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ETWEEN / 사진가 김경태, 그래픽 디자이너 양지은
사진가 김경태와 그래픽디자이너 양지은. 8년 차 부부이자 동료인 두 사람 사이에는 따뜻한 존중과 흔쾌한 인정이 흐른다.


김경태 + 양지은
작가와 디자이너는 비슷한 듯 다른 직업이다. 각각의 관점에서 바라본 ‘크루’는 어떤 존재인가?
김경태 믿고 넘긴다고 해야 할까? 합이 잘 맞는 관계. 평소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이라 작업도 혼자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규모를 줄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반면, 지은 씨의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프레스룸(Press Room)에는 사람이 많다.
양지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업무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작업량이 증가했다. 그럴수록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분업을 하면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 개인적으로는 작업 초기 단계부터 팀원들과 의견 나누는 걸 즐긴다.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 장기적으로는 팀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가족이자 함께 작업하는 동료로서 상대에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나?
양지은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의 시퀀스 같은 영상 작업물을 통해 작업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그때마다 경태 씨가 카메라 기법 등 내가 포착하지 못하는 영역을 알려준다. 사진가인 가족이자 동료가 있어서 좋은 부분이다.
김경태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지만 특별한 규칙을 정해두지 않은 나로서는 지은 씨의 업무 체계 자체에 감명받을 때가 많다. 워낙 체계가 잡혀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려면 저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유학 준비를 하며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양지은 서로의 일에 큰 관심이 없어서?(웃음)
김경태 보통의 부부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분리되어 있다. 작업실도 따로 쓰고, 협업할 때도 각자의 영역에 대해 코멘트를 거의 안 한다. 가족이라 가능한 일 같다. 클라이언트 잡에서는 코멘트가 없는 걸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창작자에게 의지만 있다면 그런 자유로운 상황에서 훨씬 재미있는 결과물이 도출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김경태 그렇기도 하고, 은근한 기대를 하는 거다. 아무런 터치가 없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코멘트를 하지 않는 게 더 힘든 숙제를 내주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사진가 김경태의 사진을 활용해 디자인한 ‘Angles’나 ‘From Glaciers to Palm Trees’ 등의 작업물도 그렇게 진행됐나?
김경태 물론이다.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양지은 경태 씨가 스위스에 있는 건물 사진을 취미처럼 모은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구상한 제본 방식이었다. 코멘트를 하지 않은 게 굉장히 좋은 발의를 한 작업 같다. 사진을 반씩 분할하는 배치라 사진가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내 방식을 다 수용해줬다.
두 사람이 다루는 사진과 그래픽 모두 시각언어로 작용한다. 시각언어의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경태 여러 감각을 통틀어 시각은 가장 직관적이고 정보량도 많기 때문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다른 감각에 비해 각인되는 정도가 약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늘 자극적이고 인상적인 걸 바라지만 그게 얼마나 깊은 자극을 줄지는 미지수다. 작업을 할 때도 시각적으로 ‘너무 좋아, 너무 짜릿해’ 하는 순간은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질릴 거라는 마음을 늘 품는다.
양지은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충족하는지를 고민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K-팝 산업에서 아티스트의 물리적·비물리적 홍보물이 그들의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다 보니 그래픽이 점차 패션처럼 작용하는 것도 같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처럼. 기존에도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 또는 가치 쇄신에 디자인적 변화가 큰 기능을 했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관심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시각언어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 아트신을 향한 관심도도 변화했다.
김경태 세태가 달라진 건 확실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들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고평가든 저평가든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느낌? 좋은 기회인 건 맞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전환되었으니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되지 않을까?
양지은 디자인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과 함께 큰 변화를 겪었다.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나 디자이너의 수도 많아졌고, 국제적 주목도도 높아졌다. 동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의 빠른 디자인 트렌드 변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변화가 무척 흥미롭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두 사람 각각의 고유한 방향성이 있다면?
김경태 점점 사회와 동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는데, 그게 나쁘지 않겠다 싶다. ‘앞으로 더 열심히 동떨어진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원래도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더 격렬하게 눈치를 안 보면 어떨까? 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양지은 다양한 유형과 양식의 디자인이 생길수록 기본을 지키려고 한다. 타이포그래피의 기본 규칙이라든지 편집디자인에서 하면 안 되는 것들 말이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팀원들에게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감각적으로 소비되는 결과물이어도 만드는 사람은 그렇게 임하지 않으면 좋겠다. 최소한 만든 사람은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정립했으면 한다.
프레스룸은 지난 3월 일본 오사카에서 진행된 디자이너 고토 테츠야의 저서 <K-Graphic Index> 북토크에 참여했다. 어떤 경험으로 남았나?
양지은 앞서 말한 변화를 체감하고 왔다. 워케이션 중 기회가 닿아 우연히 참여했는데, 팀별로 15분씩 짧고 캐주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디자이너 고토 테츠야는 평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그래픽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알고 보니 이 행사를 위해 도쿄에서 일부러 찾아온 분도 있더라. 편지도 받았다. 문화예술 분야 작업만을 지속했다면 이렇게까지 주목받지는 못했을 거 같다. 디자이너로서 진로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게 뿌듯했다.
사진가 김경태는 디자이너 양지은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관찰했나?
김경태 ‘어? 이게 되네?’(웃음) 나는 생각이나 걱정이 많은 편이라 확신이 서야 움직이는 타입이다 보니 도전적이지 못하다. 계산도 무지하게 한다. 반면 지은 씨는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보는 경우가 많다. ‘저게 과연 될까?’ 싶은 것도 어느덧 완성되어 있어서 신기하다. 최근 사무실을 과감하게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지은 일단 저질러 놓고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어떤 경우에는 너무 생각 안 하고 저지를 때도 있다. 그때는 경태 씨의 조언이 브레이크처럼 작용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진가 김경태는 최근에 또 어떤 걸 관찰 중인가?
김경태 요즘 식물을 자주 보고 있다. 선인장이나 관엽식물이 주를 이루는데, 최근에는 이끼와 식충식물에 관심이 많다. 관찰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습관이라 그 과정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성격과 성향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일조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사물의 공통점은 뭔가?
김경태 지금까지는 대상에 깃든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물리적 형태나 특성에 집중했다. 최근 식물을 관찰하는 건 도전 의식이 생겨서다. 5월 20일 발행되는 <동백꽃 도감>을 위해 제주도 카멜리아 힐에서 동백꽃 249종을 오랫동안 기록했다. 그런데 작업을 마무리하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 분명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작업을 했는데 말이다. 아직 명확한 탐구의 방향을 정한 건 아니고 노력에 비해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훨씬 더 긴 시간과 호흡을 써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업을 하고 싶다. 그래서 대상으로서의 식물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디자이너 양지은이 바라보는 사진가 김경태의 작업 세계는 어떤가?
양지은 관찰의 행위가 생활 안에 취미처럼 자연스레 담겨 있는 게 보기 좋고 부럽다.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이라 문제 해결의 관점으로 상황과 일을 대하기 때문이다. 쫓기는 기분이 너무 싫은 거다. 식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반추한다. ‘나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던가.’ 반려자로서 본인의 중심을 잘 잡고 사는 것 같아 좋다.
- 포토그래퍼
- 차혜경
- 스타일리스트
- 시주희
- 헤어&메이크업
- 장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