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정신

스페인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칼럼니스트가 바스크 지방의 중심부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스페인의 정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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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 해변.

“바스크인들은 유럽의 미스터리다.” 수세기 동안 과학자들과 학자들은 바스크인의 기원을 풀어내지 못했다. 어떤 이는 그들이 베르베르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코카서스의 작은 부족에서 기원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의 언어는 세계 어느 나라의 언어와도 연관이 없다. 19세기 수도승이자 학자였던 피에르는 바스크어를 ‘신의 언어’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오랜 바스크 지방 마을에는 축구 경기장 대신 프론톤이라는 경기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갈고리 모양의 바구니를 손에 낀 채 시속 160마일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하이알라이 경기가 열린다. 바스크인들은 신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말을 갖지도 않았으며, 자신들의 왕을 세우지도 않았다. 추측컨대 그들은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하던 시기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채 숲이 우거진 구석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았을지라도 결코 동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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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지방을 따라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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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지방의 특산물 고추.

어부의 마을

나는 발렌시아에서 10년을 살았다.찌는 듯한 더위와 먼지, 바로크, 소란스러운 쾌락주의자들, 불꽃놀이, 축제와 함께 말이다. 처음 북쪽의 산세바스티안과 주변의 바스크 지방으로 향한 것은 2000년 봄이었다. 모든 것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단순했다. 상쾌한 대서양의 산들바람과 개울이 빚어내는 음악, 송어가 풍부한 강이 있었다. 마을은 깨끗했고 모든 집의 발코니는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세계 어느 곳보다 미슐랭 별이 넘쳐난다. 이 마을에서는 평범한 삶은 달걀조차 더 맛있다. 음식에 대한 깊은 지식이 전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름이 끝나고, 건초가 쌓이고 과수원과 포도밭이 수확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다시 바스크 지방으로 갔다.

여행을 시작한 곳은 산세바스티안과 빌바오 사이의 어항이었다. 배가 돌아오면 사이렌이 울린다. 오랫동안 부재했던 아버지들의 도착이자 빈곤의 전환을 알리는 사이렌이기도 하다. 참치배는 한 번, 고등어배는 두 번, 멸치배는 세 번 사이렌을 울리며 배에 사고가 발생하거나 조정에서 우승했을 시에는 네 번 울린다. 생선값을 책정하고 서로의 안위를 보살피는 이 바다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끈끈한 형제애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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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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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타인 라 비냐의 치즈케이크와 커피.

이웃 마을에는 미식 커뮤니티도 형성되어 있는데 목수나 음악가, 양치기 등 다양한 구성원이 서로를 위해 요리하며 클럽을 운영한다. 나무 테이블이 있는 큰 방에서는 항구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으며 회원들이 그들의 친구들과 동료를 위해 요리할 시간을 예약할 수 있는 칠판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요리사이자 어부인 우루티아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재배한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와 갓 잡은 참치를 함께 먹기 위해 내 옆에 앉았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수척한 얼굴, 긴 수염과 지친 눈을 기억해요.” 그는 말했다. “어부들은 바다에서 23시간을 보내면서 부상을 당했고 요통이 생겼죠. 하지만 만선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바다에 일터를 둔 아버지들은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다른 남자들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음식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우정, 건강, 가족, 땅에 대한 사랑, 와인메이커의 폭풍에 대한 걱정, 산속에서 겪는 양치기의 고립, 해충, 부상, 홍수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음식을 나눈다. 이곳 사람들은 그것이 음식에 대해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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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지방 근교 리오하에 있는 와인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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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티시아 수요일 시장의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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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의 거리.

산세바스티안으로

해안도로를 돌아 산세바스티안으로 가려 했지만 산악 지형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러나 소나무와 떡갈나무, 강이 있는 바스크 산간 지대에서는 약간 길을 잃는 것이 요행이 될 수 있다. 아찔한 비탈을 배경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러한 고립 속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나는 지역 특산물인 고추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기 위해 국경을 넘어 프랑스 바스크 지방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수천 개의 가느다란 진홍색 고추를 매달아 건조시킨다. 마을 외곽에 고추 농장과 전시 공간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포첼루가 말했다. “어업을 공부하기 위해 떠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고, 이곳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고추는 본래 멕시코에서 나는 것이지만 변형된 에스펠트종을 생산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손으로 직접 심고 또 심은 데서 난 15만 포기의 고추밭을 걸으며 고추를 만져보았다. 그렇게 자란 고추는 수확해 세척한 뒤 50℃의 오븐에서 3일 동안 건조한다. 바스크의 셰프들이 소스와 마요네즈에 사용하는 고춧가루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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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렬로 정박한 보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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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 비어 전문점 카냐비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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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식당의 정어리 요리.

나는 사과주와 양떼의 중심지이자 놀라운 산업적 부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북쪽의 바스크 고원으로 돌아갔다. 중세의 것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밤을 보냈는데 아름답고도 위엄 있는 석조 건물에는 마녀를 물리치기 위해 문에 해바라기를 걸어두었다. 그 후에는 가족 대대로 치즈 제조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농장에 묵기도 했는데 무려 500년이 된 건물이었다. 주인인 에네코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목동으로 살았던 자신의 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후 오르티시아(Ordizia)의 수요일 시장에서 다시 만났다. 겨울철에는 콜리플라워와 신선한 마늘이 있고 봄에는 다양한 콩이, 여름에는 고추와 참깨가, 가을에는 버섯과 견과류가 있다. 이날은 특별한 수요일이었는데 매년 치즈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에네코는 부모님과 함께 이전 수상자들을 위한 특별 부스에 있었고 그 너머에서는 치즈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정된 14개의 원통형 치즈는 파리 경매에 나온 조각상과 같이 테이블에 놓여졌고 푸드 칼럼니스트, 전문가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들이 허리를 구부린 채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메모를 하고 있었다. 미슐랭 별을 세 개 달고 있는 셰프일지라도 치즈 앞에서는 모두 겸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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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 비어 전문점 카냐비카냐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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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지방의 타파스 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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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식당의 파스닙 퓌레를 얹은 닭 요리. 해변가의 연인.

바스크는 어떻게 이 글로벌의 시대에 스스로를 지켜냈을까?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도시로 집중돼 교외가 비어가는 시대에, 이곳의 젊은 세대는 왜 마을에 남기를 선택했을까? 나는 여행 도중 그 단서를 발견했다. “가족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우리는 과도하게 경쟁적이다.” 그들이 매일 경쟁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무를 자르고 돌을 던지고 노를 젓고 심지어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경쟁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경쟁은 평등하다. “우리에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 모델은 협동 조합이에요.” 치즈 제조업자 중 한 명이 내게 했던 말이다. 한 바스크 여인은 “우린 타고난 평등주의자들이야”라고 말하며 케이크를 베어 물었다. 이들의 고집은 자신들이 먹는 재료만큼이나 단순하다. 이 단순함이 결국 그들을 지켜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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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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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이트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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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가 디자인한 쿠르살 오디토리움.

    에디터
    티모시 오그래디(Timothy O’grady)
    포토그래퍼
    ANA L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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