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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데사 포테이토 헤드 리조트에서 경험한 ‘제로 웨이스트’

2025.04.09허윤선

발리 스미냑에서 비치 클럽으로 시작해 리조트까지, 빌리지를 이룬 데사 포테이토 헤드는 매일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한다. 

버려진 창틀로 만든 아트월.
업사이클링 제품을 적극 활용한 수영장.
업사이클링 제품을 적극 활용한 객실.
자연 소재로 구성된 데사 포테이토 헤드의 객실. 자체 제작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적극 활용한다.
식물과 차를 즐길 수 있는 파마시((Farm)acy).
곳곳의 장식 역시 자연 소재로 만든다.

‘발리에서 생긴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발리를 수없이 방문한 여행자들조차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세계적 럭셔리 리조트부터 작은 숙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이 발리를 찾지만, 쓰레기 문제와 같은 불편한 이야기는 대부분 숨겨져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수웡(Suwung)’이라는 지역의 쓰레기 더미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사두아, 스미냑, 꾸따, 짱구와 우붓…. 발리 곳곳의 지명들이 익숙하지만, ‘수웡’이라는 곳은 낯설기만 하다. “멀지 않아요. 리조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죠. 도로 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요.” 발리 스미냑에 위치한 비치 클럽과 레스토랑, 호텔인 데사 포테이토 헤드를 모두 아우르는 포테이토 헤드 패밀리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마리아 가르시아 델 체로(Maria Garcia del Cerro)가 말했다. 그가 보여준 수웡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과거 난지도의 모습이 이랬을까? 자료 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쓰레기 산이 거기 발리에 있었다.

발리 폐기물 프로젝트의 시작

수웡 매립지는 매일 최대 1500톤의 폐기물을 처리하지만 발리의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올해 초 <자카르타 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발리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은 총 1496만여 명으로 전년 대비 11%가량 늘었고, 관광객이 만들어내는 쓰레기 양은 주민이 발생시키는 양의 3배가 넘는다. 데사 포테이토 헤드는 이런 발리의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선 리조트 중 하나다.

“발리는 매년 160만 톤의 폐기물을 배출하며, 이 중 33만 톤이 플라스틱 폐기물입니다. 비효율적인 폐기물 관리로 인해 많은 양이 수거되지 않고, 상당 부분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 발리의 생태계뿐 아니라 주민의 생계와 관광산업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커뮤니티 웨이스트 프로젝트(Community Waste Project)’를 시작한 이유죠. 이 프로젝트는 섬의 매립 폐기물을 혁신적으로 줄이고, 인도네시아에 지속 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위한 노력입니다.”
포테이토 헤드 패밀리, 멕시콜라 그룹과 발리의 주요 업체들이 참여해, 수웡 매립지 근처에 2000㎡ 규모의 폐기물 처리 시설을 설립하는 프로젝트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Reduce(줄이고), Reuse(다시 사용하고), Recycle(재활용하고), Recreate(개조하고), Regenerate(재생성)이 원칙이며, 쓰레기를 줄이고, 퇴비나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변환해 환경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순환 경제 모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추럴 와인과 창의적인 음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돔.
내추럴 와인과 창의적인 음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돔.
포테이토 헤드의 상징과 같은 조형물 역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거의 모든 것을 재활용하다

“호텔 등 관광산업에서 배출하는 폐기물은 발리 전체 폐기물의 약 13%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해요. ‘커뮤니티 웨이스트 프로젝트’의 목표는 발리의 매립지 폐기물을 5%까지 줄이는 것입니다.” 꽤 대담한 목표인데 그게 가능할까? 포테이토 헤드는 자신만만하다. 이미 리조트 내 쓰레기 배출을 5% 이하로 줄였기 때문. 이로 인해 데사 포테이토 헤드는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리조트로 인정받으며, ‘세계 최고 호텔 Top 50’에 이름을 올렸다.

체크인할 때 인원수만큼 스테인리스 텀블러가 제공되고 객실에는 유리 물병에 정수된 물이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객실 손님과 모든 직원이 같은 텀블러를 사용하고, 리조트 내에서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지만, 반드시 이 텀블러를 사용해야 한다. 텀블러를 들고 리조트 내 ‘웨이스트 투어’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리조트 내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투어다. 이곳에서 쓰레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오가닉과 오가닉이 아닌 것. 오가닉은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것이고, 오가닉이 아닌 것은 플라스틱, 유리 등 우리가 흔히 버리는 쓰레기다. 오가닉 쓰레기는 돼지 사료나 퇴비가 되고, 다른 쓰레기는 일일이 손으로 분류 작업을 거친다. 분류된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 삐죽 솟은 K-뷰티 브랜드의 자외선 차단제와 마스크팩을 보니, 객실에서 나온 게 확실해 보였다.
포테이토 헤드의 첫 번째 원칙은 버려진 쓰레기를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손님들이 마신 빈 맥주병은 자르고 표면을 갈아서 물잔으로 재탄생하며, 좀 더 큰 와인병은 천연 왁스를 채워 아로마 캔들로 변신한다. 플라스틱은 분쇄하고 조개껍데기 가루와 섞어 색색의 재생 플라스틱 패널로 만든다. 이걸로 객실 내 대부분의 어메니티-핑크색 티슈 케이스, 욕실의 각종 디스펜서 용기, 작은 메모판은 물론, 조형물과 의자-를 제작한다. 때로는 영국 디자이너 램, 스페인 디자이너 안드레우 카룰라 등 산업 디자이너와 협업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호텔 뒷마당에서 매일 진행되기에, 원하는 누구나 플라스틱과 유리가 재활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정말로 직원들이 직접 모든 걸 만들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은 객실과 레스토랑, 리조트 곳곳에 비치되어 있다. 조식당에서 주문한 스무디며 음료도 그 물잔에 담겨 나온다. 이 과정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재활용 클래스’에 참여할 것. 재생 플라스틱으로 기념품을 직접 만들어 집에 가져갈 수 있고 아이들도 참여 가능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리조트 내 플라스틱 대부분이 재활용되며, 매립되는 쓰레기는 극소량으로 줄어든다.

리조트 내부에서 재활용과 업사이클링이 이루어진다.
발리의 심각한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테이토 헤드의 주도로 시작된 커뮤니티 웨이스트 프로젝트.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든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
발리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커뮤니티 웨이스트 프로젝트.

죄책감 없는 여행의 즐거움

웰니스 여행이 각광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여행을 휴식과 요가, 명상을 즐기며 삶을 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반면, 여행자들로 인한 쓰레기로 여행지는 몸살을 앓는다. 기후 위기와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제 여행은 단순히 돈을 쓰고 즐기는 것으로 끝날 수 없게 됐다. 발리에 도착한 후 나는 그동안 어떻게 여행해왔는지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여정을 눈으로 본 후 마음은 한층 가벼워졌고, 업사이클링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이런 변화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리조트 숍에는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한 재활용 MD 제품과 의류가 가득한데, 늘 북적이는 것을 보니 나와 같은 여행객이 많은 듯했다. 이곳은 예쁘고 쿨한 재활용의 성지였다.

비치 클럽으로 유명했던 포테이토 헤드는 어떻게 ‘재활용에 진심인 리조트’가 되었을까? 마리아는 “포테이토 헤드의 모든 것은 ‘Way of life’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쓰레기 배출과 그 처리까지 우리 삶의 일부다. “포테이토 헤드의 친환경적인 여정은 2016년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설립자인 로널드 아킬리(Ronald Akili)는 좋은 시간을 만든다는 사명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고향이자 영감의 원천인 발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폐기물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고, 지역사회 및 생산자와 긴밀히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 가능성은 건축, 음식, 창의적인 협업까지 저희의 핵심 철학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쌓아온 노하우와 가치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지속 가능성 매니저 아만다 마르첼리(Amanda Marcell)의 말이다.

너무 재활용 이야기만 했나? 데사 포테이토 헤드는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며, 최신의 아이디어와 맛있는 음식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완벽한 휴양지였다. 영감을 찾는 여행자나 새롭고 창의적인 경험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리조트 안에만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선보이는 카움(Kaum)과 내추럴 와인을 페어링할 수 있는 파인 다이닝 돔(Dome), 시푸드 레스토랑 이젠(Ijen), ‛플랜트베이스’로 운영하는 타나만(Tanaman)은 일부러 찾아갈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특히 이젠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레스토랑’을 표방하는데, 음식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버려지는 부분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조리 과정에서에도 가스와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전통적 어업 방식으로 잡은 생선을 바나나 잎에 감싸 나무 화덕을 활용해 굽고, 흔히 버려지는 생선 비늘은 바삭한 크래커에 활용한다.

아침 6시 30분에는 호텔 옥상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에너지를 깨우고 명상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웰빙센터인 생추어리(Sanctuary)에서는 사운드 힐링, 얼음 목욕 요법, 에너지 의학 등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되고, 스파에서는 부드러운 발리니스 마사지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Light Sound Vibration’은 물침대에 내장된 진동 스피커와 동기화된 광 주파수가 뇌파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소리가 신체에 물리적 진동으로 전달되며 루시드 드림을 유도하는데, 명상 중 몸을 배배 꼬며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던 내게도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흥미로운 경험. 현대인을 위한 테크노 명상이라 할 만했다. 객실은 나무와 재활용 플라스틱, 천연 소재 천으로 꾸며서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커다란 수영장 넘어 우기를 맞은 발리의 파도는 웅장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데사 포테이토 헤드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이 죄책감 없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포테이토 헤드에서 며칠을 머무른 뒤, 나는 플라스틱 물병 하나, 플라스틱 빨대 하나 남기지 않고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객실에 커틀러리가 구비되어 있어 일회용 젓가락이나 플라스틱 포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쓰레기통에는 티슈 외에는 버릴 것이 없었다. 아름다운 섬을 해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웰니스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여행은 처음이었다.

    포토그래퍼
    DESA POTATO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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