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새롬, 퇴사 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퇴사하는 게 말이 돼? K-뷰티 브랜드 ‘롬앤’의 롬이자 파운더인 민새롬이 회사를 떠났다. 그가 2000억원대 매출을 뒤로하고 새롭게 걸어가는 길.


<얼루어>에 가장 먼저 퇴사 소식을 알렸다. 많은 이들이 놀랄 소식이다.
도전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딱 지금이, 내 나이가 새롭게 도전하기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덕으로 시작해 블로그도 했고, 유튜브도 했고, 브랜드에도 있어봤다. 이런 경험을 발판 삼아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것을 잘 써먹을 수 있고,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우연한 기회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롬앤’을 더 크게 키워보겠다는 마음을 놓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롬앤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는 브랜드일 거다. 하지만 한 브랜드에 소속되어 새로운 걸 도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을 해도 롬앤의 롬이라는 이미지가 입혀지니까. 변화가 필요했다.
새 회사 이야기가 듣고 싶다.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회사 이야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입버릇처럼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컴퓨터 뒤에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다. 운명처럼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새로운 회사 뷰블(Beaubble)의 대표다. 회사 사람들도 내가 성장하고 싶은 부분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더라. 뷰블은 ‘전 세계 코덕의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미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궁극적으로는 뷰티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사람을 서로 연결하고, 상상만 하던 브랜드와 제품을 현실에 내놓을 수 있도록 돕는 글로벌 뷰티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한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는데, 나와 같은 ‘찐코덕’이거나 코덕이었던 사람 그리고 테크에서 일하던 커뮤니티 덕후들이다. 배민, 무신사, 넥슨, NHN 등 테크 팀의 전 직장도 화려하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회사라고 생각했다. 신기한 건 유튜브 창업자 중 한 명이 뷰블의 투자자더라. 지금 우리는 덕질하는 코덕에게 덕질로 밥 먹여줄 수 있는 재미난 일을 기획 중이다.
롬앤 파운더로 10년, 직급도 입지도 혜택도 많았을 텐데 스타트업에서의 새 출발이 불편하지는 않나?
(웃음) 왜 웃냐면 롬앤도 사실 스타트업에서 시작했고, 아직까지 수평적인 문화라서 유리방이나 법인 차량 그런 건 없다. 부사장님이 식당에서 숟가락 놔주시고 그런다. 그래서 불편한 게 전혀 없다.
이직은 처음이지 않나?
처음이지만 워낙 사람들과 잘 맞아서 적응 기간이 필요 없었다.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는 사람들이 환영해주었다. 다들 경력이 화려하고 이미 어느 정도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분들인데 배움의 의지가 크다.
민새롬도 성공한 여자이지 않나. 성공한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이라니 기대된다. 조금 다른 이야긴데 예상한 것보다 검소해 보인다. 옷차림도 수수한 걸 즐기는 것 같고.
물욕이 좀 없는 편이다. 집중하는 게 있다면 집과 내 몸이다. 인테리어에 좀 관심 있고, 마사지 받는 거 좋아한다. 그리고 먹는 것! 생각해보니 물욕이 잠깐 생겼던 때가 있다. 롬앤이 적자였다가 2020년쯤 흑자로 전환하게 됐는데, 그때 돈을 좀 벌면서 1년 정도? 그때 처음 명품 백도 사봤다. 샤넬 클래식 백.
1년 지나서 명품 소비를 멈춘 이유는? 무뎌졌거나 회의가 들었거나?
안 들게 되더라. 샤넬 백을 산 이유는 치기 어린 마음에 이제 내가 돈도 잘 벌고,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티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가방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티를 낼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이룬 것에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면 그런 게 필요 없어진다.
집과 인테리어 외 민새롬의 관심사가 또 있나?
예전엔 화장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화장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더 많고, 그런 사람을 보는 게 행복하다. 화장품을 덕질하는 코덕에서 코덕을 덕질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본인의 집에서 본인의 옷을 입고, 본인이 메이크업을 하고 촬영했다. 스스로를 정의한 느낌이 어떤가?
15년 전,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나를 더 많이 드러냈다. 자취방도 공개하고, 학교의 내 자리 같은 사소한 것들을 올렸는데 브랜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조심스러워지더라. 그래서 그대로의 나를 보여준 건 오랜만이다. 덕분에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퍼스널 컬러 트렌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퍼스널 컬러’에 그다지 관심 없을 때 책도 냈으니까.
블로그가 정점에 달할 무렵 책을 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살색’에 좀 꽂혀 있었다. 뭐 하나에 관심을 가지면 끝장을 보는데, 대상이 살색이었다. 퍼스널 컬러에 대한 관심은 ‘사람마다 살색이 다 다른데 왜 그 크레파스에 있는 색을 살색이라고 하는 걸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거다.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졸업 작품도 살색에 관한 그림이었다. 살색은 정의할 수 없는 색이다. 자연스럽게 살색에 따라 어울리는 색이 다른 걸 알았고, 퍼스널 컬러의 개념을 혼자 연구하다 책도 낸 거다. 벌써 10년 전이다.
또 책을 내고 싶나?
일단은 없다. 책 내는 거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인생에 한 번쯤은 또 내고 싶을 것 같기도.
뭐든 끝나고 나면 정리가 되지 않나. 블로거, 유튜버, 롬앤 파운더로 연매출 2000억원을 찍었는데,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도파민이 가장 솟구친 일은?
사실 너무 많다. 아! 롬앤이 망할 뻔할 적이 있다. 처음 1년은 인플루언서인 민새롬의 인지도가 있으니까 반짝 팬분들이 관심을 가져줬는데, 그 후로 하향세였다. 잠깐 정신줄을 놓았던 것 같은데, 매출이 바닥을 치더라. 정말 ‘아, 이름 걸고 브랜드 만들었는데, 이렇게 인생 망하나 보다’ 했다. 그러다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리브랜딩을 시작했다. 그게 통했다. 빨강머리앤이랑 협업했는데 그게 정말 잘됐다. 그러면서 점점 풀리더라.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내 생일이었다. 론칭 전날 제품 소개하는 영상을 밤새워서 편집하고 딱 업로드를 마쳤는데, 잘될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적중했다.
반대로 아쉬웠던 커리어는?
당연히 성적이 잘 안 나온 것도 있지만, 그 경험으로 배운 게 있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이번 도전도 실패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패해도 괜찮다.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다. 모든 면에서 그런가?
엄마한테 배운 거다. 아직도 강렬하게 남은 기억의 조각이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일 거다. 소풍을 갔다 왔는데 엄마가 “소풍 어땠어?”라고 물었다. 내 답은 가장 별로라고 느낀 상황과 불만들이었다. 친구가 휘두른 신발주머니에 맞았고, 버스 안이 너무 더웠고 등등. 그런데 엄마가 “새롬아, 좋은 것부터 이야기해야지”라고 하셨다. 그게 충격이었다. 깨달음이 있었던 거 같다. 분명 그 소풍은 좋았는데, 불평을 함으로써 하루가 안 좋게 포장될 수 있음을 알았다. 롬앤에서 일한 10년도 사실 별로였던 점은 많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먼저 하면 결론적으로 좋은 게 되는 것 같다.
유튜브는 계속할 예정인지.
꾸준히 할 건데, 방향성이 달라질 것 같다. 지금 ‘개코의 오픈 스튜디오’는 민새롬이라는 인물 중심이지 않나. 앞으로는 콘텐츠 중심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게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까지 쉰 적은 없다. 번아웃 온 적은?}난 없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있었다고 한다. 가까운 동료나 남편이 그렇게 말한다. 난 정말 기억이 없는데. 내가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긴 한 것 같다. 쉬는데 욕심도 없다. 오히려 쉬면 생각이 많아져서 안 좋은 것 같다.
일을 계속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 운동이나 식단 등 건강을 위한 습관이 있다면?
잠! 10시간은 자야 한다. 지금 회사 대표한테도 이건 확실히 이야기했다.(웃음) 그리고 탄수화물!
여기서 탄수화물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예민하게 굴지 않는 이유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몸매 관리를 안 하니까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성격도 유연해졌다.
그래도 영상 촬영을 하는데, 자기 관리를 놓을 수 있다니 의외다.
누가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에 의미도 두지 않고. 내 코어는 예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스킨케어도 특별히 하지 않고, 시술도 전혀 하지 않는다.
블로거, 인플루언서, 브랜드 파운더까지 뷰티 업계에서 두루 활약했다. 앞으로 이 업계에서 뭔가를 시작하거나 성장을 원하는 이들에게 조언해줄 것이 있나?
잠과 탄수화물을 챙겨라. 너그러워질 것이니.(웃음)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리고 사람을 관찰하라고 하고 싶다. 또 뭔가를 만들 거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 근데 계속 그러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으니까. 5번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 1번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적절히 섞어서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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