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살냄새에 지쳤어?

한동안 탐닉했던 살냄새 향수,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화장대 위 잠자고 있는 개성 있는 향에 다시 눈을 돌려볼 것.

히어로 향수의 탄생

사람들은 각기 다른 향수 취향을 갖고 있다. 바닐라부터 머스크, 깨끗한 비누, 포근한 파우더, 달콤한 향 등 선호하는 향도 다양하다. 만일 미국에서 우디 향에 장미가 가미되었거나, 쌉쌀한 핑크페퍼에 붓꽃이 섞인 향기를 풍기는 사람을 만난다면 글로시에(Glossier)의 ‘유(You)’ 향수를 사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20초마다 하나씩 팔린다는 ‘유’는 글로시에의 효자 제품으로, ‘궁극의 퍼스널 향수’라는 광고 문구처럼 살냄새 같은 자연스러운 향이 특징이다. 샤넬의 ‘N°5’나 티에리 뮈글러의 ‘엔젤’ 향수처럼 2017년에 출시된 ‘유’도 시대를 대표하는 향수로 자리매김했다.

살냄새의 시대가 열렸다

글로시에는 향수 시장의 판도를 제대로 흔들었다. 작은 인디 브랜드부터 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브랜드까지 앰버·머스크·우드를 주 노트로 한 살냄새 향수를 잇달아 출시하며 트렌드를 주도했다. 덕분에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은은한 계열의 향수도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63년에 선보인 키엘의 ‘오리지널 머스크’ 향수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로 스타덤에 오른 사라 제시카 파커의 이름을 딴 ‘사라 제시카 파커 러블리’ 향수가 그것.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성이 뚜렷한 향수마저 점점 단조로워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원래 구르망 향수는 달콤한 디저트를 연상시키는 바닐라 향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우유 향과 고소한 쌀 향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향수가 살냄새처럼 변해가니 향수 애호가로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변화다.

살냄새 그다음은? 

최근 향수 광고를 보면 ‘살냄새’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잘 팔리니까! 청바지의 유행이 타이트한 스키니진에서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로 변하듯 향수 트렌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조르지오 비버리 힐즈의 향수나 디올 포이즌 라인의 향수처럼 진하고 관능적인 향이 히트를 쳤다. 이와 반대로 1990년대에는 산뜻하고 가벼운 향수가 대세였다. 대표적으로 캘빈 클라인의 ‘CK One’과 이세이미야케의 ‘로디세이’가 있다. 2010년대에는 달콤한 프루티 노트와 숲속을 연상시키는 스파이스 향이 성행했다.

향수의 흐름을 크게 봤을 때, 강렬한 향수가 유행하면 잔잔한 향기가 다음 주자로 등장한다. 르 라보의 ‘상탈 33’처럼 존재감 있는 향수가 한동안 대중의 코를 즐겁게 했으니, 무난한 살냄새 향기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과거에는 유명 브랜드에서 한 해에 출시하는 향수가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눈 깜짝할 새에 향수 수백만 개가 쏟아지는 중! ‘유’의 대성공에 자극받은 다양한 향수 브랜드는 그와 유사한 향의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며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 중이다. ‘상탈 33’이 인기를 끌었을 때, 바닐라 노트의 향수가 연이어 출시된 것과 같은 흐름이다. 틱톡과 유튜브가 일상에 스며든 요즘 우리가 트렌드의 흐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대세에 편승하는 브랜드의 전략은 나름대로 효과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너도나도 살냄새 향수를 뿌리니, 이제는 그 익숙한 향기에 코가 지쳐버린 느낌이랄까?

새로운 후각적 자극이 필요해

머스크 향과 N°5 같은 청량한 비누 향의 광팬인 만큼, 나 역시 살냄새 향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향수가 비슷해지는 건 반대다. 같은 제품이라도 자신의 피부에 맞게 향이 변한다는 뻔한 소리도 이젠 지겹다. 사실 모든 향수는 원래 그런 작용을 하니까. 단조로운 살냄새 향수는 후각을 자극하지 못하는 반면, 개성이 강한 향수는 새로운 향을 발견하는 재미를 선사하며 코를 환기시켜준다. 니치 향수 브랜드 어 랩 온 파이어(A Lab On Fire)의 ‘앤드 더 월드 이즈 유어즈(And The World is Yours)’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포도맛 막대 사탕 같은 장난스러운 향이 코를 강타한다. 다소 달콤한 향기가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편안한 네롤리 노트의 바닐라 향으로 변해간다. 그 잔향에 반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람들은 같은 향기에도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린다. 누군가에게는 재스민의 꽃향기가 감미롭게 느껴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불쾌한 냄새로 인식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특정 향기에 자석처럼 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썩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각자가 다른 후각을 지녔기에 선호하는 향기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 딱 맞는 향수를 찾는 과정은 단순한 쇼핑을 넘어 나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이러니 살냄새 향수보다 개성이 뚜렷한 향수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향수 왜 뿌리세요?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그날의 기분이나 나라는 사람을 향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진짜 ‘살’냄새보다는 고급스럽고 부유한 향기가 났으면 한다. 사람들이 좋은 향기에 나를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존재감이 느껴지는 확실한 향기를 풍기고 싶고, 자리를 떠나는 길에도 발걸음을 따라 향기의 자취가 오래 남으면 좋겠다. 상대방에게 나를 향기로 각인시키기 위해선, TPO에 맞게 향수를 다르게 선택하는 것이 포인트. 연인과 함께하는 저녁에는 섹시하고 극적인 향을 풍기는 샤넬의 ‘코코’나 ‘파리 파리’를 뿌린다. 캐시미어 스웨터를 꺼내 입을 계절이 되면 키프로스섬과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시프레 계열의 향수가 눈에 들어온다. 가장 애용하는 시프레 향수는 르 라보의 ‘일랑 49’와 크리니크의 ‘아로마틱 엘릭서’. 자신감이 필요한 날에는 풍성한 장미 향이 나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를 선택한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 정도로 칭찬을 가장 많이 듣게 해준 제품은 에스티 로더의 ‘뷰티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플로럴 향수로 실패할 확률이 적은 편이다.

개성 VS 유행, 당신의 선택은?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 새 리더의 취임은 4년간 정계가 불안정할 수도 있다는 신호탄! 이런 상황에서 향수의 흐름은 어떻게 변화할까? 정세와 반대로 활기차고 기분을 북돋는 쾌활한 시트러스나 가벼운 플로럴 계열의 향수로 기울까? 아니면 안정감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해 살냄새 향수가 연승을 거둘까? 나는 살냄새와는 상반되는 선택지를 추천하겠다. 뒤숭숭한 시국에 향수까지 단조로워지면 일상이 너무 지루할 테니까.

    포토그래퍼
    차혜경
    손 모델
    심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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