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인스타를 열면서 이렇게 세 문장을 남겼죠. “부끄럽습니다. 후회할 것 같습니다.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인가요?
여전히 어려워요. 여전히 부끄럽고.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너무 좋아요.
마지막으로 만났던 2년 전의 고현정은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일에 도전한 2024년이었어요. 인스타그램, 유튜브 콘텐츠라거나, 예능에 나간다거나 하는 일들.
전혀, 아예, 생각을 안 해본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채널이 있다는 게 너무 위로가 돼요. 그래서 저도 ‘더 재밌게 잘 만들어야지’ 다짐해요. 시작했을 때는 엄청 망설였죠. 하지만 해보니, 거의 완벽하게 저한테 좋은 것 같아요.
시작할 때의 각오는 뭐였나요?
‘시작했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 현정아? 자연스럽게 하자, 저를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분들에게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행복하고 싶었고요.
‘인간 고현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모습으로 많은 응원을 받아보니 어때요?
그래서 현재 제 모습 그대로를 담고 싶었어요. 매주는 못 올리지만요. 저를 알아주는 분들은 제 마음을 알아주실 것 같고, 그래도 제가 싫으신 분들은 계속 싫죠, 뭐.(웃음)
싫은 사람이 굳이 들어와서 보는 것도 일종의 사랑이죠. 조금 뒤틀린 형태의.
답글도 달아봤어요. 근데 아무 반응이 없으시더라고요. 안 보시나 봐요.(웃음)
스스로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곧 테라피가 되기도 했나요?
맞아요. 그리고 또 장점이, 제 채널이니까 제가 내보내기 싫은 건 안 내보낼 수 있잖아요. 엄청 주도적으로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 하하.
하하, ‘편집권’이라는 게 때로는 전지전능하죠.
저는 배우니까 편집한 것만 나중에 볼 수 있어요. 맨날 남의 손 안에 있었는데, 제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희열도 조금 있어요. 댓글 달고 하는 것도 속이 시원해요. 이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몰랐구나. 아직까지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많구나. INTP라서 생각이 많은데, 생각하지 말고 좀 그냥 행동해볼걸 ‘50’ 넘어서 알았어요.(웃음)
<유퀴즈>에서의 말들이 놀랍지 않았어요. 대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 작품에 대한 책임감 등 지난번 인터뷰했을 때 나눈 말과 같았거든요. 그게 고현정의 모토인 거죠.
그렇더라고요. 매일 밤 제가 그걸 외우나 봐요. 보면 단어 선택도 똑같아요.
지금도 한창 <나미브>에 모든 걸 던지는 중이겠군요. 올인!
드라마 촬영이 끝나지 않아서 제가 막 버티는 중이에요. 올인을 어떻게 안 해요, 제 작품인데.(웃음) 그래야만 또 새 작품도 할 수 있죠. 배우 본인이 작품을 결정했으면 결과는 자기 책임이고, 끝내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배우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용감한 사람만이 자기 책임을 인정할 줄 알죠.
그런 말 들으니 조금 다르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그 작품에 대한 책임이 영원히 가는 건 아니니까, 작품 하는 동안만큼은 그 무게를 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고 끝내야 아쉬움도 없고 시원하죠. 이번 <나미브> 배우들끼리 사이가 너무 좋아요. 진우, 려운 너무 착하고, 깜짝 놀랐어요. 마음이나 태도도 나무랄 데가 없어요. 상현 씨도 너무 좋더라고요. 더 연기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너무 좋아서 “우리 이렇게 예전처럼 <전원일기> 같은 그런 드라마하면 좋겠다. 일주일에 하나씩 계속 나오는.” 서로 그런 말도 했어요.
배우로서의 책임감이 강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분량이 적은 <마스크걸>이 새로운 경험이 되기도 했나요?
너무 좋았죠! 최고의 현장 중 하나였어요. 저는 뭐랄까, 제 얼굴에 질린 상태인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작품에 대한 생각이 또렷한 감독님을 만나 작품 안에서 조련받으면서 제 표정, 말투, 억양 하나도 다 바꿔서 연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어요.
그토록 오래 연기했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군요?
그래서 항상 작품으로 저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을 기다려요. 작품을 한다는 건 곧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는 거니까요. <마스크걸>은 분장도 많았고 제가 다른 모습이 되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김용훈 감독님과 지금도 가끔 수다 떨려고 만나요. 제 딸로 나온 미모, 신예서와도 지금까지 연락하고요. 작품과 스태프, 동료 배우들을 잘 만나면 인생이 풍부해져요.
<나미브>는 연예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포스터 문구가 ‘넌 꼭 스타가 될 거야, 나와 함께’죠. 스타와 배우,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는 자기 의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죠. 기가 막힌 우연이에요. 천상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별똥별이 뚝 떨어지듯이요. 하지만 좋은 배우가 되는 건 노력하면 이룰 수 있죠. 시간과 노력과 작품, 그 무엇이 차곡차곡 쌓이고 깊이를 갖추면 좋은 배우가 될지도 모르죠. 좋은 배우가 되는 길은 내가 선택할 수 있죠. 그래서 스타가 되는 걸 동경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마치 로또나 예기치 않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니까요.
그러고 보니 항상 선물이 어울리는 계절에 만나네요. 선물을 하는 것과 받는 것 중 뭘 더 좋아해요?
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상대방에 맞추려고 하니 어려운 거거든요. 그저 내 마음을 전하려고 하면 돼요. 그럼 쉬워요. 단순하게는, 항상 “밥 먹자” “차 마시자” 하죠. 각본은 나중에. 무겁지 않아요. 제 마음을 작게 전하는 거죠. 커피나 카스텔라를 살 정도는 벌잖아요. 라면도 우동도, 잔치국수도 맛있는 건 너무 많으니까요.
스스로에게도 종종 선물을 하나요? 최근엔 어떤 걸 구입했어요?
로에베의 버건디 가죽 재킷! 엄청 예뻐서 크게 질렀죠.
유튜브에서는 평소 스타일을 만날 수 있죠. 어떻게 선택하고 있어요?
지금 입은 옷처럼 그때 눈에 보이는 거 입어요. 일부러 뭘 하거나, 아예 안 꾸민다는 건 아니고, 꾸미는 건 어느 정도 꾸미지만 근간이 나인 거죠. 나다움에 집중하려고 해요.
옷장에서 빠질 수 없는 세 가지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슬리브리스나 긴소매 티셔츠처럼 몸에 닿는 기본템은 필수죠. 그다음에는 후디. 가장 신경 써서 고르는 건 재킷과 트렌치 코트, 바지예요. 핏이 제 마음에 들어야 하고요. 평소에 개인적인 약속이 있을 때에도 주로 그렇게 입어요. 한번은 제가 좋아하는 재킷과 트렌치 코트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계절이 훅 이렇게 지나가서 또 겨울이 되었네요.
지금 말한 아이템으로 룩이 완성되네요. 이너, 후디, 재킷, 팬츠. 오늘 입은 로에베의 룩은 어땠어요?
로에베는 ‘나’를 버려야 해요. 로에베 세계로 가서 어색한 나를 만나야 해요. 그래서 재밌어요. 제가 감독님도 좀 그런 분을 원한다고 했잖아요. 늘 나 좋은 걸 하는 대신, 새로운 나를 발견해줬으면 하는 것처럼 로에베를 입을 때가 그래요. 좀 환기되는 기분? 화보 촬영이나 협찬으로 입을 때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것도 패션의 재미가 아닐까. 일상에서 소화하기에는 좀 도전 정신이 필요한 옷도 있고 믹스매치가 좀 어려울 때도 있지만 로에베 안에서 그냥 모험을 떠나는 게 좋아요.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 그 사이 어디쯤 있네요. 이런 계절 좋아하나요?
가장 좋아하는 달은 11월인데, 12월은 제가 좋아하는 캐럴을 실컷 들을 수 있어서 좋고요.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은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있어서 좋고요. 단 며칠이라도.
2025년에 대한 생각도 하나요?
아직은? 하지만 늘 지금 같으면 좋겠어요. 그 이상의 기대는 사실 안 해요.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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