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가 고백하는 오~랫동안 사용하는 지속 가능템 (2)
맥시멀리스트지만 괜찮다. 진중한 태도로 오래 사용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하고 있으니까.

삶의 모든 순간이 빛으로 읽히길.
– 힙합 프로듀서&뮤지션 이휘민
퍼렐 윌리엄스를 오롯이 뮤지션으로서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그의 퍼포먼스에 따라 눈부시게 반짝이던 큼지막한 체인 펜던트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버스트 다운(Bust-Down) 시계는 당시 나의 뇌리에 박혀 꿈을 좇는 원동력이 됐다. 데뷔 후 첫 시계를 고르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그를 담고 싶었고, 마침 에이셉 퍼그와 지샥이 공동 제작한 에디션이 출시돼 커스텀을 의뢰했다. 다이아몬드 풀 파베 세팅은 ‘릴모시핏’과 ‘앳에어리어’ 이니셜로 마무리. 시간이 흐르고 한 벌스에 어울릴 가사를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고개를 떨군 순간 손목에 차고 있던 이 시계가 눈에 띄었고, 곧바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노래가 ‘VVS’다. 동경의 대상이 현실로 이뤄지고, 또다시 내게 영감을 주었다는 것, 그 어떤 다이아몬드보다 멋지지 않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알콩달콩 연애하자.
– 브랜드 마케터 박다미
2년 차 신혼 생활을 즐기는 중인 나는 여전히 결혼 전 커플 링을 끼고 있다. 연애 때 맞춘 링이 마음에 들어 예물을 생략하려 했지만, 후회할 짓 말라는 엄마표 ‘등짝 후레싱’을 맞고 끝내 웨딩 반지를 마련했다. 대신 왼손 약지에는 웨딩 링, 오른손 엄지엔 남편이 결혼 전 5년간 껴온 불가리 ‘비제로원’ 커플 링을 레이어링한 식이다. 나의 첫 반지이자 우리가 쌓아온 연애의 가치는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그간 반지의 가격이 두 배 뛰었다는 사실. 절대 처분할 일은 없겠지만,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랑의 결실이 예상치 못하게 증명된 것만 같아 내심 뿌듯하다.

엄마가 나고, 내가 엄마인 것처럼.
–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연우
남들보다 체구는 작지만, 사실 일찍감치 성장한 탓에 중 1 때 이미 다 커버렸다. 그렇게 자연의 섭리인 듯 엄마의 물건에 손이 갔다. 친구들보다 성숙하던 난 학생용 가방보다 엄마의 핸드백이 편했고, 후디 달린 점퍼보다 엄마의 재킷이 잘 맞았다. 광주에서 서울로 독립해 올라올 때도 커다란 이삿짐 한편에 엄마의 물건을 챙겼다. 이제 내 것이 된 엄마의 것과 집을 나설 때면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늘 따뜻한 곁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학창 시절을 물려줄 그날까지.
– 헤어 스타일리스트 안민아
현생에 충실하며 작업복을 고르다 무심코 이 청바지를 볼 때면 사춘기를 막 지나 정체성을 찾아가던 때가 떠올라 기분이 묘해진다. 프리랜서의 고단함을 모르던, 조금은 철이 없던, 그래서 마냥 재밌었던. 그러고서 ‘그래 그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 줄 몰랐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돌아온 Y2K 바이브에 딱 어울리는 로라이즈 부츠컷 진이지만, 요즘은 편한 게 제일이라 잘 입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예뻤던 시절 풋풋함이 녹아 있기에 이 청바지는 절대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꽤 비싼 값을 치렀단 말이지? 유행은 돌고 돈다니 먼 훗날 나를 똑 닮은 딸이 생긴다면, 이 청바지를 슬쩍 꺼내 보여야겠다. 그 시절이 다시 온 것처럼.

영원한 건 절대 없어, 매일매일 삐딱하게!
– 스타일리스트 이필성
제주의 공기를 먹고 자란 나는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는 DNA를 타고난 것 같다. 어딘가 삐죽 남다른 생김새에 노출됐을 때 도파민이 터지는 걸 보면. 기발한 디자인은 꼭 갖고 싶었으며 이런 나를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러니까 패션이 최적이었다. 질리지 않느냐고? 전혀. 바야흐로 지드래곤이 동양인 최초의 앰배서더로 활동하던, 리카르도 티시의 지방시 시절. 디깅을 거듭해 손에 넣은 지방시 혼 이어링이 수 년이 지나 스타일리스트가 된 지금도 새롭게 보이니까 역시 삐딱한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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