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토스트아웃’?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 지금 내 마음이 타 들어가는 중. #토스트아웃

“어떤 날엔 아침에 눈을 뜨기도 싫어.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그저 일하기 위해서인 것 같잖아.” 오랜만에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방금 전까지 웃던 친구가 마음속에 이런 슬픔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행복한 직장인이 몇이나 있겠느냐며 위로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하며 깊은 씁쓸함을 느꼈다. 오직 일만을 위해 깨어나고 먹고사는 우리네 삶이 너무 가여웠다. 몇 개월 뒤 만난 그는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번아웃이 아니라 토스트아웃이었나 봐. 여름휴가에서 끝내주는 와인을 마시고 왔더니 말끔하게 괜찮아진 거 있지?” ‘어딜 다녀왔기에’ ‘무슨 와인을 마셨기에’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가장 먼저 물어본 건 이거다. “토스트아웃이 뭔데?”

이른바 ‘갓생’이 주목받는 시대.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대표적 예가 바로 ‘번아웃(Burn-out)’. 번아웃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갑자기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걸 뜻한다. 번아웃이 찾아오면 심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고 일로부터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일상적 증후군 중 하나로 승인했고, 일부 유럽 국가는 이로 인한 유급 병가까지 허용했다. 정식 진단명이나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직업 관련 증상’의 징후로 인정받은 셈이다. ‘토스트아웃(Toast-out)’도 번아웃과 유사하다. 다만 모든 에너지가 고갈될 때 발생하는 번아웃과 달리 사전에 나타나는 토스트아웃은 지친 마음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사전 경고 신호에 가깝다.

토스트아웃은 주어진 업무는 유능하게 해내지만, 마음속으로는 큰 의욕이 없고 상당한 무력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뜻한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빵이 다른 사람에게는 완벽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정작 타 들어가는 빵(자기 자신)은 에너지가 고갈되고 지쳤다는 의미다. 여기까진 번아웃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업무에 대한 생산성이 떨어지며 결근이나 퇴사 등 명확한 징후로 나타나는 번아웃과 달리 토스트아웃은 업무를 유능하게, 심지어 효율적으로 계속 수행한다는 것. 같은마음정신의학과 조성우 원장은 그렇기 때문에 “토스트아웃이 번아웃보다 더 위험합니다”라고 말한다. 겉으론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하기에 동료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도 쉽게 눈치채지 못해서다. 증상에 대한 주변 인식이 부족하니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어렵다.

토스트아웃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진단명, 진단 기준은 없지만 자각할 만한 증상으로는 하고자 하는 의욕과 몰입하는 열정의 감소, 퇴근 후 극심한 피로감, 기운 없음, 집중력 저하, 사소한 문제에 내는 짜증 같은 부정적 태도, 사회적 관계에서의 소외감, 불면, 우울함이나 불안함 같은 정서적 변화 등 수없이 많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이 다르듯 토스트아웃에 대한 원인 역시 다양하다. 우선 토스트아웃을 경험한 사람은 생산성만 매우 중시하고 개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등한시하는 환경에 놓여 있을 확률이 높다. 높은 수준의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정서적 건강을 희생하더라도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일부 토스트아웃 경험자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지적한다. 성취감이나 성공을 위해 자신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하면서 밀어붙이니 내면이 지칠 수밖에 없다는 것. 

토스트아웃을 관리하고 예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과 정신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는 거다. 정신 건강에 대한 열린 대화를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생활용 ‘나’에서 벗어나 진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사회적으론 직원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을 때 핀잔을 주거나 무시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갖춰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정신적으로 충만함을 느끼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와 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건강한 업무와 삶이 균형을 이룬다. 마음챙김이나 명상 등 본인에게 잘 맞는 스트레스 관리법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야 개인 내면의 공허함을 떨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자. 생산성에 대한 적정 체력과 에너지를 써야 할 때를 위해 아끼는 거다.

최근 SNS엔 힘든 하루를 보낸 ‘짠내’ 나는 상황을 ‘햄 토스트’, 체력이 떨어져 흐물흐물한 상태를 ‘양상추 토스트’, 졸려서 녹아내릴 것 같은 것을 ‘버터 토스트’로 표현하며, 탈진하기 전 본인의 상태를 세분화한 밈(Meme)으로 가득하다. 결코 유머로 소비할 만한 가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성우 원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다는 건, 더 악화하기 전에 관리할 수 있음을 의미해 이런 현상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마음을 돌보기 위해선 몸부터 먼저 돌봐야 합니다”라며 몰아쳐 일하는 습관을 버리고 틈틈이 쉬는 시간을 확보하면서 시간별로 루틴을 만들길 추천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체 상태와 기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조성우 원장의 조언처럼 괜찮지 않은 것에 괜찮은 척하지 말자. 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CHECK LIST
혹시 나도 ‘토스트아웃’ 상태? 

* 체크리스트 중 3개 이상 해당하면 토스트아웃증후군이 의심된다. 

맡은 일은 잘해내지만 의욕이나 동기 부여가 없고 지루함을 느끼는 날이 많다.

퇴근 후 취미 활동에서 즐거움이나 흥미, 만족 등을 얻지 못한다. 

업무를 마치면 다른 활동 없이 바로 집에 가서 쉬고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됨을 느낀다. 

학교나 회사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다가도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가족이나 스스로에게 화를 내거나 우울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이 잘못되거나 부정적 결과를 낳으면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휴대폰 등 중요한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자주 잊고, 약속이나 마감일을 잘 까먹는다.

지치고 불안할 때도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정해진 일과대로 되지 않으면 언짢아진다.

다른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이 든다.

평판을 망치는 것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가 많다.

쉬는 날이 일하는 날보다 더 힘들다.

    포토그래퍼
    정원영
    도움말
    조성우(같은마음정신의학과 원장)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