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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사용법

2025.03.11김정현

‘텍스트 힙’의 열풍 속에서 개성 있는 책방의 존재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행하듯 떠나기 좋은 서점의 묘미를 책방지기에게 물었다.

어서어서

책방지기의 취향으로 가득한 경주 황리단길의 아늑한 책방.

왜 책방인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서점을 운영하겠다 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은 몰랐다. 서점을 열기 전 식당을 운영했는데, 현재 황리단길로 유명 한 황남동에 괜찮은 공간이 있다고 소개해줬다. 뭘 할지 몰랐지만 일 단 집에 책이 많으니 그 책을 가져다 팔면서 제가 좋아하는 책과 경주 이야기를 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꾸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식당을 운영 하던 터라 점심과 저녁 사이 브레이크 시간에 잠깐 운영하던 공간이 었는데, 입소문이 나서 식당을 정리하고 서점에 집중하게 됐다.

큐레이션 기준 책방지기의 취향이라는 정체성이 명확하다. 책방지기 인 내가 먼저 읽고 좋은 책을 들인다. 장르와 주제의 경계는 없다. 이 런 기준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신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도 있다. 책방은 책이 주인이라는 생각에 책의 전면이 많이 보이는 디스플레이를 추구한다.

시그너처 프로그램 어서어서는 황리단길로 유명한 관광지에 위치해 오가는 사람이 많다. 시도는 해봤지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적합하 지 않아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할 수 있는 북카페 ‘이어서’를 만들었 다.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어린이 프로그램 등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은 이곳에서 진행된다.

왜 경주인가 경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도시가 주는 매력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도 시시각각 다르게 느껴진다. 애정 하는 도시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주에 터 를 잡았다. 오랜만에 경주를 찾은 손님이 “황리단길이 다 바뀌었는데 어서어서만 남았네요. 오래오래 이 거리를 지켜주세요”라는 말을 들 었을 때 무척 뿌듯했다.

‘어서어서’를 닮은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지 음, 비채 펴냄).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자 여름에 읽었을 때 즐거움이 배가된다. 건축물이 눈앞에 보이는 듯 섬세하고 꼼꼼한 묘사가 특히 좋았다. 잔잔하고 따듯한 책의 전반적 분위기가 경주와도 닮았다.

추천 동선 서점 주변으로 자랑하고 싶은 카페가 많다. 커피계의 교수 님으로 불리는 정동욱 대표가 운영하는 ‘커피플레이스’는 출근 전 늘 들르는 곳이다. 다채로운 유럽식 빵을 소개하는 ‘TAK’, 호주식 브런치 카페 ‘너드’도 훌륭하다. 집중해서 독서하고 싶을 때는 ‘가배향주’를 강력 추천한다.


고양이회관

고양이를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김미진 대표가 운영하는 통영에 대안마을의 따뜻한 서점.

왜 책방인가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온 주민이 함께 고양이를 보살폈다. 성인이 된 후 도시를 옮기며 이유 없이 미움을 받고 물건처럼 거래되고 쉽게 버려지는 고양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들이 덜 상처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양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책 작가가 됐다. 글과 그림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라는 매체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공간을 구성하게 됐다.

큐레이션 기준 고양이와 관련한 책을 먼저 살핀다. 그림책, 소설, 에세이, 시집, 사진집 등 고양이 관련 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스스로를 다그치는 마음 없이 작은 행복과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마음에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별한다. 책장 한구석에는 주인장의 은밀한 취향이 담긴 크리처물도 존재한다. 은근히 이 코너를 반기는 손님도 있다.

시그너처 프로그램 ‘따뜻한 중고 서점’이 대표적이다. 손님에게 기증받은 책을 판매하는 책장을 따로 마련해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수익금 전액은 고양이 보호소에 기부한다. 기부에 동참하고 싶다며 ‘고양이’라는 이름의 저금통을 만들어 용돈을 모은 어린이 손님을 볼 때면 손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소중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 나아갈 힘을 얻는다.

왜 통영인가 통영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잠시 다른 도시에서도 지내봤지만, 아름답고 포근한 통영 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자연스레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고, 마을 회관이 버려진다는 소식에 이곳을 리모델링해 마을 사람과 고양이가 쉬어 갈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고 싶었다.

‘고양이회관’을 닮은 책 <주말엔 숲으로>(마스다 미리 지음, 이봄 펴냄).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한 친구의 집을 방문한 세 여자의 일상이 담긴 만화책이다. 이 책에는 고양이회관이 전하고 싶은 휴식이 담겼다. 특히 겨울 숲을 산책하던 중 물파초를 발견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 집중해보길. 다른 이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핀 꽃을 보며 덤덤히 주고받는 대화는 삶의 어떤 방식에도 ‘괜찮다’라는 위로를 전한다.

추천 동선 고양이회관과 함께 ‘고양이학교’도 방문해보길. 통영의 작은 섬 용호도의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가 폐교되면서 이곳을 리모델링해 고양이 보호소인 고양이학교로 문을 열었다. 배를 타고 고양이가 가득한 학교로 떠나 섬마을 풍경을 즐기고 사랑이 그리운 고양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소한 책방

평범하고 소소한 위로를 전하는 대구의 작은 책방.

왜 책방인가 인생의 신념과 계획이 우르르 무너져 무기력하던 때, 내게 행복과 편안함을 주던 걸 되돌아보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연상됐고, ‘내 행복을 찾자’는 마음으로 책방을 떠올렸다.

큐레이션 기준 우리 주변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가 담긴 책. 요리와 음악, 미술, 영화처럼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예술 서적은 큰 고민 없이 입고하려는 편이다. 요즘은 요리 서적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해외 서점은 요리책이 메인 서가에 위치하기도 하는데, <흑백요리사> 열풍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민족의 미식 사랑 역시 대단하다. 음식이 주는 위로를 책으로 전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시그너처 프로그램 책 읽기가 어렵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이드가 되는 독서 모임과 맥주를 마시며 일상을 공유하는 ‘비어 데이’를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책과 책방의 문턱을 낮추고 독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왜 대구인가 대구 밖에서의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고향을 넘어 이 도시를 사랑한다. 책방을 열기로 하고, 독서 후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내당동을 택했다. 내당동은 두류공원과 가깝고 메인 상권인 동성로와 멀어 월세 역시 합리적이었다.

‘사소한 책방’을 닮은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다. 글에는 동생을 향한 미안함과 자책, 우울함과 부정적인 마음이 담겼지만 그림을 통해 희망을 보여준다. 고흐는 전시를 열었다 하면 ‘피케팅’을 해야 하는 예술가가 되었지만, 생전의 그는 우울과 가난으로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인생의 힘든 시기에 이 책을 만났고 큰 힘을 얻었다. 사소한 것을 모아 위로와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우리 책방의 모토와 잘 어울리는 책이다.

추천 동선 ‘레이즈 커피’와 ‘FFS’를 추천한다. ‘레이즈 커피’는 맛집으로 유명해 주변 직장인의 필수 코스가 되었고, ‘FFS’는 하나의 예술품 뺨치는 디저트를 만든다. 우리 책방과 협업을 진행한 1인 빵집 음믐빵집과 플라워 숍 일화스튜디오 역시 유명 매장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곳이다.


작업책방 씀

두 작가의 작업실이자 짙은 취향이 가득한 망원동의 읽고 쓰는 공간.

왜 책방인가 윤혜은 대표와 나는 2017년 블로거와 독자로 베를린에서 처음 만난 이후, 서울에서 가까워졌다. 2018년 영화 전문 독립 서점 ‘영화책방35mm’를 2년간 운영했는데, 위치를 옮기고 싶을 때쯤 그에게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고 흔쾌히 수락해 ‘작업책방 씀(이하 씀)’을 열었다. 책방인 동시에 작업 공간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로로 긴 공간의 특성을 살려 반은 책방, 방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게 됐다.

큐레이션 기준 두 대표가 모두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다 보니 이왕이면 동료 작가의 신작을 적극 홍보하려고 한다. 나의 경우 다른 직업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직업인의 에세이에 관심이 간다. 혜은 작가는 청소년 소설을 쓰고부터는 청소년 소설의 비중이 높아졌다. 엄격한 기준은 없지만 이곳에서 우연히 좋은 책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큐레이션한다.

시그너처 프로그램 매달 작가 한 명을 선정해 그가 읽고 쓰는 공간을 책상 형태로 구현하는 ‘작가의 책상’ 전시가 열린다. 단순히 관람하는 것 이상으로 독자와 함께 참여하는 요소를 만들어 작가 개인의 경험이 독자에게 확장되도록 기획한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생일 책방’ 반응도 뜨겁다. 팬들이 책방을 대관해 ‘최애’가 읽은 책, 함께 읽고 싶은 책을 큐레이션하는 생일 축하 이벤트다. 사시사철 고요한 책방이 팬분들의 열기로 활기를 띤다.

왜 망원동인가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할 당시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했는데, 역에서 버스로 환승해야만 닿을 수 있는 위치였다. 서점은 다른 자영업과 달리 지속가능성에 있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향이 비슷한 사장님들과 힘을 주고받아야 하기에 위치 선정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씀’을 닮은 책 우리의 정체성은 역시 ‘쓰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혜은 작가가 에세이 <매일을 쌓는 마음>(윤혜은 지음, 오후의소묘 펴냄)을 추천하고 싶다. 씀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이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다.

추천 동선 ‘망리단길’에 위치한 카페 ‘평형’. 씀에서 구입한 책을 가져가 읽기에 여유롭고 고요한 카페다. 이곳에서는 우리 책방을 닮은 향초도 제작해 판매한다. 책과 큐레이션해 다양한 패키지로 엮거나, 북토크도 함께 운영해 우리 책방의 또 다른 면을 만날 수 있다.


달팽이책방

전시, 신문 발행, 독서 모임 등 책을 매개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포항의 문화예술 아지트.

왜 책방인가 유년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청년 몇몇이 모여 만든 음악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고, 훗날 고향으로 돌아와 그런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채 상경했다. 형태를 고민하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떠올렸고, 서점의 형태로 발전했다. 홍차에도 취미가 있어 책방 겸 홍차를 즐기는 찻집으로도 운영한다.

큐레이션 기준 달팽이책방은 인문학 중심의 단행본과 독립 출판물을 취합하고 있다. 인문학 단행본은 문학, 사회과학, 역사, 생태, 철학, 예술로 나눠 입고된 책과의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한 책을 고른다. 독립 출판물은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되도록 독립 출판계의 다양성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선정한다.

시그너처 프로그램 독서 모임과 책방 신문 발행, 전시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현재 독서 모임 6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손님이 기자로 참여하는 책방 신문 <달팽이 트리뷴>은 지난 12월 100호를 맞았다. 매달 무가지로 발행해 전국 동네 서점에 배포된다. 책방 안에 있는 작은 전시실에서는 손님, 작가 등과 함께 다양한 전시를 연다. 손님이 주체가 되어 책방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일상의 일부로 생각하며 머무는 걸 목격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왜 포항인가 포항 남구 효자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정해진 예산과 그에 맞는 장소도 효자동에서 발견했다. 이 작은 동네에서 없어도 그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필요한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곳에서 독서를 즐기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기쁨과 배움이 있기를 꿈꾼다.

‘달팽이책방’을 닮은 책 <인생샷 뒤의 여자들>(김지효 지음, 오월의봄 펴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 오월의봄에서 펴낸 책이다. 납작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는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20대 여성의 인생샷 문화를 입체적으로 담았다. 손바닥 크기의 일러스트 책 <소리를 들어보세요>(Taptaptoptop 지음, 솜프레스 펴냄)는 독서가 낯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을 펼칠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도 귀여운 그림이 다정한 위로를 건네니 접근하기 수월하다.

추천 동선 책과 함께 산책하기 좋은 곳을 추천하고 싶다. 책방 앞 도로를 건너면 철길숲 공원, 도보 15분 거리의 영일대 연못도 산책 동선으로 훌륭하다. 책도 읽고 흘러가는 구름, 오리 떼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책방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어린이 청소년 서점 ‘민들레글방’도 같이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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