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저스트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한 프로젝트 이후 거의 1년 만이에요. 그 사이 인상이 많이 달라졌네요?
촬영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바로 어제 <보물섬> 촬영이 끝나서 아직 선우의 얼굴이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르고요.
보기 드문 16부작입니다. 긴 촬영이 끝난 소감이 어때요?
대장정이 드디어 끝났다! 이제 다음에 뭐 하지?(웃음)
벌써 그런 생각을 해요? 티빙 오리지널 <스터디그룹>, 넷플릭스 오리지널 <멜로무비>, SBS 드라마 <보물섬>까지 이달에 공개된 작품이 한가득인 걸요.
아직 차기작을 확정하지 않다 보니 걱정은 돼요. 촬영 기간은 조금씩 다른데, 이렇게 동시에 공개될 줄은 몰랐어요.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아요.
촬영 일정이 겹치지는 않았어요?
전부 조금씩 겹쳤어요. <스터디그룹>을 가장 먼저 촬영했고, <멜로무비> <고백의 역사> 그리고 <보물섬>을 찍었어요.
<스터디그룹>에서는 악의 중심이자 권력의 정점에 있는 피한울, <멜로무비>에서는 연하남 우정후, <보물섬>에서는 차강천의 혼외자 지선우가 됐어요. 모두 오디션으로 쟁취한 작품인가요?
전부 오디션 과정을 거쳤죠. 가장 기억에 남는 오디션은 한울이 때예요. 2차 오디션 당시 저는 한울이 대본만 받았는데, 다른 지원자는 한울이와 세현(이종현 분)이 대본을 모두 받았더라고요. 감독님께 저도 세현이 역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단호하게 “너는 한울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디션장에서 감독님을 설득하려고 한창 옥신각신했어요.
<밤이 되었습니다> <약한 영웅 Class1>에 이어 또 교복을 입어야 해서 부담이 되지는 않았어요?
부담은요! 교복을 입을 수 있을 때 자꾸 입어둬야죠. 일 들어오면 열심히 노 저어서 해내야 하고요.
<보물섬>의 지선우 역시 바짝 날이 선 인물이죠?
한울이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대업이 있다면, 선우는 본능에 따라 움직여요. 가정사가 다소 복잡하지만 해맑음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천진함이 악의 본능과 뒤섞여 무섭게 발현돼요. 한 번은 감독님께 “선우는 처키 같아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어제 마지막 촬영에서도 누군가를 멀리 보내고 왔어요.
가장 도전적으로 다가온 인물은 누구였어요?
<멜로무비>의 정후요.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친구예요. 허스키가 무섭게 생겼는데 발랄하고, 충성심도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정후는 무비 누나(박보영 분)만 바라봐요. 평소의 저는 차분한 편인데 정후는 항상 밝아서 낯설더라고요.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기실과 이동하는 차에서 2NE1의 ‘Fire’처럼 신나는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 이유가 뭐예요? 데뷔가 조금 늦었다는 것에 조급함이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오히려 저는 더 늦어도 괜찮았다는 마인드였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멀리 보고, 오래 달리자고 다짐했거든요. 서른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시작할 때부터 어차피 평생 함께할 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제가 존경하는 배우들의 행보를 좇아보니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좋은 배우가 되려면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세상이 그들을 찾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리 애써도 안 될 때는 안 되는데 제 몫을 묵묵히 했더니 물 흐르듯이 왔어요. 성동일 선배님이 물과 한 몸이 되어 떠내려가는 ‘물아일체’짤 같은 현상인 거죠. 흐르듯이 내려왔더니 지금 여기에 있네요. 저는 진짜 운이 좋았어요.
운도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해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조금 더 반복되는지 지켜보려고요.
그나저나 어떻게 20대 초반에 평생 직업을 찾았어요?
연기보다 사랑하는 일이 없었어요. 다른 하나는 배우가 제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연기를 축으로 제가 좋아하는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배우를 주축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류승범 선배님, 배우이자 뮤지션인 조니 뎁과 스다 마사키처럼요.
배우 말고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제 별명 중 하나가 ‘취미 부자’예요. 사진 촬영, 글 쓰기, 시 쓰기, 책 읽기 등 흥미가 생기면 무조건 다 해봐요. 재미있으면 계속 쫓아가는 거예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 상태도 즐거워요.
최근에 꽂힌 취미는 뭔가요?
요즘은 러닝요. 늦여름에 시작했는데 한창 빠져 있었어요. 덕분에 살도 쭉쭉 빠졌고요.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뛰면서도 그만하고 싶을 정도인데, 땀을 흠뻑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을 때 뿌듯함이 몰려와요. ‘그래도 뛰었다’며 스스로 대견하더라고요. 그 순간이 좋아서 계속 달려요.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 매력이 폭발할 것 같은데요?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신기하다”라는 느낌은 드실 거예요. 재미있는 삶은 아니라서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거예요.
20대 중반에 나를 열심히 연구한 것 같아요. 여유도 있어 보이고요.
데뷔와 동시에 사회에 던져져서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야 나름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벌어질 일은 벌어져.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이 커요. 지난 5년을 통해 혹독하게 배우고 깨달은 건데, 압박과 부담이 느껴질 때면 눌리는 게 아니라 내가 올라가서 어떤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해요. 이 부담이 덜해질 때면 내가 떨어진 게 아니라 벽을 깨 위로 올라간 거라고요.
우민 씨의 성장 차트는 꾸준한 우상향보다 계단식에 가깝네요?
돌아보니 그래요. 압박이 생기면 위축되고 주눅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기를 지난 게 제가 성장했다는 방증이었더라고요.
캐릭터를 만나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겪는 일련의 과정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뭐예요?
레퍼런스 찾으면서 캐릭터를 준비할 때요. 뭐든 만들어낼 수 있는 순간이 가장 재미있어요. 아무 상관없는 영화도 일단 틀어놓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기다리며 수많은 영화를 봐요. 이 핑계로 미뤄둔 영화를 다 몰아 보기도 하고요.
레퍼런스로 삼을 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요?
그때그때 다른데 의외로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있어요. 애니메이션 속 인물은 성격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요. 극에 달한 행동을 보면서 현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스태프들과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 재창조될 때 짜릿해요. ‘내가 이러려고 이 일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 촬영이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쉴 준비를 해도 되지 않아요?
지칠 정도로 책을 읽고 싶어요. 책을 사는 게 습관이라 쌓아둔 책이 한가득이에요.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어요?
책의 첫 문장요. 그 문장이 저를 이끌면 끝까지 가요. 에세이, 소설, 시 등 장르는 상관없어요.
최근에 꽂힌 문장은 뭐였나요?
‘의심을 없애려면 많이 듣고, 불안을 없애려면 많이 봐라’라는 내용이었어요. <논어여설>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책상에 앉아 생각에 파묻히기보다 몸을 움직여 많이 경험해보라는 의미가 좋아서 골랐어요.
올해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시상식에 가는 거예요. 신인상을 받으면 영광스럽겠지만, 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현장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어요. 열심히 촬영은 했지만 작년에는 오픈한 작품이 없어서 시상식을 못 갔어요.
시상식에서 상상하던 풍경이 있어요?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장면요. 제가 부산 사람이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면 매번 레드카펫을 구경하러 갔어요. 당시 저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 ‘언젠가 저 위를 한번 걸어보고 싶다’라는 꿈을 꾸며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죠. 올해는 그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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