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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MY LIFE / 장마리아

2024.10.06이재윤

자신만의 솔직한 이야기를 그리는 장마리아의 세상은 온통 빛으로 가득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위로받고 영감을 얻으며 삶의 영역을 확장한다. 

장흥 작업실에 있는 작업대 위에서 작품을 수정하는 장마리아.
작업실 한편에 놓여 있는 작품들.
다양한 크기의 붓은 작가의 작업을 완성하는 소중한 도구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작업 도구들.
작업실 천장에 난 작은 창으로 빛이 스며든다.

9월의 서울은 아트로 뜨거웠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작가로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
나는 흐름을 잘 탄 작가다. 2012년에 한쪽 눈이 안 보이면서 회색조의 어두운 작품만 그리다 2019년부터 파스텔 톤의 ‘In Between – Spring’ 시리즈를 그렸다.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했을 때 마침 아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져 주목받게 됐다. 모두가 아트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즐겁다.

색에 다시 집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평소 색 쓰는 걸 즐겨서 2012년 이전까지도 주로 색 작업을 했다. 2016년 봄, 우연히 찾은 벚꽃 축제에서 흐드러지는 분홍빛 꽃잎을 보며 뭔가 깨달았던 것 같다. 스스로를 우울과 어둠에 가두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한 언니가 다시 화사해진 작품을 보고는 ‘네 마음에도 봄이 왔구나’ 하는데, 자신감이 들더라.

말 한마디가 삶을 바꿔놨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작가에게 어떻게 작용하나?
많은 사람이 관계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 관계는 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는 적당한 틈이 있을 때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다. 너무 가까워지거나 너무 멀어지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절한 시점에 맺고 끊는 건강한 관계가 낳는 긍정과 희망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철사를 활용한 신작 역시 관계의 틈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했다.

개념과 재료가 만나 작품이 되는 과정 중 특별히 애쓰는 지점이 있나?
작품의 주제나 재료는 계획적으로 찾아 나서기보다 우연적으로 발견하는 편이다. 철사도 그렇게 찾은 재료다. 다만 이 좋은 요소를 어떻게 요리할지 심도 있게 고민한다. 작품의 보존성이나 표현 방식, 색감 등을 연구하며 계획적으로 작품화한다. 작품이 깨지는 걸 방지하려고 기본 재료인 시멘트에 모래와 젤스톤을 더한 것 역시 완성도 높은 작품을 구현하기 위한 연구 결과다.

삶의 경험이 작품에 가득 스며 있는 듯하다. 작품과 삶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하나?
작품에서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얘기를 솔직히 해야 보는 사람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캔버스에 천을 씌우는 것부터 작업에 필요한 모든 일을 직접 한다. 작품이 곧 나다.


팔라초 펜디 서울 4층에 전시한 작품 앞에 선 장마리아. 드레스와 롱 부츠, 네크리스는 모두 펜디(Fendi).
팔라초 펜디 서울 4층에서 진행한 장마리아의 개인전 전경.
장마리아의 작업실에 놓은 작품.
장마리아가 편안한 차림으로 작품 앞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화이트 재킷은 배리(Barrie). 쇼츠는 나일로라(Nylora). 스니커즈는 아식스 스포츠스타일(Asics Sportstyle).
패브릭을 활용한 작품이 작업실 벽면에 걸려 있다.

작품은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자기 객관화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림 한 점 팔리지 않던 시절, 예술계에서 내 위치를 시험해보고자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들고 뉴욕 첼시로 향했다. 하루 종일 크고 작은 갤러리를 돌면서 리뷰를 요청했는데,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보는 앞에서 내 포트폴리오를 쓰레기통에 넣기도 했다. 겨우 한 갤러리에서 리뷰를 받았는데,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작가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말에 놀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찾은 첼시에서 그림 몇 점이 팔리는 걸 보고,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나’를 작품에 담으며 만나는 몰두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나?
힙합을 좋아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작업을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6시간, 8시간이 지나야 음악 소리가 서서히 들려온다. 명상할 때도 집중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집중을 통해 영적인 세계와 맞닿는 과정이 작품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겪지 않은 작업은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작가 입장에서 웰니스적 라이프스타일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일상적 삶과 작업하는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 작가에게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작업이기 때문에 작업을 오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잘 먹고, 운동으로 체력도 키우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교류하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릴 때 작업의 질도 높아진다. 필라테스와 마사지를 꾸준히 받으며 작업 과정에서 사용되는 몸의 근육을 풀고 단련한다.

두 가지 삶의 균형이 깨질 때는 어떻게 대처하나? 노하우가 있다면?
되도록 물리적 공간을 분리하려고 한다. 혼자 작업하며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주변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봐 작업을 밖으로 끌고 나오지 않는 편이다. 자연과 가까운 작업실 테라스에 앉아 ‘멍산’을 하고,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도 관찰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서울에 와서는 작업 걱정을 잊고 좋은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나누고 자주 웃는다. 이런 루틴은 내 작업과 삶을 지속가능하게 한다.

작업 외에 몰두하는 취미가 있나?
위스키에 푹 빠졌다. 글렌피딕 12년산이 나의 ‘최애’. 그 외 삶에 도움을 주는 명언, 글귀를 수집하길 즐긴다.

최근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예술을 통해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슬픔을 쏟아내던 시절, 오픈 스튜디오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더라.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작품을 통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에서 느낀 좌절감을 작품에 다 쏟아냈기 때문에 지금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작품을 통해 많은 감정이 해소되고 다시 채워질 수 있다.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느끼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탈리아에 있는 레지던스에 몇 달간 있을 예정이다. 10~15명 정도 머무는 소규모 레지던스로,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영감도 나누며 시야를 넓힐 좋은 기회가 될 거다.

    포토그래퍼
    오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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