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THREE CITIES / 홍콩
<얼루어> 에디터들이 모처럼 휴가를 찾아 떠난 곳은? 아이슬란드, 샌프란시스코, 홍콩에서 보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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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혹시 홍콩 허 씨세요?” 구글 맵도 열지 않고 홍콩의 곳곳을 쏘다니는 내가 간혹 듣는 말이다. 홍콩을 방문한 건 아마 스물다섯 번쯤? 대학생 시절 친구와 처음 찾은 이후 출장과 여행으로 무수히 드나들었다. 홍콩은 지금의 서울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화려한 도시였다. 유수의 브랜드가 홍콩에 첫 매장을 냈고, 중요한 이벤트도 홍콩에서 열렸다. 거의 매년, 때로는 분기마다 홍콩에서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지금의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프로젝트를 발표한 곳도 홍콩이었고, 아르마니, 샤넬, 디올 등 패션하우스부터 홍콩을 대표하는 경마, 미식, 아트바젤, 페닌슐라와 포시즌스, 만다린 오리엔탈 등의 주요 행사가 열릴 때마다 나는 항상 기쁘게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틈날 때마다 낯선 동네 하나를 정하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말 그대로 ‘디깅’하는 것이 내가 홍콩을 즐기는 방법이다.
눈에 띄는 노포에서 국수를 먹고, 돼지 간이 들어 있는 콘지에 입천장을 데이고, 동그란 찹쌀경단이 생강차에 빠진 디저트 탕위안을 사 먹고, 옥토퍼스 카드로 결제한 밀크티를 입에 물고 돌아오는 별일 아닌 날이 제일 재미있는 게 홍콩이다. 그렇게 해서 센트럴, 완차이, 셩완, 몽콕, 삼수이포, 노스포인트, 틴하우, 타이항, 사이잉푼과 차례로 사랑에 빠졌다. 또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면세의 도시로 ‘쇼핑 천국’이던 홍콩의 면모는 ‘직구의 시대’를 맞아 어느새 그 위상이 꺾이고 말았다.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아이템을 저렴하게 판매해 패션 피플도 잊지 않고 다녀간 ‘스페이스 아웃렛’이 이미 몇 년 전 사라졌고, 거대한 아웃렛 건물인 ‘호라이즌 플라자’도 쇠락했다. “쇼핑도 안 할 거면서 홍콩 가서 뭐할 건데?”라는 사람들의 말에, 나는 “먹고 걷기, 마시기”라고 답한다. 그 재미만큼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12월의 날씨는 홍콩을 여행하기에 가장 완벽한 때니까.
술과 미식의 도시
팬데믹 기간에 많은 레스토랑이 아쉬움 속에 문을 닫았지만 홍콩의 노포와 곳곳의 국수 가게만큼은 항상 인기다. ‘양조위 국수’로 알려진 카우키 앞에는 매일 긴 줄이 늘어선다. 줄을 서지 않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다가 마지막 쇠고기 카레 국수를 차지했다. 야호! 온갖 토핑을 고를 수 있는 맵고 신 운남 국수의 명성도 여전하며 고구마 당면으로 만드는 사천식 국수, 조주식으로 수제 피시볼을 넣은 국수, 광둥식 바비큐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구운 거위 다리를 얹은 국수에, 프랜차이즈가 된 탐자이 삼거 국숫집까지. 국수만 먹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데다 서울에서 맛보기 어려운 광둥식 훠궈와 딤섬까지 먹어야 하니 3박 4일도 빠듯하다.
해가 진 후에는 바에 가야 한다. 루프톱 바의 인기는 방콕에게 양보한 지 오래지만, 홍콩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바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다. 서울에서는 ‘소맥’만 마셔도 홍콩에서는 저녁마다 칵테일을 즐겨야 할 이유다. 홍콩에는 거의 매달 새로운 바가 들어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서 1위를 수상한 ‘바 레온(Bar Leone)’은 여전히 긴 웨이팅 리스트를 자랑하고, 일본 칵테일 믹솔로지스트 신고 고칸의 홍콩 첫 지점 고칸(Gokan)과 세이버리 프로젝트 (The Savory Project), 모스틀리 함리스(Mostly Harmless)도 운이 좋아야 한 번에 착석할 수 있다.
나는 홍콩의 랜드마크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5층에 자리한 더 오브리(The Aubrey)를 좋아한다. 2024년 ‘아시아 베스트 바 50’ 리스트 Top 10에 이름을 올린 이곳에서는 이자카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일본 퓨전 음식을 코스로 즐기면서 바텐더 디벤더 시걸(Devender Sehgal)의 창작 카테일을 맛볼 수 있다. 클래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비튼 칵테일을 주량껏 마시고, 취기가 오른 상태로 괜히 스타페리를 타보는 것 역시 여행자의 특권.
새로운 거리
홍콩의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면, 타이핑샨 스트리트(Tai Ping Shan Street)로. 이 거리는 포힌퐁(Po Hing Fong), 사이 스트리트(Sai Street)와 스퀘어 스트리트(Square Street) 등을 아우른다. 느지막이 일어나 국수를 먹기 위해 골목을 걷다 마주친 이곳은 최근 ‘뜨는 지역’과 비슷하게 노포와 함께 새롭게 생긴 갤러리, 카페, 상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초의 목적지를 어디에 둘지 고민된다면 라파 매장이나 카페 쿨빈즈로 갈 것. 이곳으로 가는 사이 골목 곳곳의 정취가 서서히 들어온다. 홍콩에서도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골목의 끝에는 사원이 있는데, 덕분에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특유의 향과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원 바로 앞에는 차찬탱으로 유명한 포키(For Kee) 레스토랑이 있다. 노천에서 갈비덮밥을 먹으며 밀크티를 곁들여볼 것. 복잡한 홍콩에서도 골목 안쪽에 자리한 이 거리만은 느긋하다.
카페 쿨빈즈의 한편에는 접이식 캠핑 의자가 놓여 있어 누구나 마음에 드는 곳에 의자를 펼치고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데, 오후마다 볕을 쬐는 동네 사람들로 북적인다. 코너를 돌면 초콜릿 가게가 있고, 골목마다 양복점, 향수 가게, 주얼리 매장과 독립 서점이 위치한다. 이갤러리(Yee Gallery)를 운영하는 엘렌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지금 홍콩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역입니다. 다들 여기로 모여들죠.” 사람들은 홍콩이 변했다고들 한다. 서울이 시시각각 달라지듯 홍콩도 그렇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홍콩은 어김없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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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 JOE THO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