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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S 패션위크 현장, 그곳에선 무슨 일이? – 파리편

2024.10.18김지은, 최정윤, 이유림

‘패션인’들의 열기가 들끓었던 그곳. 2025 S/S 패션위크 현장으로 초대한다.

트렁크의 끝없는 진화

루이 비통의 아이코닉한 트렁크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모했고, 특별한 순간에 늘 함께했다. 2026년 오픈 예정인 루이 비통 호텔의 비밀스러운 건설 현장을 막아놓은 것도 거대한 트렁크 파사드고, 2024 파리 올림픽 및 패럴림픽에서 올림픽 성화를 보관한 곳도 루이 비통 트렁크다. 최근에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퍼렐 윌리엄스가 손잡고 트렁크를 활용해 침대를 만들기도 했는데, 급기야 2025 S/S 루이 비통 쇼에서는 런웨이를 온통 트렁크로 장식했다. ‘소프트 파워’라는 주제 아래 하우스 장인정신의 전통과 예술을 보여주려고 한 쇼를 위해 웅장하지만 섬세하고, 투박한 듯 화려함을 자랑하는 상반된 가치를 지닌 트렁크가 주제를 설명하기에 적격이었던 것. 수많은 트렁크로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장식한 런웨이는 분명 끝이 있지만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위를 걷는 매혹적인 쇼피스를 입은 모델의 역동적 워킹 역시 끝없는 미래로 향하듯 신비로웠다.


THE TRUTHLESS TIMES

미우미우 쇼장에서는 종이 신문이 컨베이어벨트 위를 쉼없이 이동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 신문의 이름은 <The Truthless Times>로, ‘진실이 없는 시대’다. 이는 아티스트 고쉬카 마추가가 진실, 허위 정보, 조작 등 정보 과잉이 초래한 현시대의 허점을 탐구하려고 만든 장치.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사회, 지나친 자극과 필터링되지 않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재에 대한 대책은 더욱 명료하고 정교한 의상과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담백한 스타일링을 이뤘다.


FAMILIAR BUT DISPARATE

아크네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의 “전통적인 가정적 코드를 패션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필라델피아 기반의 시각예술가 조나단 린든 체이스가 자신의 설치품으로 의미를 더했다. 소파, 램프, 액자 같은 가정용품에 흑인의 주체성을 비롯한 퀴어성 등의 주제를 버무려 혼재된, 그러나 포용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 결과적으로 그들이 해석한 ‘가정적인 것’이란, 곧 익숙하지만 이질적인, 왜곡된 형상의 집합이다.


아주 특별한 상영회

메종 마르지엘라는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새 컬렉션을 발표하는 대신 다큐멘터리 <나이트호크>를 상영했다. 처음에는 존 갈리아노가 지난 1월 선보인 쿠튀르 쇼의 작업 비하인드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컬렉션의 설명에 이어 현장 퍼포먼스, 그리고 지난 쿠튀르 쇼가 상영되며 절정에 이르렀는데, 끝나는 순간까지 몰입감이 대단했다. 마치 굵직한 스릴러 한 편을 시청한 느낌이 들어 문득 쿠튀르를 직접 본 이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GANNI
VALENTINO

WELCOME TO PARIS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시즌 파리에서 가장 큰 기대와 주목을 받은 쇼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발렌티노다.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엘파올로 피촐리와 성향이 다른 그의 영입으로 온 패션계가 들썩였다. 하우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섣부른 판단을 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는 작가 테오필 고티에의 말을 빌려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라 설명하며 어떤 논리에도 구애받지 않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구찌 때보다 한층 섬세해진 로맨틱한 철학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귀환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편 지속가능한 코펜하겐 패션위크의 선봉장이던 가니가 이번 시즌 최초로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했다. 쇼장 입구에 거대한 재활용 알루미늄 가마솥을 설치해 신기술 개발 시연을 펼친 가니.
“우리는 ‘가니 걸’의 직관적 자신감과 역동적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 컬렉션은 용기, 권한 부여, 연결에 관한 것이며, 디자인과 혁신 모두에서 경계를 넓힌다. 나는 책임감 있는 제작에 열정을 갖고 임하며, ‘Fabrics of the Future’ 프로그램을 마법처럼 느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테 레프스트럽의 의지가 확연히 느껴진다. 파리에도 지속가능성의 바람이 크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SUSTAINABLE COUTURE

제르마니에는 혁신적이고 헌신적인 연구로 업사이클링 패션의 발전을 돕는 친환경 패션 하우스다. 이번 컬렉션은 업사이클의 창의성을 기념하며 젊은 인재를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지속가능한 소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지속가능한 패션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귀한 사명이라고 밝힌 케빈 제르마니에. 이번 컬렉션은 별자리에서 영감 받아 별자리의 고유한 본질을 표현한다.


(왼쪽부터) 윌렘 데포, 지지 하디드, 민니.

런웨이에서 보니 더 반가워!

예상치 못한 인물을 런웨이에서 마주하는 일은 짜릿한 경험이다. 발렌시아가 런웨이에 선 트래비스 스콧과 지지 하디드, 미우미우의 민니와 힐러리 스웽크, 윌렘 데포(그 밖에 미우미우는 창의적 직업을 지닌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런웨이에 올렸다), 컨셉코리아 므아므와 리이의 무대를 장식한 셔누와 아이린, 또 정호연이 프런트로로 자리를 바꾸고 그 뒤를 이어 루이 비통 런웨이에 선 모델 민지까지. 각자의 개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런웨이. 그 걸음걸음이 참 반갑다.


Kylie Jenner on the runway at Coperni RTW Spring 2025 as part of Paris Ready to Wear Fashion Week held at Disneyland Paris on October 1, 2024 in Paris, France. (Photo by River Callaway/WWD via Getty Images)

RUNWAY EVERYWHERE IN PARIS

2024 파리 올림픽이 파리 곳곳을 무대로 경기를 진행했듯이, 패션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장소 선정에는 크고 작은 이슈가 따랐다. 지금도 파리 올림픽의 설치물들이 잔재로 남아 주요 도로를 통제해 교통이 매우 혼잡했다는 것, 또 그렇기에 시내가 아닌 외곽에서 진행하는 쇼가 많아 동선 정리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새로운 곳을 가볼 기회도 생겼다. 로댕 미술관의 디올, 루브르박물관 정원의 루이 비통, 국립헌병대 내 승마장의 에르메스, 그리고 디즈니랜드의 코페르니까지. 그중 디즈니 성에서 걸어 나오는 카일리 제너 공주(?)의 등장과 그 후로 이어진 불꽃놀이는 현장 분위기를 단번에 압도했다.


BACK TO GRAND PALAIS

샤넬이 오랜 시간 함께한 그랑팔레로 돌아왔고, 버지니 비아르의 빈자리는 ‘비상(飛翔)’이라는 주제 아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헌정으로 채웠다. 그랑팔레 중심에는 개방형의 거대한 새장이 유리 돔과 조화를 이루며 자리해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이는 과거에 한 재봉사가 가브리엘 샤넬에게 선물한 새 한 쌍이 들어 있던 새장을 1990년대 바네사 파라디가 출연한 광고로 재해석한 것을 연상시킨다. 피날레 무렵 새장 안에서 거대한 그네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인 라일리 키오. 샤넬 앰배서더이기도 한 그는 프린스의 ‘When Doves Cry’를 부르며 피날레를 함께했다. 이 ‘비상’이 현재 거론되는 많은 이들 가운데 누구와 새로운 여정을 하게 될지. 다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카디비가 ‘카디비하다’

프런트로에 등장하기만 하면 취재 열기를 독점하는 카디비는 매 쇼마다 해당 쇼에 어울리는 헤어 &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변신하고 나타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구조적이고 관능적인 드레스에 사선 앞머리 스타일로 시원한 시선과 맞바꾼 뮈글러 룩이 단연 압권.


CHRISTIAN LOUBOUTIN
GOLDEN GOOSE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크리스찬 루부탱과 감독 데이비드 라샤펠, 안무가 블랑카 리가 뭉친 결과물은 ‘폭발적 시너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파리의 상징적 수영장인 피신 몰리토르에서 새로운 아이코닉 스타일인 미스 지(Miss Z) 펌프스를 신은 프랑스 올림픽 수영 국가 대표 팀의 싱크로나이즈드 댄스! 거대한 루부탱 구두로 만든 미끄럼틀에서 풀로 미끄러지는 행렬은 전율 그 이상. 나중에는 크리스찬 루부탱도 직접 미끄럼틀로 뛰어들어 공연을 만끽했다.
한편, 골든구스는 연극과 패션쇼가 어우러진 창의적 퍼포먼스로 하우스의 비전을 전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담은 연극. 배우들이 착용한 1990년대 스타일의 포티투(Forty2) 스니커즈는 아티잔의 정교한 수작업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미학을 선사한다.


Shhh…!

매 시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머릿속에 오래 각인되는 쇼를 연출하는 김해김. 이번에는 전 세계 몽상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일상적 침실 아이템을 쿠튀르 작품으로 승화했다. 그뿐 아니라 피날레 이후 모든 모델이 잠에 빠진 듯 스르르 서로 기대어 앉거나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인태가 마치 자는 모델을 깨우지 말라는 듯 손가락으로 ‘쉿’ 제스처를 취하며 등장해 정적 속 인상적인 마지막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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