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현우 |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3, 4회는 ‘영수’의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그 영수.
어려운 역할을 하셨네요. 소설을 보면 영수를 좋아하기 어렵죠.
촬영하면서 감독님,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도 영수의 그런 장면을 할 때마다 “나쁜 새끼” 그러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친구가 비호감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할 수는 없으니까 최대한 그 임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박상영 작가는 영수를 두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외롭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나요?
영수를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영수는 자기 혐오가 있는 사람이죠. 언젠가는 당연히 영수도 사랑을 찾을 거예요. 영이와의 관계로 나아지지 않았을까? 더 나아지면 좋겠어요. 고영도 어떤 순간에는 분명히 영수인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영수도 살면서 언젠가 또 다른 영수를 만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거군요?
누구에게나 다 필연적으로 고영인 순간이 있고, 영수였던 순간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것처럼 영수도 언젠가는 고영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이 작품을 함께하게 되었나요?
전에 허진호 감독님과 <인간실격>을 했어요. 따로 연락드리면서 지내진 않았는데, 이번에 갑자기 연락하셔서 대본을 주셨죠. 첫 번째는 그냥 허진호 감독님의 부름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이런 작품을 좀 기다렸거든요. 되게 원했어요. 그래서 대본을 보니까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당장에 이 영수란 인물이 나쁜 거는 잘 보이지 않고 그냥 너무 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다, 나 영수 진짜 잘할 수 있다. 피디님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며 합류하게 됐습니다.
영수를 연기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뭐였어요?
소설 속에는 서른여덟, 극 중에서는 서른여섯이에요. 그래도 저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죠. 영수는 명문대 운동권 출신인데, 아무래도 운동권이라는 걸 겪지 않은 세대다 보니 그 부분을 많이 찾아봐야 했어요. 저는 작가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이 인물의 어떤 게 너무 설득이 안 되어서 만나보고 싶었어요.
어떤 부분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왜 이렇게 번복하는 선택을 하는 거지? 왜 그러는 거지? 작가님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다 보니 고민하면서 이유를 찾았죠.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저는 영수가 아무리 비호감이라도 영수에게 연민이 있어요. 영이를 만나는 게 제일 비겁한 지점인데, 그것도 본인이 제일 괴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고영을 연기한 윤수 씨와의 호흡은 어땠어요?
저희가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짧지만 거의 2주 동안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쳤어요. 그때 엄청 친해졌죠. 드라마에서는 테이블 작업을 한 번도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가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영이는 자기가 먼저 영수를 꼬여냈다고 호언장담 하던데요.
영수를요? 반반이지 않을까 합니다. 영수는 이미 무의식중에 영이가 마음에 들었던 건 거죠. 영이 또한 반응이 오니까 이 나쁜 놈이 그런 게 아닌가. 저희끼리 정의한 영수는 ‘집에서만 잘해주는 놈’이었는데요. 아마 항상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영이와 영수의 사건이 벌어지는 올림픽공원에서도 촬영했나요?
맞아요. 첫 촬영이 그거였어요.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나자마자 영이한테 막 화를 내는 장면을 찍어야 하고. 또 저녁에도 되게 중요한 장면이 있었고요.
현우 씨에게 서울의 표상 같은 동네는 어딘가요?
가장 재미있게 보내는 때가 대학 시절이잖아요. 제가 세종대를 나와서 아무래도 건대 입구 쪽과 화양동이 저한테는 서울 같아요.
실제로 연애할 때는 어떤 모습인가요?
어릴 적 사랑은 너무 낭만적인 것. 지금은 현실. 어렸을 때는 나를 모르고 이 사람밖에 안 보고 연애를 하잖아요. 이제 나이 들면서 나를 알게 되니까 연애를 안 해도 되지 않나 해요. 그런 게 현실이겠죠.
영수의 에피소드를 맡은 허진호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어요?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아이디어 내시는 걸 좋아하세요. 대사도 갑자기 삭제하시거나 다시 생기고, 대본에 없던 장면도 생겨요. 이태원에 되게 긴 길이 있잖아요? 갑자기 영수랑 영이 둘이 달려가보라고 하셨는데, 거기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숨겨두고 저랑 윤수가 뛰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몇 분이 알아봐주셔서 막 이름 부르시고.(웃음) 통제도 전혀 없고 그렇게 리얼로 찍으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 <대도시의 사랑법>을 찍고 있구나…!
그런 촬영이 한 달 만에 끝났을 때는 아쉬웠겠군요?
엄청 아쉬웠어요. 이제야 이 인물에 푹 젖어들었는데 끝이라고 하네, 이런 느낌. 이 작품이 제게는 매체 작품으로는 첫 진한 멜로고, 첫 키스신도 있던 작품이고….
그 모든 것을 윤수 씨와 함께했군요.
윤수가 되게 잘 챙겨줬어요. 조용히 가글 가져와서 “형, 이거 먹고 해” 챙겨주고.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저녁에 저를 만나는데 낮에 뭔가 키스신이 있으면“형, 나 오늘 누구랑 키스하고 왔어” 그러는데, 은연중에 이상한 질투도 좀 느끼고. 말도 안 되게.(웃음)
하하, 진심으로 몰입했네요.
진짜 윤수한테 몰입하려고 작품하는 동안 남윤수만 봤어요. 진짜 남윤수만 검색하고, 남윤수 뭐 하는 놈인지 찾아보고, 남윤수만 생각하고, 제 꿈에도 나올 정도로. 진짜로, 정말로 저도 제가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니까 이만큼이나 절실하게, 이 역할을 너무 잘하고 싶었어요.
한동안 ‘남윤수 덕후’가 됐군요. 그만큼 그를 잘 알게 되었나요?
근데 모든 걸 알지 못하겠더라고요. 저 친구가 실제로는 아주 영수 같은! 제 카톡 답장을 몇 개월째 안 한 적도 있어요, 저 놈이.
아까 얼마나 현우 씨를 걱정했는데요. 저기 있는 세 명은 서로 지금 처음 봐서 너무 어색해하고 있다고요.
사실이에요. 다들 지금 윤수만 찾아요. 그래서 좀 덜 찾으려고요.
윤수 씨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이 있겠죠
아직 그래도 덜 빠져나왔나 봐요. 윤수만 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 진호은 |
<대도시의 사랑법>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퀴어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작품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원작이 너무 사랑받은 소설이잖아요? 거기에 영화감독님 네 분이 연출하신다고 해서 오디션을 봤습니다. 규호 역에 너무 욕심이 났어요. 오디션 보면서도 꾸준히 원작을 읽었는데, 오디션이 잘될지 몰랐어요.
원하던 작품과 배역을 스스로 따냈네요.
영상 찍어서 하는 1차 오디션부터 봤거든요. 오디션장에서부터 말씀드렸어요. 저는 규호가 하고 싶다. 그런데 그걸 홍지영 감독님이 되게 좋아하셨어요. 당시에는 어느 파트를 어느 감독님이 맡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오디션장에 모든 감독님이 다 들어와 계셨어요. 박상영 작가님도 계셨고요.
규호는 중요한 인물이죠. 소설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또 포스터에 나온 가장 중요한 대사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도 규호가 한 말이죠.
규호를 할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규호가 이 극에 끼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서 잘 만들고 싶었고요. 제 에피소드 연출을 맡은 홍지영 감독님의 전작도 너무 좋아했거든요. 감독님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고.
규호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맘에 들었어요?
굳세게 흔들리지 않는,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니까. 또 영과는 비슷한 듯하면서 또 다른 지점이 있고, 그러면서 보여주는 서로의 입체감도 있고요.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약간 양아치 같은 얼굴이지만 성실한 사람이죠.
그 외모가 제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박상영 작가님한테 촬영 전에 많이 여쭤봤어요. 외면적인 모습도 그렇고 내면적인 모습도 그렇고, 소설 속에 나오는 규호와 거의 동일시하게 가야 하나 다르게 가야 하나. 작가님은 제 매력 그대로 가져가기를 원하셨죠. 처음 작가님을 만났을 때 다른 분들 회의 끝나길 기다리면서 사무실에 둘이 1시간 정도 되게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방에 같이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많이 여쭤보고 사이도 돈독해진 것 같아요.
규호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어요?
감독님 되게 러블리하시거든요. 세밀하시고 섬세하시고, 작은 것 하나도 박상영 작가님의 색을 온전히 가져가시면서 본인의 색도 과감히 투여하는 분이시죠. 그래서 영이와 규호의 이야기가 서정적인 멜로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영과 규호의 이야기가 청춘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영과 규호는 가장 연애다운 연애를 하잖아요. 결국엔 영이가 잊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는 규호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대본이 너무 슬퍼요. 포스터에 나온 장면을 찍는 날도 슬펐거든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대본 보거나 관련된 영상을 보면 눈물이 나요.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나요?
그건 아닌데 어렴풋이 잊히지 않는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거의 석 달을 함께해서 그런가? 저는 7, 8부까지 나오니까요.
끝날 때 좀 섭섭했겠어요. 윤수 씨와 호흡은 어땠나요?
촬영이 끝날 땐 너무 슬펐어요. 윤수 형이 고영을 맡아줘서 좋았어요. 하면서 점점 맞춰간 부분도 있지만 처음부터 서로 너무 잘 맞았고. 형이 1~4부를 찍으면서 느낀 부분도 반영되었고요. 형이 정말 배려를 많이 해줬어요.
오늘 이렇게 영을 사랑한 남자들이 모였습니다. 전부는 아닌 것 같네요. 듣기로는 윤수 씨는 수많은 남자와 키스했다고.
맞아요. 누가 제일 좋았대요? 그런 얘기는 안 하던가요? 저한테도 한 15명하고 키스한 거 같다고 하고, 저는 새삼 대단하다, 한 작품에서 한 사람과 15번도 아니고 15명과 한 번씩 했다는 게….
그러니까 ‘마성의 영’인지도요. 영이는 자기가 남규, 영수, 규호를 다 유혹했다고 하던데요?
자기가요? 규호는 그렇다고 넘어갈 사람이 절대 아니죠.(웃음) 규호가 영이를 맘에 들어한 거예요. 배가 불렀구먼!
박상영 작가는 규호를 두고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규호는 사실 영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그게 규호의 매력이에요. 그러면서 또 상처받고 성장하고 상대를 치유해주겠죠. 사람마다 내가 뿜어낼 수 있는 어떤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이를 만날 때는 또 영이한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규호라 여겼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래가 걱정이 안 됩니다. 어떻게 지냈을 것 같나요, 규호는?
저도 규호의 미래를 생각해보거든요. 7, 8화에서 규호의 행동을 봐도 건설적이면서 현실적인 사람이구나. 너무 규호답구나.
규호는 영이가 자길 잡아주길 바랐을까요?
규호는 딱 반반이었을 것 같아요. 좀 더 잡아주길 바란 것 같기도 하고. 영의 입장도 너무 이해돼서 더 마음이 아프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실제로는 연애할 때는 어떤 스타일이에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사실 저도 잘 모르는데, 규호를 연기하면서 좀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규호를 연기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라는 대사가 너무 어려웠어요. 소설에서는 저희가 글로 접하잖아요. 근데 이걸 영상화했을 때는 배우가 실현시켜줘야 하니까. 너무 어려웠어요. “넌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도요. 너무 잘해내고 싶어서 감독님과도 여러 버전으로 상의하고 찍었거든요. 나오면 확인해주세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떤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시선 속에서 이 작품이 나오게 될 텐데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꾸준히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캐스팅이 알려지면서 ‘응원합니다’라는 디엠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작품이 세상에 필요했는데 너무 고맙다는 내용도요. 물론 야유하는 이모지와 우웩하는 이모지도 많이 받았고요. 윤수 형이 제일 많이 받았겠죠, 사실.
호은 씨에게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저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제 20대의 대표작이 되면 좋겠어요. 제가 스물다섯에 찍은 작품이었고. 20대 중반의 기로에 섰을 때, 너무 좋은 이야기를 함께했다고 생각해요. 저희 드라마 오픈 당일에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저 티빙 1등 하고 싶어요. 드라마를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진짜 진짜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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