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ELERATE ACTION

여성의 날을 맞아 어제와 오늘, 내일의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이름을 읊어본다. 

세계 여성의 날 조직위원회(IWD)가 공개한 ‘2025 여성의 날’의 캠페인 모토는 ‘행동에 속도를 내자(Accelerate Action)’다. ‘성평등을 위한 실천을 가속하자’는 메시지는 현재 속도로는 약 5세대 후인 2158년에야 비로소 완전한 성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데이터에 기반해 단호하고 신속하게 행동하자는 내용을 담는다. 평등을 향한 막연한 행동 방향에 응원과 빛이 되어주는 이름을 모았다. 이들의 행보는 여전히 존재하는 구조적 장벽과 편견에 틈을 만들었다. 

CAREER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포기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세요” 45년 연기 인생 최초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미 무어(Demi Moore)의 수상 소감이다. 62년 만의 첫 성과 후 그가 전한 메시지의 감동만큼이나 그가 걸어온 길은 많은 것을 바꿨다. 그는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남성 배우와 동일한 조건의 출연료와 복리후생을 쟁취한 최초의 여배우로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누드 만삭 사진으로 매거진 커버를 장식해 임신한 여성의 몸을 거침없이 보여주며 편견을 깨기도 했다.
2023년 61세에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휩쓴 양자경(Michelle Yeoh) 역시 “여성 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주위에서 ‘은퇴 안 하느냐’는 말을 듣지만, 나는 내 커리어가 자랑스럽습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고 여기서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어요.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위풍당당한 행보를 예고했다.

유럽 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는 좀 더 담대한 움직임으로 세계를 호령한다. 그는 총 18조 달러 규모의 EU 경제의 운명을 결정하며, 이 결정은 AI 규제부터 기후 정책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1947년 IMF가 출범한 이후 65년 만에 등장한 첫 여성 총재이자 비경제학자 출신으로 총재직에 오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시티은행의 CEO로 근무하는 제인 프레이저(Jane Fraser) 역시 월가의 유리천장을 깬 최초의 여성이다. 세계 4대 경제 대국 중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여성이 주도권을 가진 적이 없으며, 실리콘밸리 5대 기업은 아직까지 여성 CEO를 임명한 사례가 없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틀을 마련하며 버그(Bug)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컴퓨터 과학자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인공지능의 대모’로 불리며 머신러닝의 선구자 페이페이 리(Fei-Fei Li) 역시 주목할 행보를 보인다. ‘AI4ALL’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 젊은 여성과 소수민족 학생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AI 분야의 성평등과 다양성 촉진에 힘쓰고 있다.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은 우리의 삶에 실제적 변화를 몰고 왔다. 200여 년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여성 노동 문제를 연구해 성별 간 임금 격차와 여성 노동 참여율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한계를 극복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사랑한 여성들의 성취는 이토록 위대하다.

IDENTITY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는 생물학적 성별(Sex)이 아닌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둔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는 성차별이 모든 성을 가진 인간을 피해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여러 판례를 남겼다. 여성을 향한 익숙하고 당연한 편견에 맞서는 변화는 보고, 듣고, 읽는 콘텐츠 속에서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냈고, 한강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시인 김혜순 역시 편견에 맞선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바 있다. <날개 환상통>으로 한국인 최초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시인들의 시인’으로 언급되는 그는 시를 ‘쓴다’는 개념을 ‘몸이 시를 한다’로 표현해 성별을 비롯해 문학계에 고착된 진리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해 찰리 XCX(Charli XCX)가 쏘아 올린 ‘브랫(Brat)’ 열풍 역시 수동적이고 얌전한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태도를 지닌 여성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때로는 반항할 줄 아는 브랫걸 트렌드는 전 세계 패션과 뷰티, 애티튜드에 영향을 끼친다. 일종의 해방감까지 느껴지는 이 단어는 브랫 서머(Brat Summer)라는 밈으로 진화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며, 미국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역시 이를 자신의 이미지에 적극 활용했다.
2023년 3월 시작한 ‘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로 월드 투어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역시 무대 위에서 꾸준히 주체성을 강조한 아티스트다.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이 아티스트에게 정당한 수익을 배분하지 않자 자신의 곡을 서비스하지 못하게 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정면 돌파를 택하는 등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모습 역시 귀감이 되는 애티튜드다. 그의 팬덤을 칭하는 스위프티(Swifties)는 일종의 커뮤니티로 발전해 건강한 철학을 전파하고 연대하며 당당한 삶을 응원한다.

흑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숱한 기록을 경신한 비욘세(Beyonce)의 그래미 수상 역시 용기를 전하는 행보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32번이나 수상했지만,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을 놓친 그는 2025년 마침내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의 영예를 안긴 앨범 <Cowboy Carter> 역시 그의 도전 정신이 빛나는 부분이다.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컨트리 장르를 흑인 여성인 자신의 색으로 재해석하는 도전을 감행했고 당차게 성공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흑인 컨트리 음악 선구자 린다 마텔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며, “우리가 계속해서 문을 열어 나가길 바랍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BODY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라는 개념의 등장은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꿨다. 꾸밈 노동에서 해방되며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개인의 선택에 의해 아름다움을 정의할 기회가 열렸다. 그리고 여기,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을 깨부수는 노력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루이 비통, 구찌, 뮈글러 등 글로벌 브랜드가 사랑하는 사진가 할리 위어(Harley Weir)는 사진을 통해 성별의 경계를 허문다.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몸에 의문을 던지는 사진집 <Father>에는 여태껏 보지 못한 몸을 향한 탐구가 담겼다. 신체 긍정 활동가로 활약하는 할리우드 배우 자밀라 자밀(Jameela Jamil)은 2018년부터 아이웨이(I Weigh)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자체 커뮤니티를 통해 몸무게가 아닌 내 삶을 지탱하는 여러 가치에 무게를 두며 팟캐스트를 통해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토론을 이어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여성의 몸과 그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은 스포츠 선수들의 활약이 크다.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의 위상을 확 끌어올린 케이틀린 클라크(Caitlin Clark)는 농구 코트를 지배하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그림을 창조했다. 코트의 로고가 있는 위치에서 던지는 통쾌한 3점슛에는 로고 3(Logo 3)라는 이름이 붙었고, 시원시원한 움직임은 코트 위에서 뛰고 싶은 열망을 솟구치게 한다. 미국 내 여자농구 열풍을 일으킨 그의 경기는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경기보다 더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했으며, 나이키와 2800만 달러 규모의 계약도 체결했다. 테니스 그랜드 슬램 단식 우승 23회라는 기록을 달성한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 역시 강인함에 있어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테니스 코트 위를 힘차게 뛰어다니는 근육질의 흑인 여성은 스포츠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고, 코트 위에서 치열한 경쟁 정신을 보여줬다. 그는 부상과 비판, 편견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해 41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정상을 지켰다.

특유의 리더십과 카리스마, 국내 프로배구 선수 최초로 해외 리그에 진출한 배구 선수 김연경의 투지는 코트 위에서 생생히 전해졌다. 2020 도쿄 올림픽 도미니카와의 경기 중 9 대 15로 크게 뒤지던 중에도“해보자! 후회 없이!”라고 외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여성의 몸을 향한 시각의 변화는 물론, 압도적 기록과 성취를 일군 시너지는 여성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제 더 이상 강인한 몸을 만들고, 승부욕을 활활 불태우는 여성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일러스트레이터
    UNARI
    사진출처
    GETTY IMAGE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