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틀에서 살기
자갈길을 떠다니는 열기구만큼이나 컬러풀한 그라피티! 공업도시이자 몽환적인 트립합의 중심지, 가장 힙한 도시 영국 브리스틀 탐험기.
런던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시 브리스틀은 과시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다. 스톡스 크로프트에 그려진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여행자들에게 이곳이 진정한 ‘마일드 웨스트’임을 떠올리게 한다. 뱅크시의 작품 ‘The Mild, Mild West’는 90년대 후반 브리스틀에서 유행했던 불법 파티와 이를 진압하던 경찰의 모습을 담고 있다. 런던이 우아한 테라스와 역동적인 레스토랑, 편안하고 다문화적인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을 때 브리스틀은 타 도시와는 다른 반작용을 통해 이곳만의 독특함을 유지해왔다.
도시 곳곳을 거닐다 보면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중심부는 나치 시대의 독일 공군기에 융단폭격을 당했고 전후 도시설계자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허름한 듯 화려한 풍경들. 항구를 지나면 클리프턴우드의 파스텔 컬러 집들과 이상한 요정 마을 같은 세인트 워버그스 지역이 나타나고, 흥겨운 세인트 폴 축제나 에이번 협곡을 떠다니는 화려한 열기구도 만날 수 있다. 어느 쪽으로 걷든지 브리스틀의 매력에서 시선을 떼기란 어렵다. 일부 건축물은 인근의 바스(Bath)만큼이나 웅장하지만 중요한 건 색채가 다르다는 것이다. 때로는 다 쓰러져가는 집도 있고 페인팅된 창 밖으로 종종 레게 음악이 흘러나온다.
2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나는 브리스틀 사람들이 로봇 팔다리나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아주 인상적인 것들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친근하면서도 몽환적이고 ‘아, 나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방식을 갖고 있다. 펍에서 서로에게 삶의 조언을 구하거나 영국식 임대농업 얼로트먼트에서 자두가 풍작을 이뤘다고 말해준다. 이 장소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브리스틀 시간’이라 알려진 각자의 리듬에 따른 조용한 자신감 때문이다. 이곳에선 1990년대 매시브 어택과 포티셰드 등이 개척한 나른하면서도 느긋한 사운드 트립합(Trip Hop)이 수시로 흘러나온다. 심지어는 도시의 지형조차도 서두르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 비숍스턴과 클리프턴 사이의 지름길을 택할지라도 언덕과 굽이치는 길을 거치다 보면 15분 늦게 출발해 천천히 둘러가는 사람과 비슷해진다. 브리스틀의 이끼 낀 뒷골목, 얽히고설킨 골목, 호기심을 자극하는 숨겨진 작은 장소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영국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꼽게 만든다. 하지만 우린 이걸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다음은 당신이 브리스틀에 와야 할 이유다.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
행복은 윌슨스 레스토랑(Wilsons Restaurant)에 있다! 레드랜드 중앙에 위치한 식당가의 작은 레스토랑은 런던 클로브 클럽(Clove Club)의 셰프였던 얀 오슬이 운영한다. 블랙 보드에 흰색 분필로 메뉴를 적어 로컬을 겨냥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며, 때론 팀 헤이워드(Tim Hayward) 등 비평가들이 이곳의 요리에 감동하는 특별한 광경도 만날 수 있다. 또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너무 이른 시간이라면 바로 옆의 마이크로펍 첨스(Chums)에 가볍게 들러도 좋다. wilsonsrestaurant.co.uk(2인 £90 정도), www.chumsmicropub.co.uk
근교 여행
공항으로부터 석양을 즐기면서 잠깐 드라이브를 하면 멘딥힐스(Mendip Hills)의 목초지가 나타나고 노스 서머싯의 링턴(Wrington) 마을로 이어진다. 이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디 에티큐리언(The Ethicurean)이 있다. 어워드를 수상한 이 레스토랑은 아름다운 빅토리아 양식의 정원을 배경으로 로컬에서 직접 재배한 식재료만 사용한다. 전통적인 웨스트 컨트리 농경법에 젊은 감각과 환경을 생각하는 윤리를 더했다.
도시공동체
다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브리스틀은 자메이카, 아시아, 동아프리카 공동체들이 혼합되어 있다. 한국인도 제법 많다. 스카이 콩콩(Sky Kong Kong)은 여러모로 이색적인 유기농 한식당이다. 술은 별도로 팔지 않고 가져와 먹을 수 있으며 웨스트 컨트리식 김치를 제공한다. 점심에는 도시락도 있고 저녁엔 식사를 제공하는 클럽 같은 분위기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유서 깊은 펍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벨스 디너(Bell’s Diner)는 브리스틀의 또 다른 자랑거리. 히피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이 혼합된 18세기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올드스쿨 풍의 펍인 벨스 디너는 1976년 비스트로로 처음 오픈했다. 최근엔 영국과 모던 지중해식 퓨전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요리는 셰어링 형태로 서빙되어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다. 빈티지 와인과 골동품으로 장식된 룸이 정겹게 느껴진다.
문화 랜드마크
브리스틀 올드 빅(The Bristol Old Vic)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 운영되어온 유서 깊은 극장으로 작년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원래 있었던 18세기 벽을 그대로 노출시킨 채 로비는 바와 레스토랑이 있는 공용 장소로 개방되었다.
역사 투어
고딕풍의 템플 미드 역에서부터 SS 그레이트브리튼 호, 클리프턴 현수교 등에 이르기까지, 빅토리아 시대의 공학자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은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대규모의 일들을 해냈다. 그가 남긴 흔적은 브리스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또 산업혁명과 기계와 관련된 공업적 흔적은 항구 주변에 더 강하게 드러난다. 아놀피니 갤러리에서 에이번 강을 따라 통과하는 증기기관 코스, 거대한 기중기, 15세기 스타일을 재현한 범선, 북적이는 기지창, 바지선 펍 등등 천천히 둘러보면서 음미해볼 만한 유산이 많다.
작은 가게들
핑크먼스(Pinkmans)의 빵, 소사이어티 카페(Society Cafe)의 커피, 플라우어 앤 애시(Flour & Ash)의 사워도우 피자! 브리스틀에서 사랑받는 작은 가게들의 대표 메뉴다. 훈제 치킨 요리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라이스 앤 싱스(Rice & Things), 야외에서 태양 아래 맛있는 콩요리와 음식을 파는 인도식 바자인 스위트 마트(Sweet Mart), 스칸디나비아에서 영감을 얻은 주말 런치와 오븐에서 구은 하셀백 감자를 서빙하는 델라(Dela) 등도 빠뜨릴 수 없다.
로컬 뮤직
브리스틀에서 음악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더 플라우 인(The Plough Inn)은 펑크, 레게, 소울 등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이 도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인근의 루이지애나(The Louisiana)에선 포크와 블루스를, 스톡스 크로프트의 미로 같은 라코타(Lakota)에서는 드럼과 베이스 연주를 즐길 수 있다. 맞은편의 세인트 조지스(St George’s)는 교회였던 곳을 콘서트홀로 개조한 것이다. 다양한 어쿠스틱과 체임버 오케스트라 그리고 재즈 연주 등을 선보인다.
쇼핑을 위한 장소들
브리스틀에는 시크한 부티크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숍이 많다. 콜스턴 거리에는 특히 재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최상의 중고 컬렉션을 판매하는 북숍 블룸 앤 컬(Bloom & Curll), 흥미로운 가정용품을 판매하는 로랜즈(Lowlands) 등이다. 핸드메이드 주얼리, 빈티지 의류, 화석 등 흥미로운 소품을 파는 더 아케이드(The Arcade)가 있다. 이곳을 구경하고 난 후 오후엔 조지 왕조 시대의 건물들이 있는 클리프턴 빌리지 인근으로 넘어가 문구점 페이퍼스미스(Papersmiths)나 향수숍 샤이 미모사(Shy Mimosa)를 둘러봐도 좋다. 페이퍼스미스는 디저트 카페같이 러블리한 실내공간이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점이다.
추천 호텔
스톡스 크로프트에 있는 그레이드 리스트의 공장 건물은 아티스트 레지던스(Artist Residence)로 다시 태어나, 창의적인 데커레이션과 펑키한 칵테일 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때 그루지야 상인의 집이었던 타운하우스를 개조한 넘버 38(Number 38)은 작은 부티크 호텔로 클리프턴 다운스의 녹지대를 조망하고 있어 아침 산책에도 이상적이다. 또 현수교를 바라보는 에이번 고지 바이 호텔 뒤 빈(Avon Gorge by Hotel du Vin)은 브리스틀 출신 배우 캐리 그랜트가 즐겨 찾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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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리처드 고드윈(Richard Godwin)
- 포토그래퍼
- TOBY MITCH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