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남성까지 사로잡은 뷰티의 매력은?

그루밍을 넘어 셰이딩, 블러셔까지! 요즘 남성들의 뷰티 이야기. 

이제는 외모도 스펙이다?

“너 얼굴에 뭐 발랐어? 너무 과해.” 내가 불과 2년 전까지 친구들에게 들었던 소리다. 그러던 그들이 요즘엔 ‘자신도 해봐야겠다’며 제품 정보를 물어본다. <나 혼자 산다>에는 기안84가 선스틱을 바르고 컨실러로 트러블을 감추는 모습이 자연스레 등장하며 화제가 됐다. 유튜브나 틱톡에는 남성 뷰린이를 위한 콘텐츠가 널려 있다. 뷰티에 대한 남성의 인식이 변한 거다. 채용 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Z세대 145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의 80%는 외모가 스펙이라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취업 시 합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질문에 여성의 최다 득표가 ‘분위기/이미지’인 반면, 남성은 ‘얼굴(이목구비)’이 차지한 것. 또 남성의 42%가 취업 전 외모 관리 비용으로 10만원은 기본으로 사용하고, 7%는 100만원 이상을 지출할 정도로 가꾸기에 관심을 보인다.

군대 속 맨즈 뷰티

젠지 남성의 뷰티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건 바로 군대가 아닐까? 모든 군부대엔 마트(이하 PX)가 존재한다. PX 안에는 화장품을 진열한 코너가 있는데, 웬만한 뷰티 카테고리를 다 갖췄다. 최근 현역인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것은 과거에 비해 PX 내 뷰티 브랜드와 제품, 카테고리까지 다양해졌다는 사실.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라운드랩, 이니스프리, 아이소이, 다슈 등의 브랜드 제품을 PX에서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내가 군복무를 하던 2016~2018년 당시만 해도 스킨케어 제품은 토너, 올인원, 크림이 끝이었다. 이젠 마스크팩, 세럼, 앰풀, 아이 크림까지 판매하니 부대 안에서도 꼼꼼한 피부 관리가 가능해진 것.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는 군대에서도 베이스 제품을 바른다는 것이다. 맨즈 뷰티의 구멍일 듯한 PX에서 톤업 선크림, 톤업 크림, BB 크림을 판매하면서부터 말이다.

메이크업이 좋은 남성들

이처럼 요즘 젠지 남성들은 거리낌 없이 메이크업을 시도한다. 이런 현상은 뷰티 브랜드가 남성을 위한 컬러 립밤, 베이스, 아이 메이크업 제품을 기본으로 갖추는 계기가 됐다. 점차 제품군이 비슷해지는 상황에서 브랜드는 퍼스널 컬러나 MLBB를 내세우며 차별화 포인트를 두기도 한다. 그렇다고 남성이 무조건 옴므 브랜드의 메이크업 제품을 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욘드 그루밍’ ‘대다모 댄디’ 등 남성 뷰티 커뮤니티의 제품 추천 글을 확인하면 삐아, 롬앤, 에스쁘아 등 K-메이크업 브랜드의 이름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글로벌이 아닌 K-뷰티 브랜드 제품이 대다수일까? 남성이 K-메이크업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글로벌 제품은 가격대가 있는 편이라 입문용으로 쓰기엔 부담스러워.” 친구들에게 K-메이크업 브랜드 제품을 쓰는 이유를 물어보니 10명 중 8명에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K-메이크업 브랜드가 접근성이 좋은 올리브영에 입점한 것도 한몫한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멤버 오드는 올리브영에 방문해 블러셔를 하나하나 테스트하고 구입한 후기를 팬 유료 소통 플랫폼 ‘버블’ 메시지로 공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20대 남성에게 메이크업 제품 쇼핑은 더 이상 유별나지 않은 현상이다. 그리고 피부 보정만으로 그들의 메이크업이 끝나지 않는다. 최근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프로팀이 발표한 2024 F/W 맨즈 메이크업 트렌드에는 ‘블러셔’가 있다. 이를 증명하듯 요즘 남자 아이돌의 사진을 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블러셔다. 눈 밑, 콧잔등, 세로로 칠하기 등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틱톡에서 남성 블러셔 색상 추천, 남성 블러셔 사용 팁 등이 조회수 8만을 훌쩍 넘기며 인기를 입증했다. 대학생 사이에선 장원영 블러셔인 어뮤즈의 ‘립 앤 치크 헬시 밤’이 인기다. 라카의 ‘러브 실크 블러쉬’도 애용템으로 꼽히는데, 두 제품 모두 도구가 필요 없고 원하는 양만큼 조절하면서 쉽게 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올무’도 주목하는 남성 뷰티

무신사 스탠다드와 올리브영은 맨즈 뷰티에서도 전쟁을 하고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의 남성 뷰티 브랜드 매출액이 전년 대비 122% 성장했다. 매출 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은 8월 말 무신사 스탠다드에서 단독 론칭한 ‘라네즈XT1 립 슬리핑 마스크’이다. 20대 남성 사이에서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팀 T1과 컬래버레이션한 제품으로 준비한 2700개 세트가 2분 20초 만에 품절됐고 2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9월 성수동에서 열린 ‘무신사 뷰티 페스타’에는 페스타 최초로 맨즈존이 꾸려졌다. 방문 고객이 “작년까진 남자친구가 매우 지루해 보였는데, 올해는 맨즈존이 생겨서 좋았다”는 후기를 남길 만큼 남성이 맨즈존에 방문하는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올리브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남성 회원 매출액은 연평균 30%씩 성장했다. 애플리케이션 설치 비율도 2022년 대비 110% 증가했다. 올리브영 정기 세일 달인 3, 6, 9월에는 남성의 이용률이 상승하기도 한다. 9월 올리브영은 홍대타운에 질레트, 오브제, 그라펜 등 다섯 브랜드와 협업한 맨즈 뷰티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제품 체험과 구매, 포토존, 게임 등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갖춰 젠지들이 찾게 한 것. 총 10일간 열린 팝업스토어에 1만2000여 명이 방문했고, 그중 80%가 남성이였다. 제품을 리뉴얼하거나 남성 라인을 론칭하는 브랜드도 많다. 젠지를 겨냥한 숏폼 마케팅을 하거나, 감각적인 남성 메이크업 브랜드가 등장하며 경쟁도 치열해졌다. 다양해진 맨즈 제품, 서스럼 없이 메이크업을 즐기는 젠지 남성들의 모습 등 맨즈 뷰티의 성장이 기대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맨즈 뷰티의 호황이 단편적 현상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굳건히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포토그래퍼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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