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중문화 총정리(4) 구름 관객을 모은 예술 전시
2019년이 안녕을 고하고 있다. 올해도 문화 전반은 분주히 돌아갔고, 기억할 만한 일들은 기억될 것이다.
구름 관객
장관이고 절경이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주변은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데이비드 호크니> 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길게 늘어선 매표 행렬의 진풍경을 전하며 언론은 ‘호크니 현상’이라고까지 이름 붙일 정도였다. 고전과 현대, 정통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서사가 담긴 호크니의 작품은 난해하지 않다. 갖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전시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누적 관객 3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며 역대 ‘흥행 전시’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비슷한 시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20세기 개념 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사후 50주년 기념 전시가 열렸다.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로, 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뒤샹을 동시대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호크니와 비교하면 다소 난감할 수 있는 작품임에도 <마르셀 뒤샹> 전 역시 관람객 20만 명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 여성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주인은 ‘여성’이었다.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는 제목의 전시를 기획한 예술 감독 김현진은 한국 역사에서 배제된 사람들, 즉 여성과 성 소수자가 이야기하는 근대사를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남화연, 제인 진 카이젠, 정은영 등 작가 역시 모두 여성일 뿐 아니라 여성을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그들은 단지 누구에게나 평등한 자유를 말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50년
국립현대미술관을 기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데 1969년 경복궁 개관을 시작으로 덕수궁 석조전 동관, 과천, 덕수궁 석조전 서관 등 잦은 이동으로 부침을 겪었기 때문이다. 2013년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가 있던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과 2018년 충북 청주시의 연초 제조장을 재건축한 청주관 개관으로 비로소 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로 이어지는 4관 체제를 안착시켰다.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기획전의 제목은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광장에서 한국 미술의 100년을 돌아본다.
혼돈의 아트 바젤 홍콩
3월의 홍콩은 예술의 도시로 거듭난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 홍콩’을 기점으로 도시 전역의 갤러리와 문화공간에서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아트 바젤 홍콩은 원래 스위스 아트 바젤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이지만 전 세계의 저명한 갤러리와 작가의 작품이 모여들면서 아트 바젤 스위스에 버금가는 힘을 갖게 됐다. 그 중심에는 ‘차이나 파워’가 있었다. 넘쳐나는 차이나 머니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 값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고 덕분에 콧대 높은 글로벌 갤러리들이 앞다퉈 홍콩에 분점을 내기 시작했다. 건물 전체가 유수의 갤러리로 가득한 ‘갤러리 빌딩’이 존재할 정도다. 영원한 흥행 가도를 달릴 것 같았던 아트 바젤 홍콩의 공기가 달라진 건 약 2년 전부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이 미술시장에도 영향을 끼쳤고, 최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시위 사태는 도시 자체에 위기와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살인적인 집값과 저임금, 더는 잃을 것도 없다는 분노와 절망감은 표현의 자유마저 짓밟았다. 아트 바젤 홍콩은 내년 3월, 242개의 갤러리가 참가하는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힌 상태다. 비슷한 시기 열리는 호텔 아트 페어인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는 잠정적으로 행사 자체를 연기했다. 홍콩의 봄을 기다린다.
미술관 스타워즈
요즘은 유명인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예술작품이자 아티스트다. 이들은 미술을 즐기는 일을 넘어 미술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의 미술 사랑은 이미 유명하다. 그들은 유명 작가의 전시를 관람하는 일을 넘어, 각종 아트페어까지 다니며 동시대 작가를 발견한다. 이정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박이소: 기록과 기억> 전의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관람객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한 일도 있다. BTS의 RM은 ‘미술관 덕후’로 불린다. 해외 투어를 위해 찾은 도시의 미술관을 찾아 다니는 부지런한 인증샷과 목격담 덕분에 그가 관람한 전시와 미술관을 찾아 다니는 ‘RM 미술관 로드’가 떠돌 정도다. 특히 한국 작가 김환기와 이우환의 작품을 애호한다는 사실에 그들의 작품을 찾아보는 젊은 관람객이 늘었다는 사실은 반갑다.
지금 그 도시에서는
더 넓은 곳에서는 더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우선 그곳의 미술관을 찾아야 할 이유다.
<프랜시스 베이컨>
1971년 그랑팔레 회고전 이후부터 1992년까지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년의 작품을 살필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폭력, 광기 또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식의 과잉은 이 영국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완성한 작품의 주제이다. 문명과 야만,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이라는 몹시 극단적인 시각이 혼재한 작품을 마주하는 건 어쩌면 오늘날 꼭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2020년 1월 20일까지, 파리 퐁피두 센터.
<메리 퀀트>
1967년 1월 6일, 가수 윤복희가 처음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때,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긴 다리와 엉덩이를 강조해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부각하는 미니스커트는 1963년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에 의해 처음 발명됐다. 일상복의 혁명을 일으킨 메리 퀀트의 1955년부터 1975년까지 활동을 조망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뉴에이지 페미니즘이라 일컬어지던 다양한 미니스커트와 휘황찬란한 스타킹, PVC 소재의 우비 등 당시 가장 ‘핫’하던 패션 아이템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패션이기도 하다. 2020년 2월 16일까지,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뮤지엄.
<김수자>
현대미술가 김수자가 프랑스 푸아티에(Poitiers) 시가 주관하는 프로젝트 <여정>의 첫 번째 에디션에 참가한다. 프랑스 중부의 푸아티에는 정치, 종교적으로 ‘유럽’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던 아랍권과의 전쟁인, 일명 ‘푸아티에 전쟁’으로 유명한 중세도시다. 김수자는 <여정>의 호스트다. 그는 세계 각지의 작가 16명을 이 도시로 불러들인다. 그들과 함께 여행하고, 서로 다른 타자성을 밀어내는 대신 환대하며 창의적인 워크숍을 벌인다. 그 결과를 확인하러 푸아티에로 가야겠다. 2020년 1월 19일까지, 프랑스 푸아티에 시 전역.
백남준에게 바치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문화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다. 테이트 모던이 한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타계 13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는 최대 규모의 회고전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테이트 모던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함께 준비했으며, 백남준의 초기작과 공연에서부터 비디오와 대규모 텔레비전 설치까지 총 2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백남준은 2006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오늘을 산다. 그가 남긴 작품과 정신은 아직도 과거가 아닌 저 미래다. 런던 전시는 내년 2월 9일까지 계속된다. 그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과 네덜란드, 싱가포르까지 이어진다. 리스트에 한국은 없다.
공간 + 공간
바야흐로 멀티태스킹의 시대,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뜨고 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
청담동 한복판에 ‘해체주의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물이 들어섰다. 부산 동래학춤에서 받은 영감을 접목한 이 공간은 쇼핑은 물론 루이 비통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관람할 수도 있다. 이름하여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식물관 Ph>
수서역 근처의 ‘식물관 Ph’는 식물원이자 갤러리이며, 음료도 마실 수 있는 카페다. 도심 속의 식물원에서 따뜻한 온기와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맡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 다음, 전시까지 본다면.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에 충실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아모레 성수>
성수동에 위치한 ‘아모레 성수’는 원래 자동차 정비소 건물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정비소 건물의 골조를 살려 새로운 개념의 뷰티 라운지를 만들었다. 그들이 보유한 30여 개의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3000여 가지의 화장품을 자유롭게 즐기며 쉬어갈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다른 전시
한국을 찾은 거장의 작품
입체주의 미술의 거장 피카소를 비롯한 큐비즘과 1950년대 당시 70대의 거장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젊은 거장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가 연달아 열렸다. 한편, 금기의 벽을 뛰어넘는 사진가였던 헬무트 뉴튼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전시도 열렸다. 100년을 맞은 바우하우스를 기념하는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 전에서는 마르셀 브로이어,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어 등 바우하우스의 시작을 함께한 디자이너의 오리지널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패션사진가의 좀 다른 행보
쏟아지는 패션화보와 난다 긴다 하는 스타를 카메라에 가두는 패션사진가의 마음은 그들이 내놓는 이미지만큼이나 화려하고 풍성해 보인다. 하지만 사진가는 늘 사진적 목마름을 느낀다. 이를 해갈하기 위해 레스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젊음과 생기, 헐떡이는 에너지를 담아낸 사진을, 김재훈은 그의 성품처럼 군더더기 없는 건물 사진 시리즈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목정욱은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언더그라운드 신을 재해석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젊은 모색의 귀환
1981년 <청년작가> 전을 시작으로 이불, 최정화, 서도호, 문정원 등 국내 신진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청년 작가전 ‘젊은 모색’이 5년의 공백을 뒤로하고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전으로 돌아왔다. 이 전시를 통해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 세계를 조명하며, 국내 동시대 미술의 경향과 잠재력을 예상해볼 수 있었다. 세상에 인사를 건네는 김지영, 송민정, 안성석, 윤두현, 이은새, 장서영, 정희민, 최하늘, 황수연이라는 새 이름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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