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인 패션으로 승천한 뱀의 힘

예술적인 패션으로 승천한 뱀의 힘으로 2025년을 새롭게 시작하다.

끌을 사용해 뱀의 비늘을 표현한 화이트 골드 소재에 라운드 다이아몬드 32개를 파베 세팅한 ‘쎄뻥 보헴 원헤드’ 라지 링은 부쉐론(Boucheron). 화이트 골드 소재에 다이아몬드 풀 파베 세팅해 강렬한 뱀의 비늘처럼 디자인한 ‘세르펜티 바이퍼’ 네크리스는 불가리(Bvlgari).

선과 악을 동시에 내포한 토템

‘쥬쥬’란 애칭의 뱀을 잠시 맡아 돌본 적이 있다. 쥬쥬는 윤기 흐르는 만다린색을 뽐내며 손끝을 타고 올라와 손목을 휘감은 채 잠시 쉬어 가곤 했는데, 그 결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보내고 싶지 않아!”라며 떼쓰기까지 했다. 동거 중이던 동물 친구들의 반발과 살아 있는 생명을 먹이로 줘야 해서 결국 포기했지만, 아름다운 모든 것이 왜 ‘뱀’을 탐하는지 깊이 공감했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올해는 푸른 뱀의 해가 아닌가. 쥬쥬와의 추억을 주변에 떠들 때면 쉽사리 호응을 얻진 못한다. 혹여나 공격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을까 불안 섞인 거리감이 가장 큰 이유. 생각해보면 수 세기 동안 뱀도 참 고달팠다. 하필 갈라지고 날름거리는 혀는 하와를 거짓말로 유혹해 파멸의 길로 이르게 한 간교한 존재로 미움 받았고, 구불구불한 움직임은 불리할 때 교묘히 피해가는 자들을 빗대기에 좋았다.

동시에 뱀은 그 어떤 존재 중에서도 강한 이중성을 띤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허물을 벗는 뱀이 부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에, 무한한 원을 그리며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Ouroboros)’로 표현해 끊임없이 분출하는 에너지를 기원했다. 또 동양에선 불사와 지혜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1000년을 견딘 뱀은 이무기가 되고, 다시 1000년을 견디면 용이 돼 승천한다’라는 설화와 함께 뱀의 인내성을 강조했다. 특히 오늘날까지도 뱀은 여성성을 숭배하는 원초적 동물로도 일컬어진다. 조앤 K. 롤링의 소설 속 ‘내기니’가 인간 여성이었다는 설정만 보더라도 보호를 자극하는 여린 모습 속에 누구도 위협 못할 강인함을 갖춘 여성의 힘이 비친다.

여성과 패션 그리고 뱀의 힘

역사 속 매력적인 여성은 늘 뱀과 함께했다. 미스터리하고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취약성이 얽히고설킨 존재는 현대의 복잡성과 동일시되어 예술적 패션으로 승화했다. 디자이너들은 뱀의 존재를 일시적 유행으로 소모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대물림되며 조용하면서도 강인하게 자신을 표현할 매개체로 그려낸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고 우아한 자태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듯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아름다운 메두사에게 구애한 포세이돈과 이를 질투한 아테나의 이야기. 뱀의 형상으로 변해버린 아리따운 머리칼은 독 서린 무기가 되어 마주치는 이들을 돌로 만들어버렸다. 당당함으로 무장한 슈퍼모델의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베르사체 창립자 잔니 베르사체는 여기에 매료됐다. 1978년 설립한 이후 브랜드의 정체성이 자리 잡을 즈음, 한번 사랑에 빠진 후에는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메두사를 자신의 아이콘으로 선택한 것. 1993년부터 사용한 메두사 심벌은 화려하다 못해 극적인 컬러와 패턴 디자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됐다. 이후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수장 자리를 물려받고 미니멀하고 건축적인 실루엣에 작지만 강력한 포인트로 활용하기까지 브랜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티프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뱀에 젖을 물려 최후를 선택했다는 허구의 이야기를 진실이라 믿을 정도로 뱀을 사랑한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는 실제로 뱀을 조각한 황금 장신구로 온몸을 휘감았다고 한다. 불가리는 클레오파트라의 전기를 연출한 1962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세르펜티’ 주얼리를 바쳤다. 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하는 ‘세르펜티’는 뱀의 비늘 모양에서 착안한 개별 부속을 투보가스(Tubogas) 공법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한 뒤, 뱀이 똬리를 트는 동작과 흡사한 생명력 있는 형태로 재현한 메종의 독보적인 아이콘이다. 1940년대 후반 첫선을 보인 후 점차 형태에 다양한 변화를 줬고, 1950년대부터는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속 파베 다이아몬드와 마르퀴즈 컷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세팅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한 쌍의 에메랄드 스톤으로 표현한 뱀의 눈을 장식한 ‘세르펜티’ 주얼리를 기점으로 뱀은 진보적인 섹슈얼리티와 여성 권력의 상징으로 다시 한번 진화했다.

영원한 스타일의 원천

이 밖에 많은 디자이너가 수수께끼 같은 뱀의 미학을 현대 패션과 접목해 감각적이고 스릴 있게 풀어냈다. 티파니 하우스의 전설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엘사 퍼레티는 스위스 로잔에서 만난 한 텍사스인이 행운의 부적으로 건넨 방울뱀 꼬리에서 영감 받아 비늘 위로 뼈가 뚫고 나온 듯한 구조적 형태의 ‘스네이크’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여전히 티파니를 대표하는 스타일로 소개되는 ‘스네이크’를 두고 엘사 퍼레티는 살아생전 “미국인은 뒷마당에 이런 종류의 뱀이 있는 한 용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뱀 꼬리 부적 같은 영험한 주얼리로 소개했다.

그뿐 아니라 부쉐론은 뱀의 머리를 물방울 모양으로 형상화하고 비늘은 골드 비즈로 표현한 부쉐론의 ‘쎄뻥 보헴’ 주얼리 컬렉션을 폭넓게 전개하고, 구찌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레드, 화이트, 블랙의 스트라이프 삼색 선을 가진 애완 뱀 푸에블란 밀크 스네이크에 오버랩시켜 클래식한 디자인에 젊은 감성을 불어넣었으며, 알렉산더 맥퀸은 스컬 모티프와 함께 뱀 장식을 주얼리 라인의 대표 콘셉트로 내보이며 근본적인 삶의 주제를 펑크한 감성으로 소개한다. 이처럼 뱀은 대담한 스타일의 원천이 됐다. 새해에는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서 영원히 변화하고 아름다운 컬러를 매혹적으로 흡수해 표출하는 뱀처럼 내재된 본성을 깨워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을 연출해보면 어떨까?

    포토그래퍼
    현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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