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SPLASH SPACE

2025.03.04이재윤

우후죽순 등장하고 사라지는 소모적 공간에 잠식된 서울. 그 틈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다섯 공간을 소개한다.

TACT

작년 9월 진행된 전시 [Curated Things #3. Pulling Unintended] 전경.
TACT 공간 한편에는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는 송태영의 빈티지 텍타 의자가 자리한다.

티에이씨티 큐레이터이자 원예가인 정성규와 디자이너 김기석이 사물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조성한 3년 차 전시 공간. 현재는 컬렉터이자 디렉터인 송태영이 함께 운영한다. 평면보다는 건축이나 디자인, 공예 같은 입체적 사물을 보여주는 데 매진한다. ADD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35 2층

‘Things and Curated Things’. 사물과 기획된 사물을 다루는 TACT는 세 사람 각자의 프로젝트에서 파생한 결과물을 소개하고 전시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이런 방향성은 삼청에서 안국으로 공간을 확장하면서 본격화됐다. 공간 외부와는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는 전환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철문과 계절과 시간을 온전히 공간 안으로 들여오는 창은 TACT만의 고유한 공간적 요소로 작용한다. 사방이 막힌 화이트 큐브처럼 온전한 전시 공간의 형태를 취하지는 않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방향과 감도는 작품과 함께 공간을 채우며 전시의 일부로 기능한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기와지붕의 유려한 형상 역시 공간을 풍성하게 하는 데에 힘을 보탠다. 안국에서 처음 선보인 오프닝 쇼룸은 TACT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물의 배치를 반복적으로 바꾸며 변화와 실험을 꾀한 경험은 지금의 전시, 대관 같은 과감한 도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 올해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사물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의외성을 발견하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려 한다. 하반기에는 판화가 최경주의 전시 개최도 예정하고 있다. – TACT 정성규(큐레이터) & 송태영(디렉터)


CURRICULUM

첫 번째 주제 ‘The Manner of Girl’ 아래 꾸민 커리큘럼의 전경.

커리큘럼 서울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출판사 포엣츠앤펑크스가 2024년 11월부터 운영하는 팝업 형태의 서점. 주제는 정기적으로 바뀌며, 각 주제에 어울리는 책과 여러 콘텐츠로 공간을 채운다. 공간 한편에 자리한 키친과 야외 정원 역시 콘텐츠의 일부로 활용된다. ADD 서울 종로구 삼청로 135

특별한 목적을 품고 달리는 여정을 의미하는 ‘Course of Race’는 우리의 단단한 기반이다. 책을 통해 누군가의 생각과 일, 더 나아가 삶의 여정을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트렌드의 중심인 서촌과 안국에 비해 한적한 삼청에 자리 잡은 건 공간이 지닌 따뜻한 에너지 때문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나 조명이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구성했다. 서점의 첫 주제는 ‘The Manner of Girl’. 소녀의 태도와 방식, 관점으로 큐레이션한 100여 종의 책과 소품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 취향보다 분명한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자유롭고 폭넓은 사고가 가능하다 여기는 내 생각을 반영한 결과다. 올해도 공예, 패션, 매거진, F&B 등 여러 브랜드와 크고 작은 팝업을 기획하고 있다. 가을에는 서점의 주제를 ‘런던’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공간의 큰 줄기인 서점, 키친, 정원이라는 형태는 굳건히 유지될 예정. – 오선희(포엣츠앤펑크스 대표)


THILA

7층 카페는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빈브라더스가 운영하는 커피 하우스의 루프톱 전경.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빈브라더스 바 안쪽에 위치한 미팅 룸.

틸라 삶것건축사사무소와 사운드 플랫폼 위사(WeSA), 커피 하우스 빈브라더스, 사운드 짐나지움 운영사 다각도가 의기투합해 2024년 3월 완성한 복합문화 건축물. 상업 공간과 문화 공간이 공존하는 이곳은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각종 예술문화 활동의 장으로 기능한다. ADD 서울 마포구 토정로 9길 2

우리는 구성원 간 깊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문화적 실험을 지속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협업을 추구한다. 매주 커피 한잔하는 캐주얼한 무드의 반상회를 열어 틸라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리뷰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이처럼 설계 시점부터 건축에 대한 의도가 명확했기에 어떤 사무실이나 근생 건물보다 사용자 및 용도 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5.5m에 달하는 높은 층고와 여의도가 바라보이는 탁 트인 조망, 저층부에 위치한 공연장의 접근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설계했다.
특히 공연장인 틸라 그라운드는 오디오 비주얼 작업을 전개하는 위사를 위해 신경 쓴 공간이라 규모에 비해 질 좋은 A/V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틸라의 앵커 이벤트인 ‘위사 페스티벌’에선 공간의 진수를 최대한 만끽할 수 있다. 올해는 2024년 진행된 프로젝트 ‘사운드 짐나지움: 고독한 청취가를 위한 체조장’을 잇는 두 번째 시즌을 기획 중이다. 춤을 추지 않고서도 세기말 일렉트로닉 음악을 마음껏 즐기는 칠(Chill)한 분위기의 클럽을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였기에 다음 시즌 역시 기대된다. – 양수인(삶것건축사사무소 소장)


MOVIE LAND

영화 상영 전후 대기 공간으로 활용되는 무비랜드 2층 라운지.
공간은 매달 바뀌는 큐레이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포스터와 소품 등으로 꾸민다.

무비랜드 팝업의 성지, 성수 연무장길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소규모 영화관. 2024년 2월, 브랜드 ‘모베러웍스’를 운영하는 모빌스그룹이 만들었다. 매달 새로운 큐레이터와 함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구작 영화를 GV, 아트워크, 굿즈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와 접목해 상영한다. ADD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5–5

무비랜드는 이야기의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탄생했다. 팝업스토어 위주의 공간을 꾸린 모베러웍스보다 더 진득하게 소통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공간을 아우르는 주제인 ‘영화’는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 생각에 대한 몰입을 증폭하기 위해 3층 규모의 건물 외벽에 붙은 로고부터 문고리, 얇은 포스터 한 장까지 공간을 채우는 모든 요소를 직접 제작했다.
코미디언 문상훈, 배우 이제훈, 감독 신우석 등 매달 새로운 상영 리스트를 꾸리는 큐레이터 역시 몇 가지 영화로 함축되는 자신의 메시지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 함께 고민한다. 2024년 10월, 이너웨어 브랜드 비너스의 창립 70주년 기념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브랜드 헤리티지뿐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정신을 ‘사랑의 형태’를 주제로 선정한 사랑 영화 7편을 통해 선보였다. 트래시 컬렉터, 헤비 스포일러, 스낵 킬러로 구성된 무비랜드의 ‘마스터스’들이 공간을 편히 즐기고 여러 감정을 나누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비랜드 1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여러 이벤트도 기대해주시길. – 권지우(무비랜드 기획팀)


DOQ SEOUL

재료적 기교 없이 완성한 지하 2층 전시 공간에 놓인 피에르잔느레 암체어와 Kar 플레이도우 체어.

도큐서울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 챕터원을 운영하는 피피에스 코퍼레이션이 꾸린 복합문화공간. 밝은 빛이 드리우는 1층과 높은 층고를 활용하는 지하 2층으로 구성된다. 피피에스가 직접 기획하는 공예 기반의 전시를 선보이거나 대관을 통한 각종 브랜드의 팝업 공간 등으로 쓰인다. ADD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41길 62

12년간 챕터원을 통해 잠재력 있는 공예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예술을 더 가치 있게 전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기존에 전개하던 전시 프로젝트 ‘갤러리 도큐먼트’ 역시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지만, 전시를 관통하는 명확한 주제와 다채로운 시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공간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의 문화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 크고 작은 갤러리와 미술관이 모여 있는 서울 이태원을 거점으로 삼았다. 자연과 인접하고 어디서든 편리한 접근성도 한몫했다.
도큐서울은 챕터원과는 다른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첫 전시를 기획할 때 신중을 기했다. 완성된 공간을 6개월간 비워놓고 알맞은 시기가 찾아오길 기다리다 2024년 4월, 메산 분재와 함께한 전시 으로 첫걸음을 떼었다. 올해도 공예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꾸준히 이어가는 한편, 음악이나 식음료를 즐기며 긴 시간 공간에 머무르고 공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향유하는 경험을 선사하려 한다. – 김가언(피피에스 코퍼레이션 대표)

    포토그래퍼
    오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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