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미술 전문 계정, 크락티를 운영 중인 박지민
미술 전문 인스타그램 계정 크락티(@Crakti)는 미술을 좀 더 선명하고 산뜻하게 즐기는 방법을 제안한다. 전국 각지의 전시를 자신만의 언어로 소개하는 박지민의 끝없는 호기심.

김태윤, ‘작업실시간1’, 2025, Single Channel Video, Powder Coated Steel, LED Screens, Custom Video Player, 104×624 Pixels, 117 minutes, 98×30×30 cm.
조이솝, ‘도둑신부’, 2025, Yarn, Wire Tube, Rubber, Silicone Tube, Shower Hose, Iron Bell, Iron Ball, Christmas Tree Ball, Crystals, Various Beads and Mixed Media, 최대 400cm.
김태윤, ‘작업실시간2’, 2025, Single Channel Video, Powder Coated Steel, LED Screens, Custom Video Player, 104×832 Pixels, 113 minutes, 130×30×30cm.
모두를 위한 미술 언어, 박지민
크락티 인스타그램 프로필의 첫 문장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돌아다닌다(Fiercely roaming around for art)’가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전시를 보나?
1년에 약 400개, 일주일 평균 8~9개를 본다. 달력에 전시 일정을 정리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짜서 하루 날을 잡아 관람한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크락티의 탄생 동기는 무엇이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인턴을 했다.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고 국제갤러리에서 근무하며 관람한 전시를 기록하기 위해 처음 계정을 만들었다. 기록을 공유하면 의무감에 더 많은 전시를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했지만,미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즐거움이 날로 커져 본격적으로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크락티의 콘텐츠는 미술에 대단한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크다. 콘텐츠 제작 시 지키는 원칙이 있나?
미술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다. 쉽게 전달하려고 하면 뭉뚱그려져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전문 용어를 그대로 전달하면 불친절한 텍스트가 된다. 그래서 텍스트에는 장황하고 거창한 말은 최대한 배제하고 작가의 정보와 기획자의 의도 등 사실을 기반으로 지금 이 전시에 가야 하는 이유를 담는다. 대학원에 진학해 희미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마주할수록 전시를 설명할 때 더욱더 사실 전달과 나의 감상에 집중하려고 한다. ‘누가 읽어도 충분히 이해되는 난이도와 본질을 어떻게하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는 늘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이다.
약 3년의 시간이 흘렀다. 크고 작은 변화 속 콘텐츠를 제작할 때 지키는원칙은 무엇인가?
나의 재미. 팔로워를 위한 정보 제공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 콘텐츠 제작이 지속 가능하려면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 나의 재미를 위해 시작한 만큼 흥미를 끄는 걸 중심으로 다룬다. 콘텐츠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내 손을 거친다는 점도 변치 않았다.대학원 진학을 위해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길 때, 한국에 특파원 형태로 외주 콘텐츠 제작자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크락티 콘텐츠에는 내 시선이 담겨야 한다는 생각에 완강히 거절했다.
3만 명이 넘는 팔로워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
매우 다양하다. 갤러리 관장,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같은 업계 사람부터 전혀 다른분야의 사람까지 다채롭다. 뉴욕에서 활동하며 역동적인 뉴욕 미술계의 흥미로운 움직임을 전하며 현지 오디언스도 늘었다.
사람들이 크락티에 기대하는 건 무엇이라고 보나?
사실 이 질문을 미리 받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팔로워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답이 의외였는데, ‘내가 가고 싶은 전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와 ‘내가 가지 못하는 전시를 간접 경험하기 위해서’가 딱 반으로 갈리더라. 콘텐츠를 한쪽을 위해 맞출 수 없지만, 자신이 좋아한다고 인지하지 못한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아, 나 이런 거 좋아했네’라는 스위치가 켜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게 소셜미디어의 장점인 만큼 비디오, 숏폼, 릴스 등 계속해서 변주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콘텐츠를 즐겨 보나?
이곳저곳을 유영하지만 결국 안착하는 곳은 레거시 미디어(기존 언론매체)다. 나와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걸 예쁘게 재단해서 내보낼뿐 취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고 취재하는 레거시 미디어에서 나 역시정보를 얻고 활용한다.
여러 전시를 보며 체감한 국내 미술계의 변화는 무엇인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미술시장에는 엄청난 붐이 일었다. 새로운 관객이 유입되고 그관심이 시장으로 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거품이 어느 정도 빠지고, 시장보다는전시와 작가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다룬전시를 대대적으로 선보인 것 역시 반가운 변화다. 지난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한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추수 작가의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뉴욕에서도 실감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최근 라시드 존슨(RashidJohnson)의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했다. 조명받아 마땅한작품 세계를 가졌지만 지금까지 흑인 작가의 전시는 현저히 부족했다. 휘트니 뮤지엄 역시 에이미 셰럴드(AmySherald)의 전시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잭휘튼(JackWhitten)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모든 게 올해, 비슷한 시기에 열렸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이 아닌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훌륭하게 기획한 전시였다. 이 전시를 본 관람객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의 반응도 흥미롭게 관찰하는 듯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전시도 미술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시를 관람한 동시대 관객의 반응과 작가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아티스트 개인의 역사이고, 이는 곧 미술사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미술사에서 전시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빛의 예술로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댄 플래빈(DanFlavin)은 그 유명한 라이트 조명 작업을 1960년대 어느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였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역사적인 이‘사건’도 전시장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전시는 무엇인가?
새로운 대홧거리를 만들고 동시대에서 조명할 수 있는 시선을 갖춘 전시. 예를 들어한 작가의 회고전을 한다면, 작가가 지나온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설명하는 요소, 작가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요소를 넣어주는 식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얘기되어온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동시대적 요소를 추가해 새로운 담론을 탄생하게 하는 요소를 넣는 식이다. 작가에 대해 알고 싶으면 도록을 보면 되지만 어떤 공간에서 ‘전시’라는 형태가 된다면 새로운 에너지를 탄생시켜야 한다.
서울 최대 미술 축제로 자리 잡은 프리즈 서울을 즐기는 방법이 있나?
벌써 2년째 학업 일정과 겹쳐 현장에 가지 못했지만, 그해에 새로 참가하는 갤러리를 중점적으로 본다. 대개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몰려 있다. 올해는 서울의 상히읗, LA에 본사를 두고 서울, 자카르타에 지점을 낸 백 아트 갤러리(BaikArtGallery)의추미림 작가, LA에 위치한 메이크 룸(MakeRoom)의 전시가 기대된다.
크락티가 어떤 브랜드가 되길 꿈꾸나?
엄청난 계획파이긴 하지만 최대 2개월의 계획만 빡빡하게 세운다. 그 이후는 아무래도 컨트롤이 어렵더라. 앞으로 2개월 뒤의 전시와 콘텐츠 계획은 세웠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은 또 그때 쌓아가며 달라질 것 같다. ’크락티’가 화면 안을 넘어 누군가의 발걸음을 전시장으로 들여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뿌듯하다. 이 채널을 일과 놀이의 경계 없이 운영하지만 크락티 존재 이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 역할을 꾸준히 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훗날 우리의 콘텐츠가 전시를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로 존재하길 바란다. 인스타그램은 검색 기능이 있어 아카이빙에 특화되어있다. 미래의 누군가가 어떤 아티스트의 특정 전시가 궁금할 때, 우리 콘텐츠가 유용한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록 방법인 셈이다.
공부를 하면서 기록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절실히 느낀다. 최근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활발히 활동할 작가의 전시에 관심이 생겼는데, 과거 대중의 반응이나 전시 현장 분위기를느낄 자료가 없어 아쉽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여러 영향을받으며 성장한 이들의 작품 세계는 역사인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이들의세계가 더 궁금하다.
많은 미술 콘텐츠를 보고, 듣고, 향유하는 활동의 기쁨은 무엇인가?
나는 이해 속도가 좀 느린 편이다. 글을 읽을 때 여러 번 읽고 곱씹어야 이해되고, 완벽히 소화가 되지 않더라도‘이런 내용이구나’하고 기억 속에 넣어둔다. 그러다 내가 본 전시, 경험, 논문을 통해 지식이 중첩되면 어느 순간‘아!이게 그때 그 얘기였구나’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영원히 바보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보이지 않는곳에서 느리고 미묘하게 발전해왔구나 싶어 짜릿함을 느끼는 동시에 위로가 된다.
LOCATION 샤워 | 2023년 문을 연 샤워는 커뮤니티이자 플랫폼으로서 급진적 형태의 예술을 소개하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 다채로운 협업을 통해 예술가와 함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성장하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전시 디자인 스튜디오 샴푸(Shampoo)와의 협업으로 전시 제작에 대한 기술적 지원까지 더해져 작가의 아이디어 실현을 도우며 자원이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 포토그래퍼
-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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