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THREE CITIES / 샌프란시스코

<얼루어> 에디터들이 모처럼 휴가를 찾아 떠난 곳은? 아이슬란드, 샌프란시스코, 홍콩에서 보낸 시간들.

Dolores Park in San Francisco, California on April 7, 2024.

캘리포니아

출장이 아닌 여행을 위해 여권을 챙긴 건 2년 만의 일이다. 일주일 가까운 휴가를 해외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선택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예매하고 출발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무엇보다 출장에서 맛본 소도시의 묘미를 긴밀하게 느끼고 싶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내게 안정감을 안겨줄 청량한 하늘, 바다처럼 드넓은 들판, 낭만적인 항구, 친절한 사람 등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나를 홀렸다. 소모되듯 흘러간 일상에서 푸근히 감싸줄 온기가 그리워 충동적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열렬하고 당연한 지속가능성

캘리포니아는 방문할 때마다 내게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하나씩 소개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커피의 참맛을 배웠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지속가능한 생활 방식의 기쁨을 목격했다. ‘이번에는 어떤 행복이 내게 올까’를 상상하며 우버 기사와 내일 관람할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경기를 주제로 수다를 떨면서 샌프란시스코로 달렸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피어 39(Pier 39)로 향했다. 이곳은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선착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바다와 바다사자를 보고 있으면 이 도시 속 자연의 청량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대중교통의 내연기관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 샌프란시스코는 코에 닿는 공기부터 다르다. 지속가능성을 고민한 흔적이 도시 곳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피어 39도 다르지 않다. “매년 피어 39에서 280만 파운드의 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그중 65%를 재활용해요. 습식 폐기물, 쓰레기, 그리고 재활용 압축기 2개를 활용하죠. 100여 명에게 퇴비, 쓰레기, 재활용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해서 쓰레기를 분류하고 재활용 과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했어요.” 피어 39의 운영을 총괄하는 프레이저 톰슨(Frazer G. Thompson)의 말이다. 지속가능성에 있어 이들이 주목하는 건 교육이다. 올해는 환경의 미래 주인인 어린이에게 환경보호와 재활용 지식에 대한 정보를 전파하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주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으로 가꿔진 거리를 걷고, 공원에서 맛있는 음식과 햇빛을 즐기며 다음 도시로 떠날 에너지를 충전했다.

소도시의 심심한 럭셔리

샌프란시스코를 뒤로하고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새크라멘토(Sacramento)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소도시 탐방을 시작했다. 이 낯선 도시는 캘리포니아주의 주요 행정기관이 밀집한 주도다. 샌프란시스코, LA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19세기 골드러시 시대의 부흥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캘리포니아 근현대사의 상징인 주청사 박물관에서 역대 주지사 중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청사 주변에는 오렌지나무가 가득하다는데, 겨울이라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오렌지의 고장답게 이곳의 오렌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역사 유적지 같던 새크라멘토에서 30분 떨어진 곳에는 자그마한 마을 윈터스(Winters)가 있다.

새크라멘토에서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해마다 열리는 맥주 양조 대회 <2024 캘리포니아 브루어스 컵>에서 ‘올해의 브루어리(Brewery of the Year)’를 수상한 베리에사 브루어리(Berryessa Brewing Co.)에 가기 위해서다. 끝을 알 수 없는 오렌지와 토마토밭을 지나 도착한 브루어리는 동네 사랑방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로리 니콜리니 밀러(Lori Nicolini Millar)와 크리스 밀러(Chris Millar)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브루마스터 남편과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아내의 합작품이다. 새로운 것, 실험적인 것, 익숙한 것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재료에서 시작된다. 가장 신선하고 우수한 재료를 듬뿍 확보해 인공적인 맛과 향은 일절 넣지 않는다. 그 결과 2개의 배럴로 시작한 브루어리는 20개 배럴 규모의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탭룸을 투어하는 내내 로리의 눈과 입은 자부심에 가득 차 반짝였다. 라거부터 흑맥주까지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 6잔을 담은 샘플러의 첫 잔에서 신선한 탄산감이 느껴졌다. 짜릿하기보다 편안한 탄산감이었다. 탄산의 강렬함을 앞선 건 원재료의 맛과 향이었다. 쌀, 오렌지 같은 특색 있는 재료, 독특한 홉의 향은 특별한 안주가 없어도 하나의 요리로 느껴졌다.
오후 4시가 되자 아담한 무대에서 신나는 재즈 공연이 열렸고,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두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는 것도 모른 채 수다가 이어졌다. 기분 좋은 취기와 함께 호텔로 돌아와 다음 여행지인 나파(Napa)와 소노마(Sonoma)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곳에서의 시간도 따듯한 햇살 아래 느리고 편안하게 나를 따라 흘렀다.

캘리포니아 소도시를 여행하는 건 끝없는 도로를 달리며 두 눈에 대자연의 생동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었다. 높은 건물 대신 드넓게 펼쳐진 밭은 지루할 틈 없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낯선 광경을 선사해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확인할 때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한 건 허허벌판이었다. 사진에서 보면 휑한 풍경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의 바람과 공기의 냄새, 햇살의 온도가 선명히 기억난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꼽아보면 이렇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 길을 걸으며 샌드위치를 먹던 순간, 기분 좋게 취해 올려다본 하늘에서 마주한 수많은 별, 숙소 마당에서 수확한 오렌지의 상큼함. 벌써 세 번째 방문이지만 유행의 중심이라 생각하던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 그들만의 촘촘한 이야기와 자연, 특유의 기분 좋은 에너지에 스며든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심 이면의 소도시에서는 탐닉할수록 나만의 요새를 쌓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심심한 게 최고지. 고급진 거예요”라는 배우 고현정의 말처럼, 심심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큰 럭셔리라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실감했다.

    사진출처
    VISIT CALIFORNIA, MAX WHITT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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