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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FANTASY / 조각가 호르헤 파르도

2024.12.27김정현

쿠바계 미국인 예술가이자 조각가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는 일상의 영역에 예술을 담는다. 무궁무진한 탐구가 일군 일상은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다.

벽과 타일, 가구, 난간 등 호르헤 파르도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한 프랑스 아를의 호텔 라를라탄(L’artlatan) 인테리어.
Untitled, 2024, PETG2mm, automotive acrylic enamel, birch, and aluminum, 45×45×30cm’.

한국에서 22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그때와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나?
그때는 겨우 마흔이었는데 벌써 예순한 살이 됐다. 사실 나이 들면서 온몸이 욱신거리는 일상적인 고통이 생겼다는 걸 제외하면 난 크게 변한 게 없다. 그 사이 서울은 많은 것이 변했더라. 전체적으로 커졌고, 갤러리의 수도 확연히 늘어났다. 

신작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에는 회화, 드로잉, 램프, 카펫 등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다. 특히 ‘색’이 주는 에너지가 강렬하다.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시각적 효과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관심이 없는 대중이라도 그 존재 자체로 ‘무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내가 만든 시각적 효과의 결과물이 어떤 발언을 할 수 있을까?’를 기대하는데 때로는 의도한 것보다 더 크게 확장되기도 한다. 이때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색’이다. 색을 통해 작업의 접근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개념을 묘사하거나 재현 대상을 그리는 것보다 동참하고 싶은 비주얼, 시각적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개인적으로 1960~70년대 예술을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이 역시 예술이 전통적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로 생동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에 있는 당신의 팔레트가 궁금해진다. 색에 파고드는 여정은 어떤가?
굉장히 단순하다. 동네 페인트 가게에서 색상 칩을 고르고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 책상 위에 여러 색상 칩을 펼쳐놓고 게임하듯 팔레트를 만든다. 색이 충분히 모인 것 같으면 무작위로 배치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조합한다. 흥미로운 관계를 발견할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 속에서 즐거움과 쾌락 등 다양한 감정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 전시와 관객을 움직이게 한다고 믿는다. 

굉장히 본능적인 방식이 아닌가?
맞다. 팔레트를 만드는 건 모든 의도에서 벗어나 우연히 작동한다. 갤러리의 하얀 벽이 원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색은 어떤 상징적 질서가 없는 비재현적인 수단이다. 작품에서도 하나의 요소로 작용할 뿐이다. 작품에는 다양한 외부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에 전시 좌대나 액자에만 담기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이 어디서 시작하고 멈추는지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기에 나 역시 다양한 제스처를 구사하려고 고민한다. 

당신의 작업에는 일찍이 CNC 기계, 레이저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했다. 기술이란 비예측성과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 아닌가?
내게 기술은 도구와 같다. 기술 자체에는 예측 가능하고 완벽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걸 아주 오랫동안 사용했다. 망치를 쓰는 것처럼 기술을 활용해왔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솜씨 좋은 목수다.(웃음) 90년대 중반 처음으로 로봇 장비를 도입했고 덕분에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많은 예술가가 제작 과정에서 전문가를 찾아가지만 나는 장비 사용에 익숙하고 작업실에서 모든 걸 진행한다. 스튜디오 풍경이 일종의 제작소와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재료를 올리고 사포질하고 마감하는 등 인간의 개입은 필수다. 기술의 스펙터클함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에는 흥미가 없고 작업에 드러나게 하고 싶지도 않다.  

멕시코 유카탄 정글의 저택을 생동하는 작품으로 만든 프로젝트 ‘TECOH’ 전경.
‘TECOH’의 공간 내부 모습.
호텔 라를라탄의 객실 내부 인테리어.

여전히 시각예술에 대한 흥미가 가득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그만이다. 내 작품 속에 스토리가 있다면 그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색의 관계, 형태의 관계, 공간적 관계 등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소화하는지의 관계 등일 뿐이다. 

램프는 당신의 작업에서 꽤 오랜 시간 등장한 요소다. 이 오브제의 매력은 무엇인가?
자기 반영적인 동시에 미학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빛’이라는 물질성을 품은 동시에 재료적 측면에서는 타의로 바라봐야 한다는 속성이 있다. 말하자면 3차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빛 자체가 어떤 공간이나 환경을 조성해 시선을 다르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메커니즘이 참 흥미롭다. 그런 면에서 램프는 조형적으로 흥미로운 물체다. 사물의 본질, 재현의 본질, 전시의 의미 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이 샘솟는다. 

전시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전시의 가장 큰 의미는 탐구에 있다. 내게 전시는 일종의 시험대다. 만들고 싶다고 흥미를 느끼거나 더 큰 규모로 설치하며 실험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재현의 본질이 무엇인지, 만든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나 역시 작업을 하고 바라볼수록 뜻밖의 발견을 한다. 종종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와 공통점을 논의하는데,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전시’에 있다. 디자인 오브제는 전시가 필요하지 않다. 그것들은 구매가 필요한 물건이다. 디자인 페어에 가보면 전시와는 다른 구성이며 사물에 대한 기대도 다르다. 

이번 전시 작품의 제목이 모두 ‘Untitled’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그런가? 미술 전시는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이 유발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탐구의 언어를 전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태어난 쿠바는 당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이민자로서의 삶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한국도 혼란과 절망에 빠져 있다. 그 속에서 빛을 간직하는 비결이 있을까?
나는 실패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왔다. 지난 시간을 겪으며 디아스포라나 망명자, 국외자 같은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멜랑콜리함을 느끼기보다는 기회가 있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디를 가나 새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누구이고, 뭘 하고 싶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이런 경험이 예술가로서 예술과 작품, 전시에 질문을 하는 구조에 영향을 미쳤을 거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풍요, 창조성 같은 생산적인 요소를 보려고 한 셈이다. 한국 역사 역시 나와 비슷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고도성장한 나라가 되었고, 그것이 가진 어떤 강렬한 밀도가 한국의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항상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 이것이 한국의 정체성 중 하나이지 않을까?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
극장 안에서 일어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연극이 상영되는 동안 중요한 사물이 되었다가 극이 끝나고 사라져 누군가의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오브제라는 점에서 그 존재가 흥미롭다. ‘소품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 삶의 주기를 가질 수 있을지?’를 탐구하고 싶다.

    포토그래퍼
    차혜경
    사진출처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INSTITUTION OR GALLERY THAT HELD TH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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