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로 살아가는 법
민감한 게 아니라 섬세한 거예요! 초민감한 당신을 위한 생존 가이드.

감각의 결이 남다른 당신에게
혹시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는가? 대화하는 동안 친구의 기분 변화를 빠르게 눈치채곤 하는가? 사소한 말과 일에도 깊은 생각에 빠지고 피곤함을 쉽게 느끼는가?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가? 위의 말을 종종 듣는다면, 당신은 ‘초민감자(Highly Sensitive Person, HSP)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Elaine Aron) 박사가 정의한 초민감자는 주변 자극과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전체 인구의 15~20%가 이에 해당한다고. 심지어 인간뿐 아니라 동물 100여 종에서도 발견되는데, 아론 박사는 이를 ‘감각 처리 민감성(Sensory Processing Sensitivity, SPS)’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초민감자는 단순히 감정적 사람이 아니다. 성격이 아닌 신경계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외부 자극과 정보를 깊이 처리하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으로, 이들의 뇌는 일반 사람보다 더 철저히 분석하고 세심하게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공명이 강하며 무의식적으로 환경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한다. 피로를 쉽게 느끼고 지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깊이 더 오래 생각하는 사람
초민감자의 뇌는 단순히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의미와 맥락을 더 깊이 분석한다. 간단한 대화에서도 여러 층위의 의미를 해석하고 감정뿐 아니라 배경까지 고려한다. 빛과 소리, 냄새, 온도의 변화 같은 감각적 자극에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감정적 자극도 예민해 갈등이나 부정적 감정을 오래 곱씹는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초민감자는 거울 신경세포 시스템(Mirror Neuron System)이 더 활성화돼 감정 이입 능력이 탁월하다. 특히 감정적 공감과 반응성이 높은데, 타인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읽고 그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이로 인해 감정적으로 지치거나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들은 대화하는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톤, 분위기 등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를 즉각적으로 인지한다. 세부적 자극 감지력이 뛰어나 직관력이 높고 창의적 해결책을 잘 찾아낸다. 초민감자는 멀티태스킹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학습 속도가 느릴 수는 있지만 한번 배운 건 오래 기억한다.
초‘민감’자의 진짜 모습은?
‘민감’이라는 단어 때문에 예민한 성격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 평소 ‘무던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도 초민감자일 수 있다. “초민감자는 타인의 감정이나 기분에 큰 영향을 받음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행동을 애당초 지양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았을 때 무던해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의 저자이자 심리코칭센터 마음숲길 최재훈 대표의 설명이다. 이들에게 무던함은 관계 갈등을 원천 봉쇄하려는 강력한 동기에서 기인한 셈. 같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조성우 원장은 “우리가 살면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지니는 성격이나 기질, 성향 등이죠. 초민감자 역시 자신의 고유한 기질을 스스로 수용하고, 또 이를 포용해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겉으로 예민한 사람은 초민감자가 아닌 걸까?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는지 아닌지는 초민감자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MBTI 유형 역시 민감함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초민감자 중 내향형(I)과 외향형(E)의 비율은 7:3 정도지만, 이 기질은 독립적 성질이므로 내향형(I)이나 감정형(F)에게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자극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민감함이 약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조성우 원장은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감각적·정서적·사회적·인지적 등 스스로 어떤 부분에 민감한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해요. 같은 초민감자여도 민감한 부분이 다 다르거든요. 자신이 견디기 힘든 부분을 알고 피할 수 있는 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힘든 것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궁극적 대응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는 대인관계에서의 경계를 강조했다. 타인의 접근이나 침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정하고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힘든 상황이 예상된다면, 나는 어디까지 허용하고 거절할지 자신만의 선이나 한계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조성우 원장의 설명이다.
최재훈 대표는 초민감자의 스트레스를 덜어줄 인물상을 추천했다. 그는 어떤 일이든 제 몫을 다해 초민감자가 신경 쓸 일이 없는 사람, 정서적 안정성이 높아 감정 기복이 적고 일정한 기분 톤을 유지하는 사람,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혼자 있는 시간을 존중하는 독립적인 사람, 좋아하는 것이나 취향이 비슷해 심미안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권장한다고.
깊고 섬세해서 특별한 삶
초민감자로서의 삶이 버거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리듬과 감수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중요한 건 내 기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환경과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 자신의 리듬을 존중하고 특유의 감수성을 장점으로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다.
CHECK LIST
혹시 당신도 초민감자인가요?
▢ 나는 주변의 미묘한 것을 쉽게 인식한다.
▢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 나는 통증에 민감하다.
▢ 바쁘게 보낸 날은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들어 자극을 진정시킬 필요를 느낀다.
▢ 밝은 빛, 강한 냄새, 시끄러운 소리 등에 쉽게 피곤해진다.
▢ 카페인에 민감하다.
▢ 나는 풍요롭고 복잡한 내면 세계를 가지고 있다.
▢ 큰 소리에 불편함을 느낀다.
▢ 예술(미술, 음악 등)에 큰 감동을 받는다.
▢ 나는 양심적이고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 쉽게 깜짝 놀란다.
▢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일을 해야 할 때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 실수를 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릴까 봐 지나치게 걱정한다.
▢ 폭력적인 영화나 TV 장면을 피하려고 한다.
▢ 주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날 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 배가 고프면 기분이 나빠지고 주의 집중이 어렵다.
▢ 생활의 변화가 생기면 쉽게 동요한다.
▢ 섬세한 향기, 맛, 소리, 예술 작품 등을 즐기고 감상한다.
▢ 내 생활을 정돈해 소란스러운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 경쟁 상황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불안하거나 실수를 한다.
▢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민감하거나 내성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갈등 상황이나 타인의 감정적 고통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 어떤 사람을 만난 후 에너지가 지나치게 소모되거나 기진맥진한 느낌이 든다.
*위 문항 중 13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초민감자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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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 정원영
- 도움말
- 조성우(같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튜브 <쿠크닥스>), 최재훈(심리코칭센터 마음숲길 대표,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저자)
- 참고서적
- <나는 초민감자입니다>(주디스 올로프, 라이팅하우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최재훈, 서스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