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가 처음이라고요.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이 어때요?
오사카에 가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듯하지만 일본 감성이 더 짙은 것 같아요. 비가 내려서 걱정했는데 덕분에 더 낭만적이었어요.
조금 전 영상 인터뷰에서 감정에 따라 다이어리를 나누어 쓴다고 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일기를 쓰는 이유는 당시 제가 느낀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 연기할 때 필요한 감정을 꺼내기 위해서죠. 일기장이 2개 있는데, 한 곳에는 슬픈 감성을 담고, 다른 하나에는 행복하고 밝은 감정을 기록해요.
글을 쓰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나 봐요?
그럼요. 그래서 사소한 것도 다 기록하게 돼요. 흘러가는 찰나의 감정이라도 언젠가 연기에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빠짐없이 써놓으려고 해요.
<정년이> 속 허영서를 준비하면서는 어떤 대목을 주로 꺼내 보았어요?
최근에는 한동안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어요. 영서 역을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꺼낸 거예요. 2023년, 2020년 기록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마음이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었거든요.
영서와 같은 고민을 했네요.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나요?
완벽을 좇는 성격이 비슷해요. 완벽함이 때로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기도 하잖아요. 영서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사소하더라도 세운 목표를 꼭 이루고 싶을 때가 많아요. 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도 닮았어요.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극복하려 애쓰거든요.
비슷한 성격 탓에 오히려 영서를 연기하며 스스로 위로받기도 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완벽해지고 싶지만 완벽할 수 없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죠. 인정받고 싶은 동시에 때로는 인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마주했고요. 제가 봤을 때 영서는 한계가 없는 훌륭한 친구인데, 스스로 자꾸 한계에 갇힐까 두려워해요. 물론 이유는 영서만 알겠죠. 그 한계 속에서도 주변 사람을 통해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저 자신에게도 용기를 줬어요.
‘동료애’는 <정년이>의 또 다른 묘미죠. 무엇보다 반짝반짝한 꿈을 꾸는 모습이 참 아름답죠.
저도 그 점이 좋았어요. 어리고 서툰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너무 사랑해서 전진하는 순간을 볼 때 같이 감동받았어요. ‘나도 얘들처럼 내 직업과 꿈을 사랑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의 소중함이 더 커졌고요. 정년이와 영서가 그렇게 치고받으면서도 제일 아끼는 건 결국 ‘국극’이었거든요. 애틋했어요.
영서와 정년이를 흠뻑 빠지게 한 국극의 매력은 뭘까요?
메이크업, 의상, 소리 등 표현의 범위와 움직임이 다양해요. <춘향전>에서 보면 정년이의 방자와 영서의 방자가 부르는 노래의 음이 다 달라요. 여느 음악과 다르게 국극 악보에는 계이름이 없어서 부르는 사람마다 달라진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완벽하게 재현한 국극 무대가 화제였죠. 뿌듯한가요?
정말 걱정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시청자로서 그 무대를 보니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촬영할 때는 신경 쓸 것도, 준비할 것도 많아서 ‘우리가 멋진 걸 해냈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해외에서 더 많이 봐주면 좋겠어요.
얼마나 준비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연습했어요. 어느 날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집에 가지 말자’라고 목표를 잡아 밤새워 연습한 적도 있어요.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연습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무작정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도 느낀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겠다’보다는 ‘무작정 하면 언젠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무용 레슨을 받은 날에는 주변에 무용을 전공한 언니를 찾아가고, 소리를 배우고 발성이나 복식이 안 되면 예전에 가르침을 받은 연기 선생님이나 성악 선생님을 찾아가서 기초부터 다시 다졌어요.
매 공연 영서의 성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죠. 영서에게 공연은 성장의 변곡점이었죠?
맞아요. 그래서 공연마다 알을 깨고 나오듯 스스로 한계를 극복해 나아가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싶었어요. <춘향전>에서는 역할을 정석대로 소화하지만 어딘가 틀에 갇힌 모습을, <자명고>의 고미걸은 그때보다는 캐릭터에 개성을 더한 모습을 담으려고 했죠. 처음으로 정년이를 이기고 선 <바보와 공주> 무대에서는 ‘정년이 몫까지 후회 없이 해내야 한다’는 영서의 다짐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마지막 <쌍탑전설>은 정년이와의 로맨스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침내 정년이와 영서가 무대에서 진짜 주인공이 된 모습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극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마지막 공연 <쌍탑전설>요. 공연의 줄거리 자체가 정년이와 영서의 모습을 닮았어요. 촬영할수록 국극 단원들과도 친해지면서 <춘향전> 때보다 여유가 좀 생겼더라고요. 촬영 초반만 해도 어떻게든 잘하고 싶었거든요. 저 역시 소리, 연기, 무용, 무대 위에서의 연기가 좀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으니, <자명고> 무대를 준비하던 영서에게 정년이가 남긴 “즐겨라”는 말이 예은 씨를 향했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완벽주의적 성향이 많이 진정된 거예요. 한창 다이어리를 쓰던 시절에는 영서와 똑 닮았어요. 나를 빨리 증명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좋게 보였다면 그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었죠. ‘내 사전에 실패란 없다’는 마음으로요.
정말 그렇게 됐나요?
에이, 사람이 그럴 수는 없잖아요.(웃음) 어느 순간 다 해소되고 마음이 넓어지고 건강해졌을 때 일기장을 펼쳐 보니 귀엽더라고요. 그 시절을 거쳤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영서 역시 초반에는 이리저리 치이고 속도 좁아 보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서툴지만 뒤로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저의 성장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요즘은 연기를 온전히 즐기고 있나요?
네! 100% 확신해요. 타인의 시선에 크게 들뜨거나 무너지지 않아요. 사소한 일에 행복을 느끼고 평온해요.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도 했나요?
이건 <정년이>를 하면서 느낀 건데요, 이제 겁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더 용기 내서 자신 있게 덤벼도 되겠다는 걸 배웠어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즐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조건 해내야 돼’ 하는 마음에서 ‘오케이! 해보자고!’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2025년을 앞두고 더 바라는 게 있어요?
대학교 졸업요. 올해 복학이 목표였는데 이뤘고, 내년에는 학사모를 꼭 쓰고 싶어요.(웃음)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작품이 잘돼서 포상 휴가를 떠나고 싶어요. 신예은으로서는 지금처럼만 평온하면 좋겠어요.
요즘이 가장 신예은다운 나날이네요.
맞아요.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뭔가가 생겼어요. 어떻게 극복할지 모르지만 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요? 삶의 경사 중 지금은 안전한 평지에 서 있는 것 같아요.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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