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롯폰기에서 일어난 일. ‘롯폰기 아트 나이트’

매년 이맘때면 도쿄 롯폰기 전체가 미술관으로 변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했던 2019 롯폰기 아트 나이트를 면면히 들여다봤다.

도쿄의 한 평범한 골목. 거대한 인형이 춤을 추고, 그 옆에선 금발의 악사들이 영롱한 악기 소리를 내고 있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크고 빨간 공이 사람들에게 어떤 신호라도 남기는 듯 건물 틈새에 끼어 있다. 그 뒤엔 과일 모양의 풍선이 행인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수백 장의 영수증을 붙인 커다란 캔버스 위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익숙했던 일상의 공간을 예술로 가득 채운 롯폰기의 전경이다.

롯폰기 아트 나이트는 1년에 한 번, 하룻밤 동안 펼쳐지는 예술 축제다. 지금까지 거듭된 실험적인 시도는 설치 미술 분야를 포함해 예술 전반에 걸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10회 째를 맞이한 2019년의 주제는 ‘Night Journey, Daydream’. 말 그대로 밤새도록 예술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하고, 꿈꾸는 듯 신비로운 경험이 펼쳐지는 롯폰기로 변모한다. 행사가 시작되자 젊은 스트리트 작가부터 베테랑 작가까지 국적과 장르를 불문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도쿄에서도 가장 뜨거운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롯폰기의 미드타운과 롯폰기 힐즈를 중심으로 펼쳐진 아트 나이트에서는 현대 미술, 퍼포먼스, 영상, 음악 등 넓은 범위의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올해 행사의 메인 아티스트로 초대된 사람은 한국의 최정화 작가. 평창 올림픽의 개, 폐막 세리모니를 맡았으며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 아티스트다. 그는 이번 아트 나이트에서도 단순한 설치미술 이상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의 작품을 포함해 아트 나이트에서 눈여겨볼 점은 단순히 ‘관람’의 형태로, 전시된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돌며 ‘레드볼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는 커트 퍼시케의 작품 역시 거대한 공을 직접 만지고, 또 밀어보기도 하며 관람객의 참여로 발생하는 우연성이 자연스레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한다. 이 외에도 손을 댈 때마다 악기 소리가 더해지는 거미줄 형태의 작품, 직접 소리의 높낮이를 조작할 수 있는 나무 악기 등 직접 참여 가능한 예술 작품을 한 데 만날 수 있다. 게다가 거의 모든 작품은 무료로 공개된다.

매시간마다 펼쳐지는 다양한 퍼포먼스도 아트 나이트에서의 이틀을 더욱 풍성하게 구성한다. 올해는 스페인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 ‘오레카 TX’가 거대한 인형과 함께 스페인 전통 퍼레이드를 선보였으며, 일본에서 활동 중인 ‘와다 에이(Ei Wada)와 일렉트로닉코스 판타스틱코스’는 무대에서 TV와 바코드 리더기 등 전자 기기만을 활용해 독특한 디지털 사운드 뮤직을 선보였다. 또한 대중 앞에서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틈틈이 마련하며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적극적인 소통을 유도했다.

아트 나이트에서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예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시도 준비되어 있다. ‘21_21 디자인 사이트’, ‘모리 뮤지엄’ 등 도쿄의 유명 미술관 역시 아트 나이트 행사와 함께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이다. 행사를 더욱 알차게 즐기고 싶다면 거리에 비치된 ‘아트 나이트 맵’을 확인하며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장을 모두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아트 나이트가 펼쳐지는 기간이면 롯폰기는 도쿄의 활력에 예술적 감수성을 더한 구역이 된다. 낮과 밤을 불문하고 예술에 한껏 취해있는 롯폰기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내년 이맘때를 주목하자. 아트 나이트가 열리는 롯폰기는 한여름 밤의 꿈으로 빠져드는 달콤한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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