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없는 세상

뭐 하나만 주문하려고 해도 입이 아닌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세상. ‘컨택리스’의 시대라지만 정말 모두에게 괜찮은 걸까?

다시 현금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주차 대행료 때문이냐고? 아니다. 바로 키오스크 때문. 예를 들어 공차의 키오스크는 영원히 화면을 터치해야 하는 형벌을 받은 느낌이다. 당도, 얼음 등을 세심히 골라야 하는 키오스크 특성상 많은 터치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우롱티 밀크폼, 당도 30%, 얼음 보통으로 주세요”라는 말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옮기는 데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터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화면과 SKT 멤버십 할인을 받기 위해 바코드를 열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스캔을 시도하는 과정은 또 어떤가. 이 기계는 한 번도 내 SKT 바코드를 제대로 인식한 적이 없다. “현금으로 주문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힘겹게 공차 최애 메뉴인 우롱티 밀크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혼자 가서 내 것만 주문할 때는 좀 낫다. 넷만 모여도 키오스크 앞은 지체된다. 어제는 투썸플레이스에 갔다. 새로 나온 딸기쥬스를 먹고 싶은데, 어느 페이지에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작년에도 시즌 메뉴를 못 찾아 물어봤더니, 우리 매장에서는 재료가 소진되었다고 했다. 아, 밖에 붙은 포스터 보고 들어왔는데…. 유인 주문이 가능했다면 바로 알았을 문제다. 내 뒤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들이 서너 명이나 있을 때는 더 곤혹스럽다. 미안합니다!

이런 일들은 어디에나 있다. 요즘은 공항이나 고속터미널에서도 키오스크를 써야 하고, 관공서도 그렇다. 버거킹,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에서 시작된 키오스크는 어느새 우리 일상을 점령하고야 말았다. 회사 앞 인기 쌀국수 가게는 주문은 물론, 계산까지 각 테이블에 설치된 티오더를 써야 한다. 제법 가격이 있는 식당에서도 마찬가지. 두산매거진 근처 도산공원 일대는 파스타 한 그릇에 2만8000원, 젤라토 한 컵에 7000원을 호가하는데, 이제 키오스크 주문만 받는다고. 물론 인건비와 재료비, 물류비까지 모든 비용이 치솟는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며, 다양한 고객을 마주하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고충도 이해 된다. 그러나 매장이 더없이 한가로운데 잘 눌러지지도 않는 키오스크를 꾹꾹 누르고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회의감이 몰려온다. 현금만이 키오스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싶어 현금을 꺼내 들어도, “저희 매장은 캐시리스 매장입니다”라는 말 앞에서는 또 패배다.

키오스크(Kiosk)가 튀르키예어라는 걸 아는지. 본래 신문과 과자 등을 파는 간이 판매대를 일컫는 말로, 작년 에르메스 키오스크 행사는 그런 키오스크의 어원을 충실히 따라 진행되었다. 지금 키오스크는 무인 주문 기기를 지칭한다. 예전에는 일본 라멘집에서나 볼 수 있던 키오스크는, 디지털 기기 보급과 팬데믹 시기를 거쳐 폭증했다.
키오스크의 장점은 무엇일까? 토스 키오스크는 ‘사장님’께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사장님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요” “가게 운영에 드는 비용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주문받는 용도 외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요” “대면 주문이 어려운 고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주문 실수가 줄어 고객에게 더 빠르고 정확하게 서비스할 수 있어요” 등등. 고객 입장에서는 말을 하지 않고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일 것이다. 

내가 키오스크를 기피하는 건 ‘귀찮음’ 때문이지만, 이 키오스크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도 있다. 요컨대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이다. 디지털 기기 작동을 어려워하는 노년층, 어린이,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서울시디지털재단은 ‘2023년 서울시민디지털역량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 19세 이상 서울 시민 고령층 2500명, 장애인 500명 등을 포함한 총 5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지난해 서울 시민 10명 중 8명은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만 55~64세는 79.1%, 65~74세는 50.4%가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장애인 키오스크 이용 경험은 58.9%다. 이에 정부에서는 디지털 약자를 대상으로 한 키오스크 사용 교육을 펼칠 정도. 디지털 기기 사용 경험이 적은 어르신은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53.6%)를, 장애인은 ‘사용 중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다는 점’(63.6%)을 키오스크 이용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약한 사람의 마음은 더욱 약한 법이다. 복잡한 키오스크를 마주한 내가 키오스크 자체를 원망한다면, 이들은 나이 든 자신, 또는 몸이 불편한 자신을 탓하면서 키오스크 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걱정이 된 나는, 어느 날 아빠에게 키오스크 쓸 줄 아시느냐고 물었다. 황당하다는 듯 자기를 뭘로 보느냐는 답변. 맞다, 아빠는 엔지니어 출신이었지. 그런데 엄마는 달랐는데, 애초에 노인들은 이런 걸 할 줄 모르고 잘 다루지 못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다며 지레 포기한 게 딱 신문에 나오는 그런 시니어의 모습이었다. 특히 노년층은 실제로 눌리는 버튼식이 아닌 터치 방식 자체를 어려워한다. 나 역시 배스킨라빈스에서 손주의 아이스크림을 사주기 위해 온 할머니를 도와드린 적이 있고, 고속터미널이나 공항에서 예약한 티켓 등을 발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도와주는 직원이 없어 타인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는 거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 ‘리테일 무인화, 임계점이 다가온다’에 따르면, 국내 보급된 키오스크 대수가 상당하고, 이로 인해 디지털 격차가 벌어지고 누구나 쉽게 일할 수 있는 저숙련 노동 수요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구매 과정에서 서비스 비용이 고객에게 전가되는,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비생산 노동인 ‘그림자 노동’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키오스크가 우리 삶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 조금은 문이 열려 있길 바라본다. “키오스크로 주문하실래요? 직원에게 주문하실래요?” 선택할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공평하고 다정한 사회가 될 테니까.

    일러스트레이터
    신연철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