 엘킨 앤 넬슨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프렌츨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에 있는 ‘카페 프리다’는 음악을 크게 틀기는 하지만 음식에는 진중한 곳이다. 농장 파트너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이곳의 메뉴판에는 ’Fuck industrial agriculture’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맛에 진심을 다하는 건 미쉐린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주문 제작한 화이트 도자기를 사용하는 ‘프리즘’은 최상의 와인 맛을 위해 힘을 쏟는다. 벤 모셰 셰프가 요리를 선보이는 동안 그의 아내 재클린 로렌츠는 유대 언덕에서 공수한 최신 와인을 들고 홀 여기저기를 바삐 돌아다닌다. 이곳에서는 최근 베를린에서 이스라엘 커뮤니티와 함께 급부상 중인 이스라엘 음식 문화도 접할 수 있다. “색다른 레반트 요리를 시도하는 중이에요. 정통을 고집하기보다는 재료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요.” 벤 모셰가 스위트브레드를 곁들인 예멘식 플랫브레드와 이스라엘 캐비아와 망고를 넣은 무사칸 도넛을 내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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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 FRANZ GRUNEWALD
- 글
- RICK JORD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