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 어디까지 알고 있니?

친환경 소재, 탄소중립, AI 서포트, 순환 경제까지. 지속 가능한 패션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을까?

거대한 옷더미가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뒤덮고, 호주의 오페라하우스를 집어삼킨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는 이 충격적인 AI 영상으로 경각심을 일으킨다. 유엔환경계획기구에서 의류산업이 전 세계 탄소 배출의 10%를 차지한다고 발표한 것만 봐도 지속 가능성은 패션업계에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키워드다. 친환경 소재 사용과 탄소중립 선언, 디지털 기술의 융합, 순환 경제 시스템까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재고 소각 등 불명예 관행을 뒤로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브랜드들의 행보를 살펴보자.

친환경 소재 Version 2025

지속 가능한 패션의 핵심은 무엇보다 소재 혁신. 그중 두드러진 움직임은 페트병과 재생 섬유의 상용화다. 대표적으로 미국 스타트업 앰버사이클은 폐폴리에스터 섬유를 화학적으로 재활용한다. 이들은 자라의 모회사인 인디텍스와 1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가니와는 재생 폴리에스터인 사이코라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4년간의 계약을 체결했다. 프라다는 이미 이 분야의 선구자다. 섬유 생산 업체 아쿠아필과 낚시 그물, 바다 플라스틱 등을 정화해 에코닐 나일론을 개발했다. 기존 의류나 폐기된 원단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제작하는 업사이클링은 코치의 서브 브랜드인 ‘코치토피아’에서 빛을 발한다. 기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가죽 잔여물을 재사용한 컬렉션은 환경 감수성 높은 젠지의 호응을 얻었다. 

한편 지속 가능성의 아이콘 스텔라 매카트니는 폐양털로 캐시미어 니트를 만들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한 숲에서 비스코스를 얻으며, 남은 폴리에스터와 나일론을 고품질 섬유로 재생산한다. 심지어 럭셔리 업계 최초로 재생 농업에 뛰어들었다. 이는 생물다양성을 늘리고 탄소를 격리해 토양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결단이 엿보인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식물 기반 신소재의 의류 적용에도 앞장섰다. 버섯 뿌리 균사체에서 추출한 대체 가죽 소재 마일로(현재 자금난으로 생산 중단)와 미럼 등의 패션계 도입에 기여한 것. 새 컬렉션도 식물 균사체로 만든 대체 가죽 야타이 엠으로 재킷을 만들고,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피냐얀과 계피 폐기물로 만든 바이오시르 플렉스 소재로 스니커즈를 선보이며 혁신을 이어간다. 

연간 전 세계 468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가죽 시장은 환경오염과 동물권 문제로 점점 더 비판받고 있다. 이에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가죽 사용을 대체할 ‘게임 체인저’로 혁신적인 소재를 도입하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에르메스는 버섯 뿌리 균사체에서 추출한 대체 가죽 레이시를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 실바니아를 개발, 이를 캔버스에 결합한 ‘빅토리아 백’을 선보였다. 또 자투리 가죽과 버려진 실크 스카프를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Petit H’도 운영하고 있다. 케어링과LVMH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구찌는 2년간의 연구 끝에 최대 77%의 식물성 원료를 함유한 대체 가죽 소재인 데메트라를 개발했다. 비스코스, 목재 펄프, GMO 없는 바이오 기반 폴리우레탄으로 제작된 이 소재는 구찌 스니커즈에 적용된다. 

또한 고객이 오래된 제품을 가져오면 수선 및 재판매 가능한 형태로 리디자인하는 서큘러 라인도 선보인다.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LVMH가 눈여겨보는 건, 생분해성 대체 가죽 천연 소재인 미럼이다. 광물, 천연고무, 농업 폐기물로 만드는 이 소재를 적용하기 위해 미국 재료과학 기업 내추럴 파이버 웰딩과 협력 중이다. 루이 비통은 가죽 태닝 시 암 유발과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알려진 크롬염을 배제한 베가 공정을 도입하며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데 앞장선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는 최근 개발 중인 친환경 소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비건 가죽은 내구성 때문에 플라스틱 변형 소재인 폴리우레탄이 섞이곤 한다. 이를 해결하고자 전 세계의 스타트업이 버려지는 새우 껍데기를 활용한 톰텍스, 포도 껍질로 만드는 비제아 같은 신소재를 개발 중이다. 이들 모두 진짜 가죽과 합성 가죽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100% 완벽한 친환경 소재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생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는 덧붙여 말한다. “대체 가죽 개발은 동물 윤리적 측면뿐 아니라, 탄소발자국과 수질오염 감소에도 기여한다. 전통 가죽 생산과정에서 노동 착취가 빈번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의의는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탄소중립 선언

패션의 핵심인 소재 혁신을 넘어, 폭넓은 지속 가능성 실천의 일환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한 패션 브랜드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운영, 공급망 및 제품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모든 브랜드는 매장, 사무실, 작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지향한다. 하지만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전체 배출량의 최대 90%를 차지하는 공급업체와 원자재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 브랜드는 실제 배출량 줄이기에 집중하지만, 버버리와 샤넬은 탄소 상쇄에 투자하고 있다. 반면 구찌와 스텔라 매카트니는 탄소의 자연적 흡수를 위한 재생 농업을 개척하고 있다. 

AI와 패션의 만남

오픈 AI와 딥시크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을 기억하는지? 패션계에서도 AI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반가운 점은 이 만남이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에 기여한다는 사실! AI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다. 자라의 모회사 인디텍스는 온라인과 매장별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자체 시스템을 개발해 AI를 활용, 재고 및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글로벌 SPA 브랜드H&M은 AI 기반 트렌드 분석 플랫폼 휴리텍(Heuritech)과 협력한다. 이 플랫폼은 소셜미디어 이미지와 텍스트를 분석해 최대 1년 앞선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며, 브랜드가 팔릴 제품만 생산하도록 도와 재고와 폐기물을 줄인다. 고무적인 점은 패스트 패션뿐 아니라 루이 비통,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도 휴리텍의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여기서도 한발 앞선다. 그는 구글과 협업해, AI로 원자재 공급망의 탄소발자국을 분석하고 최적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는 의류 생산의 첫 단계부터 지속 가능한 방식을 실현하기 위해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다. 스텔라 매카트니만큼 이 분야에 진심인 이들이 있으니, 바로 파타고니아다. 이들은 2009년 월마트와 함께 설립한 지속 가능한 의류연합 캐스캐일(Cascale)에 AI를 접목해, 기업과 제품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히그 지수(Higg Index) 분석에 활용하고 있다.

AI 패션은 고객의 체형, 스타일, 선호도를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소비자의 과거 구매 데이터와 브랜드별 사이즈 차이를 분석해 최적의 의류 사이즈를 추천하는 ‘트루 핏(True Fit)’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 3D 스캐닝 기술과 AI 알고리즘으로 체형을 정밀 측정해 완벽하게 맞는 청바지를 맞춤 제작하는 ‘언스펀(Unspun)’이나, 센서 내장 의류로 수집한 신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의류를 제안하는 일본의 ‘조조(Zozo)’는 반품률을 줄여 불필요한 생산을 방지하며 지속 가능한 패션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더 나아가 AI는 디자이너의 창작 영역까지 넘보는 중이다. 온라인에서 사용자가 입력한 취향을 분석해 개인 맞춤 스타일링을 제안하고, 해당 상품을 배송하는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AI 기반 패션 큐레이션의 대표 사례다. 한편, 어도비와 타미 힐피거가 협력해 선보인 ‘AI 패션 디자이너’ 프로젝트는 AI가 패션 아이템을 디자인하며 창의성과 기술의 융합을 입증했다.

순환 경제: 렌탈과 중고 패션 플랫폼

“적게 구입할 것, 신중히 선택할 것, 잘 관리할 것!” 지속 가능한 패션의 선두 주자 중 하나였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이 말을 기억하는지? 그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렌탈 사업에 관심을 가졌을 거다. 아이템의 수명을 연장하는 렌탈과 중고 패션 플랫폼은 새로운 시대의 지속 가능한 패션을 상징하니까.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는 프라다, 구찌, 셀린느 등을 포함한 아이템 수천 개를 월 구독제로 대여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미국 패션 렌탈 서비스다. 2021년 뉴욕 증시에 상장한 이들은 AI 추천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렌탈 서비스도 강화할 예정이다. 한국의 ‘클로젯 셰어(Closet Share)’는 국내 최초의 개인 간(P2P) 의류 렌탈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월 구독제로도 이용할 수 있는 클로젯 셰어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MZ세대가 선호하는 패션 브랜드의 의류와 가방도 빌릴 수 있다.

지속 가능성과 순환 경제를 논할 때 중고 패션 거래 플랫폼은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와 미국의 ‘리얼리얼’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다루며 철저한 정품 검수 시스템을 통해 이 분야의 대표적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고 패션 플랫폼이 지난 몇 년간 주목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트렌비는 정품 검수 AI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네이버 소속의 시크와 크림은 전문가 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번개장터는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고, 크로켓(Croket)은 MZ세대를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자체적으로 중고 리세일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스텔라 리세일’ 프로그램은 구매 후 일정 기간 내에 브랜드가 직접 중고 제품을 재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파타고니아는 미국에서 ‘원 웨어(Worn Wear)’라는 리세일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가 자사 제품을 중고로 거래할 수 있게 했으며, 소비자가 오래된 제품을 반납하면 수선 후 재판매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 중이다.

이처럼 지속 가능성은 이제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패션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는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혁신적인 기술과 지속 가능한 원자재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소비자 역시 책임감 있는 선택으로 이런 변화를 앞당기고 있다. 이제 우리가 입는 옷은 단순한 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Louis vuitton
탄소중립 목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55% 감소. 2050년까지 0% 달성. 현재 진행 상황 작업장과 물류 사이트 71%가 재생에너지로 운영. 세부 내용 화석연료 기반 포장 단계적 폐지.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

Gucci
탄소중립 목표 2018년 탄소중립 달성. 2050년까지 0% 달성. 현재 진행 상황 2015년 이후 공급망 전반에서 탄소 배출량 37% 감소. 재생 농업에 대한 투자. 매장과 사무실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 세부 내용 자연 기반 솔루션을 통해 탄소 배출 상쇄.

Burberry
탄소중립 목표 2025년까지 직접 배출량 95% 감소. 2040년까지 0% 달성. 현재 진행 상황 직접 배출량의 탄소중립 달성. 원자재,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배출량 25% 감소. 세부 내용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지를 100% 대체. 전 세계 매장과 사무실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

Chanel
탄소중립 목표 2030년까지 모든 범위에서 탄소 배출량 50% 감축. 2040년까지 0% 달성. 현재 진행 상황 2018년 기업 사용 에너지의41%를 재생에너지로 대체. 현재 100% 대체. 세부 내용 탄소 상쇄 프로젝트에 투자. 지속 가능한 재료로 포장 대체.

Prada
탄소중립 목표 2026년까지 배출량 29% 감소. 2050년까지 0% 달성. 현재 진행 상황 전 세계 매장과 사무실의 85% 재생에너지 사용. 지속 가능한 재료로 포장 대체. 세부 내용 해양 폐기물에서 재생된 나일론을 사용하는 ‘리-나일론’ 프로젝트 진행.

Stella Mccartney
탄소중립 목표 2040년까지 0% 달성. 현재 진행 상황 재생 농업을 채택한 최초의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 완전 비건이며 동물실험을 하지 않음. 세부 내용 마일로와 같은 바이오 기반 소재 사용. 탄소 포집과 재생 농업 프로젝트.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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